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쇠고기 수입개방과 관련, 시민들의 불안과 분노에 대한 정부 대응법의 골간인 듯하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지난 8일 담화를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불법집회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행위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정부 방침을 공포했다. MBC <PD수첩>을 제소한 것도 그 일환일 것이다.
좋다. 그런데, 정작 그러는 정부는? 정부는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며 시민들을 납득시키고 있는가?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다른 것은 차치하고, 정부 자신이 명백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여론을 오도하는 것이 있다. 그것도, 일부 기술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미 쇠고기 수입개방의 근거와 당위성을 내세우는 핵심 논거에 관한 것이다. 현재 대대적으로 생산-유포하고 있는 정부발(發) '괴담'과 '허위사실' 두가지만 예를 들겠다.
총리와 장관이 유포하고 있는 허위사실
"미국산 쇠고기는 미국인뿐 아니라 세계 96개국의 국민들이 함께 먹고 있습니다. ……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이번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한승수 총리가 이번 담화문에서 미 쇠고기 수입개방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한 얘기다.
"3억인의 미국인과 96개국의 세계인들이 즐겨 먹는 바로 그 쇠고기가 수입됩니다."
며칠전 농림수산식품부 및 보건복지가족부가 수억원의 세금을 쏟아부으며 국내 일간지에 일제히 낸 광고 문구다.
이번 협상에 의해 앞으로 나이 제한 없이 들어오게 될 미국 쇠고기는 이미 세계 96개국이 수입해 먹고 있는 것이니 전혀 불안해할 필요 없다는 얘기다. 정말 그런가?
미국 농업부의 주간무역동향보고서를 찾아 확인해보았다. 여기에는 미국이 쇠고기를 수출한 나라 이름과 물량이 0.1천톤(100톤) 단위로 모두 기록된다(선적된 것과 대기중인 것 모두 포함). 올해 1월 첫주부터 5월1일까지의 주별 보고서를 모두 조회한 결과, 올 들어 미국 쇠고기를 사간 기록이 단 한 차례라도 있는 나라는 도합 24개국이었다.
국무총리가 "세계 96개국의 국민들이 함께 먹고 있습니다"라고 현재진행형으로 분명히 얘기했는데, 신문광고에서도 "96개국의 세계인들이 즐겨 먹는 바로 그 쇠고기"라고 했는데, 어찌된 일인가. 96과 24는 너무나 다른 수치잖은가.
추적 결과, "96개국"이란 키워드의 원 출처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정책홍보자료였다. 현재 정부의 정책포털 사이트(www.korea.kr)엔 "미 쇠고기, 96개 나라가 제한 없이 수입"이란 제목의 문서가 게시돼 있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117개 국가 중 96개 국가들은 광우병 위험물질(SRM)을 제외하고는 연령과 부위에 대해 아무런 제한없이 수입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자료는 "미국 쇠고기 수출가능국가(117개국)"란 제목의 표를 통해 수입 조건별 국가 명단을 다음과 같이 세 그룹으로 나눠 소개하고 있다.
△20개월 이하: 1개국(일본)
△30개월 미만: 한국 중국 대만 멕시코 등 총 20개국
△제한조건 없음: EU 국가 등 총 96개국
여기에 열거된 나라들은 이 표의 제목대로 미국이 쇠고기를 수출할 수 있는 나라들일 뿐이다. 수입 조건을 마련했든 안했든, 실제로 그 모든 나라들이 다 미국산 쇠고기를 사다 먹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총리와 농림부는 정보를 왜곡해 "세계 96개국 국민들이 즐겨 먹고 있다"고 자신있게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제한조건 없음"으로 분류된 문제의 96개국 중 실제로 몇 나라가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는지 확인한 결과, 올해 들어 5월1일까지 수입실적이 잡힌 나라는 12개국뿐이었다(네덜란드, 알바니아, 필리핀, 아랍에미레이트, 아이보리코스트, 바하마, 버뮤다, 캐나다, 페루, 과테말라, 온두라스, 트리니다드토바고).
"꼭 올해 수입한 기록이 있어야만 즐겨 먹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2006년과 2007년 두해 동안의 미국 농업부 연간 무역기록도 대조해보았다. 한국이 수입하려는 그 미국산 쇠고기를 제한없이 수입해 "즐겨 먹고" 있다고 정부가 주장하는 그 '96개국' 중에서 지난 2년간 미국산 쇠고기를 단 한번도 수입한 일이 없는 나라는 20개국에 달했다. 그중 한 나라(트리니다드토바고)만 빼놓고는 올해 미국 쇠고기를 수입한 기록도 전혀 없다. 결국 96개국중 19개 나라는 지난 2년4개월간 미국 쇠고기를 한번도 수입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정부 주장은 명백한 허위사실이 되는 것 아닌가. 우리가 나이 제한 없이 들여오려는 미국 쇠고기를 이미 "96개국 국민들이 즐겨 먹고 있다"는 주장은 거짓임이 입증됐으니까. 혹시 미국 농업부 혹은 필자가 파악하지 못한 다른 자료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이를 반박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내놓지 못한다면, 총리와 농림부 장관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유럽국가들이 제한없이 수입한다는 것도 사실과 달라
이와 관련, 사실과 다른 중요한 점이 또 한가지 있다. 정부는 특히 유럽 국가들도 미국 쇠고기를 제한 없이 수입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부가 "제한조건 없음"으로 분류한 96개국에 유럽연합(EU) 국가 및 그와 동등한 조건을 요구하는 국가 32개국을 포함시켜 놓고 있다. 식품안전기준이 가장 까다로운 유럽 선진국들도 아무런 제한조건 없이 수입해서 먹고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메시지다. 정부가 내놓은 논거 중에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이는 얘기인 듯하다.
그런데, 이 또한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수입조건이 훨씬 더 까다롭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기 전부터 EU국가들은 성장호르몬을 투여한 소에서 나온 고기의 수입을 금지해왔다. 미국의 축산 현장을 확인해 안전성이 확인된 경우에만 선별적으로 수입계약을 체결해 쇠고기를 들여오도록 하고 있다. 미국측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시정 결정까지 받았지만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처럼 소의 나이나 부위 등 다른 추가적인 제한조치를 굳이 취할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쇠고기를 아예 수입하지 않는 EU국가들도 많다. 정부는 EU국가 등 유럽 32개국이 "제한없이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다"고 홍보하지만, 미국 쇠고기 수출기록을 조회한 결과, 오스트리아 체코 등 8개국은 2006년 초부터 지금까지 수입한 적이 전혀 없었다.
수입하더라도 물량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EU국가들이 소비하는 쇠고기는 95% 정도 역내에서 조달하며 나머지 5% 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미 농업부의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유럽연합 25개국이 지난해 수입한 쇠고기 40만톤의 대부분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호주산이었고, 미국산은 1천톤 정도로 수입시장 점유율이 0.25%에 불과했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평균적으로 볼 때 EU국가에서 임의로 쇠고기를 먹었을 때 그것이 미국 쇠고기일 확률은 0.01%쯤 될 거란 얘기다.
이는 한국의 경우와 크게 대조적이다. 2003년말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돼 쇠고기의 수입이 금지되기 전까지 미 쇠고기는 한국에서 전체 쇠고기 소비량의 45%선을 점하고 있었다. 이제 수입제한이 해제돼 미국 쇠고기가 다시 본격 들어오게 되면 유럽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점유율이 높아지게 것이다.
당시 한국의 연간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은 무려 8억달러에 달했다. 그러고 보면, 미국 축산업계 그리고 그들로부터 나오는 정치자금과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미국 정부가 집요하게 한국 정부를 압박해온 게 이해가 된다. 또, 그렇게 해서 미국 쇠고기의 한국시장 점유율이 예전처럼 높아지게 되면 광우병의 위험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기에, 한국인들 입장에선 미국 쇠고기 수입개방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점도 동시에 납득이 된다. 단 한가지 설명이 잘 안 되는 것은 그 중간에 선 한국 정부의 태도일 뿐….
숫자의 마술에 가려진 실상
왜곡된 정보 못지 않게 여론을 오도하는 것은 이른바 숫자의 트릭이다.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는 117개국 중 96개 나라가 아무런 제한조건 없이 수입하고 있다"는 정부의 말을 듣게 되면 시민들은 "아,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가 미국 쇠고기를 제한없이 수입해서 먹고 있구나. 그게 대세인가 보네. 그럼 우리만 쭝뿔나게 제한을 하라고 할 수도 없었겠구만"하고 생각하기 쉽다. 교묘한 숫자의 마술 덕분이다.
단순히 나라 숫자만 비교해서 그런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광우병 위험은 나라 숫자에 따라 높고 낮아지는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광우병 인자가 들어 있을 수 있는 쇠고기에 얼마나 많이 노출되느냐에 달린 것이다. 결국 미국산 쇠고기 반입량, 즉 미국 쇠고기에 대한 의존도가 중요한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2007년 한해 동안의 미국 쇠고기 수출기록을 분석해보면, 30개월 미만의 나이제한을 두고 있는 20개국의 총 수입량은 12억5230만 파운드로 전체의 87.5%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제한조건 없는 국가를 포함한 나머지 97개 국가들의 수입량은 다 합쳐도 12.5%에 불과하다. 미국 쇠고기를 많이 먹는 나라일수록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그만큼 안전장치에 신경쓰기 마련인 것이다.
수입제한조치를 취하는 20개국 중에서도 특히 미국 쇠고기 수입량이 많은 주요 수입국들 쪽으로 시각을 좁혀보면 그런 현상이 더욱 뚜렷이 확인된다. 미국에 광우병이 발생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들이 미국 쇠고기 수입금지 또는 제한조치를 취한 것은 2003년도의 일이다. 그 직전 해인 2002년 수입실적을 기준으로 할 때 미국으로부터 연간 1천만 파운드(약 450만Kg) 이상의 쇠고기를 수입한 나라는 모두 8개국이었다. 일본 멕시코 한국 캐나다 홍콩 대만 중국 러시아 순으로 총 수입물량은 23.7억 파운드였다. 그해 미국의 전체 쇠고기 수출량 24.5억 파운드 중 이 8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96.9%에 달했다. 그해 한국의 수입량은 5억9730만 파운드로, 미국의 전체 쇠고기수출량의 24.4%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머지 근 1백개 국가들의 수입량을 다 합쳐야 7540만 파운드로 전체의 3% 정도. 한국 한 나라가 수입하는 물량의 8분의 1에 불과한 수치였다.
이 8개 주요 수입국중 미국 쇠고기에 대해 30개월령 제한을 해제한 나라는 한국과 캐나다뿐이다. 캐나다는 광우병 발생국가인데다 미국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쇠고기를 미국에 수출하기 때문에 소의 연령 제한을 해제했다. 캐나다 외에는 다른 어떤 주요 수입국가도 나이 제한을 없애지 않았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어 미국과 상당부분 경제통합을 이룬 멕시코조차도 30개월 미만 나이제한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번에 한국이 앞장서서 해제한 것이다. 한국 협상단으로선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국제기준 혹은 방어논리로 내세울 수 있었을 텐데도, 미국측 주장대로 오로지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가이드라인만을 따르다 보니 그리 귀결돼버린 듯하다.
청와대의 "자기 얼굴에 침뱉기"
괴담 혹은 허위사실이라고 하기엔 너무 참담한 사례가 한가지 더 있다.
청와대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정부의 "쇠고기 수입재개 대책"이 중요 정책과제로 자세히 소개된다. 그중 "문답으로 알아본 한미 쇠고기 위생조건 협의"를 보면 다음과 같은 문답이 펼쳐진다.
"문) 이번 협의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미국 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전성 차원의 사료금지조치를 약속받은 것이 가장 크다. 14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삼계탕의 미국 수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도 큰 소득이다."
국민들의 식탁과 미래를 불안하게 만든 대가로 얻어낸 가장 큰 수확이 "사료금지조치를 약속받은 것"이라니, 그런 내용을 당당하게 일국의 최고 지휘부 사이트에 게시하고 있다니, 한국어를 알고 경위를 아는 미국 관계자가 읽으면 얼마나 비웃을지 참 끔찍하다.
정부가 이번 협상의 최대 수확으로 꼽는 사료금지조치란 광우병의 교차감염을 막기 위해 돼지 닭 등 가축-가금류의 사료에 소의 광우병 위험물질(SRMs)이 쓰이지 않도록 하는 법적 조치를 말한다. 이는 미 농업부가 아니라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의 소관사항이다. 2003년 12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식약청은 1997년에 만들어진 기존의 사료 관련 규제를 재검토, "강화된 사료조치" 추진방침을 예고했다(69 FR 42288). 2004년 7월14일의 일이다. 이후 구체적인 규제안을 완성해 2005년 10월6일 공고했다(70 FR 58570). 그후 여론수렴기간(Public Comment Period)과 보완-조정과정을 거쳐 최종 법규가 공포된 것은 지난 4월25일이었다(73 FR 22720). 이번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지 꼭 일주일 후였다.
당시 송기호 변호사가 프레시안 칼럼("검역 주권은 어떻게 양도되었나", 4월 25일자)에서 잘 지적한 대로 최종 법규는 원래 법안보다 상당히 후퇴한 내용을 담고 있다. 게다가 공표만 해놓고 시행시기는 1년 후로 미뤘다. 미 연방정부의 규제는 대체로 즉시 혹은 길어야 3~6개월 후에 발효하는 걸 감안하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반면, 한국의 쇠고기 수입은 발효시점이 아니라 공표시점에 맞춰 재개하도록 한 것 또한 이례적이다. 그런 사료규제조치가 이번 협상의 최대 소득으로 꼽힐 정도로 쇠고기의 안전성에서 그토록 중요한 문제라면, 그 조치가 채 시행되지 않는 향후 1년 간 들여올 쇠고기는 어떻게 먹으란 것인가? 이율배반이요, 자가당착이다.
미국 식약청의 법규제정과정과 한미 쇠고기협상 일정을 대비해보면 정부의 아전인수성 자화자찬이 얼마나 군색하고 허구적인 것인지 알 수 있다. 참여정부 당시, 홍콩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 참석 중이던 박홍수 농림부 장관이 "미국측과 쇠고기 수입재개 조건을 논의하기 위한 협상에 착수하겠다"고 처음 밝힌 것이 2005년 12월15일의 일이다. 이듬해 협상이 시작돼 우여곡절을 겪다가 지난 달 한미정상회담 직전 타결된 것이다.
한국 정부가 미 농업부와 협상을 시작하기 훨씬 전에 미국 식약청에서는 이미 법안을 다 만들어놓고 공람 및 의견수렴절차까지 마친 상태였다. 이번 최종협상에서 한국측이 30개월령 문제 등을 양보하며 매듭짓기 훨씬 전에 사료 관련 법규는 이미 완성돼 지난해 11월 1일 미 대통령 산하 규제심의실에 제출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번 최종협상의 댓가로 "안전성 차원의 사료조치"를 약속 받았다는 것은 대체 무슨 말인가? 이후 미국측으로 하여금 다시 법규를 개정해 사료조치를 더 강화하도록 이면합의라도 했다는 것인가?
도대체 부끄러움도 없나? 이런 식의 문서가 대한민국의 대문인 인터넷 청와대에 버젓이 올라가 있으면 자신들만이 아니라 나라의 얼굴에까지 침뱉는 격이란 것을 당국자들은 모르는 것인가?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다른 건 몰라도 제발 이것만은 속히 내려주기 바란다.
<자료 출처>
미국 농업부 주간무역통계 등
미국 농업부 무역동향보고서
농림수산식품부 "미 쇠고기 수입 재개 오해와 진실"
청와대 "쇠고기 수입재개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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