꽃피던 짧은 날들은 가고
나무는 다시 평범한 빛깔로
돌아와 있다
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들과
나란히 서서
나무는 다시 똑같은 초록이다
조금만 떨어져서 보아도
꽃나무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된다
그렇게 함께 서서
비로소 여럿이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고
마을 뒷산으로 이어져
숲을 이룬다
꽃피던 날은 짧았지만
꽃 진 뒤의 날들은 오래도록
푸르고 깊다
---「초록 꽃나무」전문
매화나무가 초록 잎을 달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과나무도 목련나무도 산벚나무도 다 초록 잎으로 함께 흔들리고 있습니다. 꽃이 피어 있을 때는 꽃만으로 구분이 가던 나무들인데 "꽃피던 짧은 날들은 가고 / 나무는 다시 평범한 빛깔로 / 돌아와 있"습니다. 두충나무 헛개나무 뽕나무와 섞여 있어 꽃나무인지 아닌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꽃나무들은 어쩌면 이렇게 초록에 묻히는 것이 서운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초록으로 하나 되어 섞이면서 "비로소 여럿이 쉴 수 있는 / 그늘을 만들고 / 마을 뒷산으로 이어져 / 숲을 이"루는 것입니다. 한 그루의 꽃나무에서 비로소 숲을 이루는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꽃 피던 날은 짧았지만" 나무의 일생 중에는 꽃 진 뒤에 초록 잎으로 지내는 날이 훨씬 더 많습니다. 초록의 날들이야말로 나무의 생명이 가장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는 날입니다. 우리가 꽃피던 화려한 날들에만 매어 있지 않아야 하는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