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씨는 "이제 더 이상 좁은 방에서 갇혀서 흐느끼고 싶지 않습니다"라며 "동지들 가는 길에 희망만이 가득하길 바랍니다"라고 썼다.
이 유서는 사건 발생 당시 발견하지 못했으나 경찰과 이 씨의 동료들이 뒤늦게 찾아냈다.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이 씨는 26살인 1997년에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업체인 영호산업에 입사했다. 이후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2001년부터 사내하청 노조 설립 준비에 참여하고 2003년 노조 출범 때엔 발기인을 맡아 초대 조직부장도 지냈다.
소속 하청업체는 노조설립을 이유로 이 씨를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2월 14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인터기업 전 근로자 박일수(50) 씨가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외치며 분신자살했다. 이 일로 이 씨는 현대중공업 대형크레인에 올라가 사측에 항의하는 고공 농성을 하다 회사 용역경비들에게 끌려 내려오며 심한 폭행을 당했다. 이 때문에 8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려왔다.
5시간여 만에 끝난 이 고공 농성 때문에 이 씨는 약 2달간 구속수사를 받은 뒤 법원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출소 후 사내하청지회 노조간부로 활동했으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으로 노조업무를 중단하고 생계유지를 위해 택배 일을 했다. 이후 택시 운전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근 10년간 이 씨를 옆에서 지켜봐 온 조성웅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 초대위원장은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이 씨와) 죽기 전날 오후에 통화했었다. (이 씨가) 그날 오전에 현대 자동차 비정규직 투쟁 상황을 카카오 스토리를 통해 파악했다더라"고 밝혔다.
조 씨는 "이 씨가 용역이 투입돼서 폭력 행사가 있었던 사진을 보면서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던 모양이다. 전화로 손이 떨려서 운전을 못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조 씨는 "최근 현대차 비정규직과 쌍용차 투쟁을 보면서 이 씨가 과거 싸움을 다시 떠올렸던 것 같다. 이와 동시에 저들은 싸우는데 같이 싸울 수는 없고 생계 전선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특히 힘들어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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