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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 버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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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 버린 시간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20>


일찍 자고 새벽에 일찍 깨어 일어났지만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하였습니다. 잡지사 기자가 일정을 당겨 오전에 내려오겠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기자가 오기 전에 밀린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어제 설거지기하고 엎어놓은 그릇들을 제 자리로 갖다 놓고 눈에 뜨이는 대로 방을 대충 치우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릇 정리를 하다가 찜할 때 들통 가운데 놓는 동그란 받침을 건드려 구석으로 떨어트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찜 받침은 싱크대 밑에도 선반 아래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밑으로 떨어졌는데 이상하다 싶어 결국 선반을 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선반을 움직이려니 그 밑에 쌓아둔 크고 작은 빈병들과 그릇을 다 치워야 했고 사물함 틈새로 들어간 찜 받침을 찾아 꺼내기 위해 사물함을 건드리다 옆에 쌓아놓은 폐휴지 더미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폐휴지 더미 옆에서 심호흡을 한번하고는 그것들을 차곡차곡 간추려 놓았습니다. 물건들을 제 자리로 돌려놓는데 30분 이상이 걸렸습니다. 이미 손을 댄지라 빈병들도 큰 봉지에 따로 담았습니다. 쓰레기통도 비워 용량제 봉투에 담아 묶고 내친 김에 선반 밑을 쓸고 걸레로 닦았습니다. 오전에 글 쓸 시간은 그렇게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마음이 분주하다보니 손놀림이 거칠어지고 그래서 한번 놓친 물건으로 인해 몇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그 대신 지저분하던 주방 근처 구석진 곳이 오랜만에 깨끗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아마 제가 오늘 할 일은 글 쓰는 일이 아니라 집안 구석진 곳 청소하기였던가 봅니다. 사소한 실수로 인해 일이 점점 더 커지고 예기치 않았던 일이 계속해서 벌어질 때도 그 일이 내게 오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려 자신을 탓하거나 남을 원망하기보다, 그 일로 인해 얻어진 새로운 결과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면 우리에게 헛된 시간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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