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의 언론매체 기사 중 이례적인 기사 두 꼭지를 찾아볼 수 있다. 지난 5월 7일 조선중앙방송은 "최근 세계적으로 식량문제가 심각한 난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흰쌀과 밀, 강냉이 가격이 급속도로 뛰어올라 커다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하며, "지금 37개 나라가 식량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급격히 악화되는 세계적인 식량사정은 모든 나라들이 자체의 힘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해나갈 것을 더욱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고 북한 특유의 '자력갱생'을 강조했다. 이어 8일 조선중앙통신은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을 위한 북미간 협의가 "진지하게 잘 진행됐다"며 "미국 식량협상 대표단이 5일부터 8일까지 조선을 방문했다. 방문 기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 사이에 인도주의적 식량제공 문제에 관한 협상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 두 기사가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현재 북한의 식량사정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고,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주민들의 동요가 심각해질 수 있음을 북한당국이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직은 불확실함에도 조만간 미국의 대규모 식량지원이 있을 것이라고 알리면서 주민들의 인내를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대규모 기근사태 재현되나
올해 북한의 식량사정을 90년대 중반 수준같이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판단하는 데는 다음 세가지 근거를 들 수 있다.
우선은 작년에 발생한 대규모 수해 피해로 자체 식량 생산량이 10% 이상 감소했다는 점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작년 한해 북한의 곡물생산량을 최저 300만톤으로 추정하고 있다. 작년 외부로부터 지원받은 곡물량을 70만톤 정도로 본다면 2007년 북한의 총 곡물공급량은 370만톤 수준에 불과해 올해 식량부족량은 100만톤에서 150만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규모 기근사태가 발생한 90년대 중반 북한의 곡물공급량이 400만톤 수준이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10년 만에 대규모 기근사태가 다시 닥치고 있다는 주장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물론 전적으로 중앙배급체계에 의존하던 당시와 달리 시장(장마당)의 발달과 북한의 자체적 곡물도입 능력으로 당장은 90년대 같은 비극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현재의 상황이 지속되면 심각한 식량난이 초래될 것이라는 주장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는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고 특히 주 식량수입국이었던 중국이 북한에 대해서도 수출관세와 쿼터제를 도입함으로써 외부로부터의 식량구입 비용이 매우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또한 한국정부가 향후 대북 식량지원을 재개한다 하더라도 곡물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지원할 수 있는 양이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의 대북지원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북한의 식량위기를 초래하는 주요 요인은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중단되었거나 매우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대체적으로 북한은 하반기에 자체 생산한 물량으로 식량을 공급하고, 다음해 봄부터는 외부의 지원으로 식량을 충당해왔다. 지난 8년 동안 남한과 국제사회가 매년 50만톤 이상의 식량을 지원해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외부지원의 불확실성은 배급중단과 식량가격의 급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북한 시장에서 쌀 1kg은 2,200북한원을 넘어서고 있다. 작년 이맘때 가격이 1,000원 내외였음을 고려하면, 시장에 공급되는 식량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급등세가 매우 가파름을 알 수 있다.
꼬여가는 남북관계, 통미봉남의 시작인가
사정은 이러한데 남북관계는 갈수록 꼬이고 있다. 북한당국은 이명박정부가 지난 정권에서 이루어진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의지에 대해서 확실한 답을 주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을 무시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며, 대화제의 자체를 거부하고 대립각을 더욱 날카롭게 세워나가고 있다. 이명박정부 또한 북한의 선(先)대화제의나 지원요청 없이는 먼저 회담을 제안하거나 인도적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나아가 북한의 지원요청이 있더라도 '호혜적 인도지원'(인도적 상호주의)의 원칙하에 지원여부와 규모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기도 하다.
이명박정부로서는 북한이 지원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서서 지원하겠다고 하는 것이 선뜻 선택하기가 어려운 문제임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북한당국이 식량지원과 이를 위한 당국간 대화를 우선 제의하는 것이 대규모 식량지원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전제라는 것에 원칙적 타당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그같은 정부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현재의 상황을 방관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정부가 더욱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북한 식량난에 대한 해법을 찾고 그 과정을 통해 단절된 당국간 관계를 복원, 정상화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바람은 남북 당국간의 기싸움으로 인해 북한 주민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으므로 이를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인도주의 정신에 기초하고 있으며, 자칫 대규모의 식량위기가 초래된다면 그것은 북한 내부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큰 충격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다.
북한당국은 이미 자신들의 심각한 식량난을 인정하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특히 조만간 북한의 핵신고와 미국의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해제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24시간 내에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장면이 전세계에 생중계되면서 미국은 50만톤 내외의 대규모 식량지원 방침을 공식화할 것이다. 물론 미국이 지원하는 옥수수의 첫번째 인도분이 북한에 전달되기에는 약 2개월 이상이 걸리며 북한당국은 두달간의 '춘궁기 고난의 행군' 정도는 능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찌 보면 북한이 두달 정도 견디면 적어도 인도적 문제에서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북한 식량지원에 정부가 적극 나서라
그런데 급속도로 진행되는 북미관계의 개선과 북핵문제의 진전과정에서 우리만 방청객으로 있을 수는 없다. 특히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 정부는 신속하게 남북관계 개선과 인도적 대북지원 재개를 위한 현실적인 방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마지못해 하는 듯한 국제기구를 통한 우회적 지원은 올바르고 당당한 태도가 아니다. 정부는 당장이라도 그간 대북지원을 담당해온 민간단체나 적십자사를 통해서라도 일정규모의 긴급 식량지원을 시작해야 한다.
미얀마를 강타한 싸이클론이나 중국 쓰촨성을 초토화한 지진보다 몇배 더 위험한 '대기근'의 태풍이 북녘 땅에 몰아치지 않도록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대책을 강구해주기를 촉구하며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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