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돈되어 있는 상태, 질서정연한 상태는 엔트로피가 낮습니다. 그러니까 집에 가서 방을 잘 정돈하면 방의 엔트로피가 분명히 줄어듭니다. 인위적으로 엔트로피를 줄일 수 있는 거지요. 생명현상에서도 예컨대 정자와 난자가 수정을 해서 수정란을 만들고 이것이 배아가 되어서 분화하는 모습을 보면 놀라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엔트로피를 줄여가는 것이죠.
이러한 현상을 보고 열역학 둘째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지난 시간에 강조했습니다. 열역학 둘째 법칙에서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 없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외떨어진 계'에서의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외부세계랑 아무것도 왔다 갔다 하지 않을 때 적용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생명이란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로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물질과 에너지 등이 외부세계와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나마 생명체가 엔트로피를 줄일 수 있고, 이에 따라 생명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세계, 곧 환경을 합한 전체는 외떨어진 계라 할 수 있고, 이 전체의 엔트로피는 늘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열심히 방을 정돈하면 방의 엔트로피는 분명히 줄어듭니다. 그렇지만 우리와 공기 등 주위 환경의 엔트로피는 줄어든 방의 엔트로피보다 더 많이 늘어나서 결국 방과 우리, 환경까지 같이 고려하면 전체 엔트로피는 늘어나게 됩니다.
맥스웰의 악마
이러한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해서 엔트로피와 열역학 둘째 법칙의 본질을 극명하게 나타내준 개념이 이른바 '맥스웰의 악마(Maxwell's demon)'입니다. 바로 전자기파 이론을 만든 맥스웰이지요.
그림 1에 보인 상자에는 내부에 벽이 있어서 둘로 나누어집니다. 양쪽에 기체가 있고, 벽에 문이 있어서 열고 닫을 수 있습니다. 기체 분자들은 쉴 사이 없이 움직이고 있는데 빠르기가 모두 같지는 않고 적당히 분포되어서 빨간 점으로 표시한 빨리 움직이는 분자들과 파란 점으로 나타낸 느리게 움직이는 것들이 섞여 있지요. 그 평균 운동에너지가 기체의 절대온도에 비례하므로 온도가 높다는 것은 기체 분자들이 평균적으로 더 빠르고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느 부분이 뜨겁다는 것은 그 부분의 분자들이 활발하게 움직여서 운동에너지가 높음을 의미하지요. 상자 내부의 문을 열어 놓고 놔두면 기체가 고르게 섞입니다. 양쪽 부분에 빠르고 느린 기체 분자들이 고르게 분포하므로, 평균 운동에너지가 같아지고, 결국 양쪽의 온도가 같아짐을 뜻합니다. 이른바 평형상태에 이르러 온도가 같아지게 되지요. 왼쪽 그림은 평형상태에서 상자 양쪽에 빠르고 느린 분자들이 비슷하게 분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림 1에 보였듯이 악마가 문지기 자리를 차지하고 문을 열고 닫는다고 합시다. 문을 지키면서 상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느린 분자는 넘어오도록 문을 열어주지만 빠른 분자가 넘어오려고 하면 문을 닫아버려서 지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반대로 상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는 빠른 분자만 넘어가도록 문을 열어주고 느린 분자는 넘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이를 반복하면 결국 그림 1의 오른쪽 그림에 보였듯이 상자 왼쪽에는 빠른 분자들이 모이고 상자 오른쪽에는 느린 분자들이 모이게 됩니다. 그러면 상자 왼쪽의 온도는 높아지고 오른쪽은 온도가 낮아집니다. 처음에는 양쪽의 온도가 같았는데 나중에는 저절로 온도가 달라지네요.
이것은 당연히 열역학 둘째 법칙에 위배됩니다. 상자는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있어서 무엇인가 오가는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외떨어진 계인데 엔트로피가 증가하지 않고 도리어 감소합니다. 그러면 열역학 둘째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것일까요? 아니면 어디에서 해석이 잘못되었을까요?
맥스웰의 악마를 쫓아버리려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는데, 이를 퇴치하는데 성공한 사람이 브릴루앙(Léon N. Brillouin)과 질라르(Leó Szilárd)입니다. 악령을 추방 또는 퇴치하는 사람을 퇴마사(exorcist)라고 부르지요. [예전에 무당이라고 번역하기도 했는데 ≪퇴마사(exorcist)≫라는 미국 영화가 있었지요. 혹시 본 사람 있는지요?] 맥스웰에 의한 악마의 탄생(birth)이 1867년이고 브릴루앙에 의한 악마의 퇴치(exorcism)가 1949년이니 악마는 80년가량 산 셈입니다.
악마를 어떻게 내쫓았을까요? 악마가 문을 열어주느냐 닫느냐를 결정 하려면 분자의 움직임이 빠른지 느린지 검사해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분자의 빠르기를 측정해야 하지요. 이러한 측정 과정에서 반드시 엔트로피가 증가하게 됨을 증명한 겁니다. 측정이란 정보와 직결돼 있습니다. 측정하면 우리가 뭔가 정보를 얻게 되지요. 주사위를 던지거나, 두 개의 상자 중에 어느 쪽에 주사위가 들어 있느냐를 확인할 때, 주사위의 숫자를 확인하거나 상자를 열어보는 것이 측정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정보를 얻습니다. 이러한 측정을 통해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엔트로피 증가가 수반된다는 것을 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악마가 측정을 통해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증가하는 엔트로피는 얻은 정보를 이용해서 감소시킨 계의 엔트로피와 정확하게 같습니다. 따라서 두 가지는 상쇄되고 전체 계의 엔트로피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사실은 이는 이상적인 경우이고, 실제로는 줄어드는 엔트로피보다 늘어나는 엔트로피가 많지요. 아무튼 중요한 것은 열역학 둘째 법칙이 성립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집에 가서 열심히 청소하고, 방을 정돈하면 엔트로피를 줄인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 과정에서 환경을 포함한 전체 계, 곧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는 도리어 증가시킨 겁니다. 정돈하지 말고 내버려 두는 것이 전체 엔트로피를 덜 증가시키지요.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역시 우주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킵니다. 그러니까 너무 열심히 공부하지 말아야겠네요. 물론 열심히 공부해서 증가시킨 엔트로피는 여러분이 집에서 학교 올 때 타고 온 자동차 때문에 증가한 엔트로피에 비하면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적으니 공부하는 편이 그래도 자동차를 타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요.
그런데 악마는 그렇게 쉽게 퇴치되지 않습니다. 영화 ≪퇴마사≫를 보면 맨 끝에 악마가 완전히 소멸해버리지는 않습니다. 비슷한 다른 영화에서도 대체로 악마는 완전히 죽지 않고 속편이 있을 것 같은 복선을 깔아놓습니다. 그러다가 악마 편에 붙은 나쁜 사람이 부활시키지요. 맥스웰의 악마도 만만하지 않아서 브릴루앙이 추방했지만 란다워(Rolf Landauer)와 베넷(Charles H. Bennett) 같은 사람들이 1961년부터 노력해서 1973년, 1982년에 부활시켰습니다. 참으로 '나쁜' 사람들이네요. 어떻게 부활시켰을까요? 란다워와 베넷은 측정할 때 엔트로피가 증가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인 겁니다. 이것은 충격적인 악마의 부활이었지요. 맥스웰이 탄생시켰고, 브릴루앙과 질라르가 애써서 추방했는데 다시 살려낸 것입니다. 예수만 부활한 게 아니라 이 악마도 부활했네요.
속편 영화에서 악마가 부활했으면 다시 퇴치해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악마를 어느 정도 다시 추방하기는 했습니다. 이는 측정 대신에 정보의 삭제(erasure)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임으로써 이루어졌지요. 셈틀에 너무 많은 정보를 집어넣어서 기억장치가 다 차버리게 되면 셈틀이 잘 작동하지 못하잖아요? 그러면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적당히 휴지통에 버리고 지워버려야 합니다. 이처럼 정보의 삭제는 사실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정보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버리는 것도 중요하며, 이는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뇌에 정보를 너무 많이 저장하면 작동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따라서 필요 없는 정보는 지워버리는 편이 낫지요. 사실 꿈을 꾸는 동안 이러한 삭제를 포함한 정보의 정리가 이루어진다고 여겨집니다. 사람의 두뇌는 생명현상에서도 흥미로운 문제인데 이를 과연 물리학, 곧 이론과학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가는 극히 중요한 문제라 하겠습니다.
어쨌든 필요 없는 정보를 지우는 과정에서 놀랍게도 필연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 측정, 곧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는 엔트로피가 늘지 않을 수 있으나 삭제하는 과정에서 엔트로피가 늘어나므로 이에 따라 악마를 퇴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과연 삭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에 완벽히 악마를 소멸시켰는지 좀 불확실합니다. 아직도 부활의 여지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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