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뭇알갱이계와 거시적 기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뭇알갱이계와 거시적 기술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52> 거시적 관점과 통계역학 ①

그 동안 동역학이라는 이론 체계를 공부했고, 특히 지난 시간에는 혼돈에 대해서 소개했지요. 동역학을 크게 나누면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와는 별도로 어떠한 시공간 개념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나눌 수도 있습니다. 뉴턴의 고전적 개념, 곧 절대시간과 3차원 공간을 사용할 수 있고, 또는 상대론적 4차원 시공간 개념을 사용할 수도 있지요. 따라서 고전역학 체계에 상대론에서의 새로운 시공간 개념을 쓸 수 있고, 이를 상대론적 (고전)역학(relativistic (classical) mechanics)이라고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양자역학도 처음에는 고전적인 시공간 개념을 가지고 만든 비상대론적 양자역학non-relativistic quantum mechanics이었는데 뒤에 디랙이 상대성이론의 시공간 개념을 바탕으로 해서 전자를 기술하는 이른바 상대론적 양자역학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모두 네 가지의 동역학 이론 체계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역학이란 기본적으로 결정론적인 이론 체계입니다. 처음 상태가 정해지면 나중 상태도 결정되므로 예측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고전역학은 물론이고 양자역학도 사실 그렇습니다. 이미 말했지만 양자역학도 상태 자체는 결정론적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다만 실제로 어떤 물리량을 쟀을 때 얻어지는 값과 상태 사이에 해석의 규칙이 필요하고 거기에 확률이 결부될 뿐이지요. 그런 점에서 보면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모두 결정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혼돈 현상이 알려졌습니다. 결정론이라 생각했던 고전역학 체계가 실제로는 예측불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성질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능력 문제라기보다 수 자체의 성격과 관계가 있습니다. 자연은 본질적으로 수로 기술된다고 전제하는데 실수 체계 자체에 예측불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따라서 혼돈 현상은 자연의 해석에서 결정론이라는 전제를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동역학의 역할이 무엇이지요? 동역학이란 일반적으로 물리학의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이 자연과학의 목적이고 특별히 이론과학, 물리학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자연과학에서는 물질이라는 어떤 실체가 있고 그것에 의해 자연현상이 일어난다고 전제합니다. 자연과학의 출발은 결국 물질이지요. 물질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있고 그들 사이에 적당한 상호작용에 의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자연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입니다. 물질을 구성하는 요소들, 구체적으로 분자나 원자 또는 더 세분해서 양성자, 중성자, 전자 따위의 기본입자들이 있고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 때문에 여러 가지 다양한 자연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물질에서 개개의 구성원들, 예를 들면 원자나 분자, 또는 기본입자들의 상태를 알면 그로부터 모든 자연현상을 이해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이에 따라 각 구성원들의 운동 상태를 기술하는 이론 체계가 바로 지금까지 배운 동역학이고, 고전역학이니 양자역학이니 하는 방법들이 있는 겁니다. 자연현상의 해석에서 이러한 관점을 미시적 관점(microscopic viewpoint)이라고 부릅니다.
  
  뭇알갱이계와 거시적 기술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현상들은 결국 모두 자연현상인데 그것들을 보이는 물질이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지요.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앉아있는 의자와 책상, 분필도 물질이고 여러분 몸도 물질입니다. 이 강의실 안의 공기도 물질이죠. 그런데 이런 물질은 매우 많은 수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뭇알갱이계(many particle system)라고 부릅니다.
  
  이 분필은 조그맣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분자들의 수는 엄청나게 많아요. 우리 몸도 마찬가지지요. 우리가 감각으로 경험하는 모든 물질의 구성원들은 엄청나게 많은 수입니다. 분자로 생각하면 그 수가 어느 정도일까요? 아보가드로의 수라고 기억나죠? 18 g 의 물, 부피로는 18 cm3 이니 서너 숟가락쯤 되는 작은 양이죠. 그 안에 있는 물 분자의 개수가 대략 6×1023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 강의실 안에 있는 공기 분자는 몇 개가 될지 금방 계산할 수 있죠? 표준온도 및 압력, 곧 0°C, 1 기압에서 부피 22.4 리터(L)의 공기에 대략 6×1023개의 분자가 있으니까 강의실에 있는 공기 분자의 개수는 1026 쯤 되겠지요. 아무튼 엄청나게 많습니다.
  
  강의실 안에 있는 공기 같은 계를 미시적인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공기를 구성하는 분자 하나하나의 역학적 상태를 생각하자는 얘기입니다. 고전역학에서 역학적 상태란 구성원의 위치와 속도를 말하므로 강의실의 공기의 상태는 공기 분자 하나하나의 위치와 속도로 결정됩니다. 결국 강의실에 있는 공기를 고전역학으로 다루려면 모든 분자들의 위치와 속도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기술해야 하는데 이는 먼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1026개 각각의 위치와 속도를 지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첫 번째 공기분자가 어디에 있고 속도가 얼마다, 두 번째가 또 어디에 있고 속도가 얼마다, 세 번째가 얼마다 해서 1026개까지 가려면 아마 죽을 때까지 써도 다 못 쓸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실은 원리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현재 21세기에는 인간의 능력이 부족해서 못하지만 언젠가 나중에는, 예컨대 23세기쯤 되면 할 수 있을까요?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정보의 측면에서 보면 이렇게 엄청난 자유도를 지닌 뭇알갱이계의 상태를 규정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만 두지 않고 뭔가 해보려면,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새로운 것이 보일 수 있지요. 만일 공기 분자 하나하나의 상태를 다 알았다면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요? 별로 없겠지요. 사실 공기 분자가 여기와 저기에 있는 거 알아서 뭐 하겠어요? 그래서 발상의 전환을 하자는 것입니다. 공기 분자 하나하나의 위치와 속도에는 관심을 두지 말고, 대신에 공기 분자들 모임의 부피가 얼마쯤 되는지, 압력이 얼마인지, 아니면 온도가 얼마인지 따위에 관심을 기울이자는 것입니다. 얼마나 더운지 추운지, 이 강의실의 온도에는 관심이 있잖아요.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지 분자 하나하나의 위치나 속도 같은 상태는 알 수도 없지만 사실 관심도 없습니다.
  
  따라서 상태라는 개념과 기술하는 관점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이른바 거시적 관점(macroscopic viewpoint)에서 기술하자는 것으로 구성원 하나하나의 상태는 상관하지 말고 대신에 전체의 집단성질을 다루려 합니다. 공기의 부피가 얼마냐는 것은 공기 분자 하나의 성질은 아니죠. 그것은 아주 많은 수의 분자들이 모였을 때 전체 집단의 성질입니다. 마찬가지로 압력과 온도도 전체의 성질이지 분자 하나의 성질은 아닙니다. 이러한 것을 집단성질이라고 부르지요. 부피, 압력, 온도, 전체에너지 같이 집단성질을 나타내는 물리량을 거시적 양(macroscopic quantity)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관심 있는 이러한 거시적 양을 거시적 관점에서 다루는 것이 거시적 기술(macroscopic description)로서 이전의 동역학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의 기술이지요.
  
  이러한 거시적 기술을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이 통계역학(statistical mechanics)입니다. 따라서 이론물리학의 방법을 동역학과 통계역학,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지요. 동역학은 미시적인 기술을 쓰는 방법이고 통계역학은 거시적인 기술을 하는 방법입니다.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방법이지만 통계역학은 동역학 위에서 성립합니다. 다시 말하면 고전역학이란 동역학 체계에서 통계역학을 만들 수도 있고, 양자역학 체계에서 통계역학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고전통계역학(classical statistical mechanics) 및 양자통계역학(quantum statistical mechanics)의 두 가지가 가능하지요. [그러나 엄밀하게는 양자통계역학에서만 논리적 정합성이 유지됩니다.]
  
  두 가지 관점을 비교하기 위해서 이 강의실과 똑같은 강의실이 옆에 있다고 생각해볼까요. 그 안에 있는 분자의 수도 똑같고 압력도 모두 1기압이고 강의실 크기가 같으니 부피도, 그리고 온도와 그 밖에 모든 게 같다고 하지요. 다시 말해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두 강의실의 공기는 똑같습니다.
  
  그러나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둘이 같을 리가 없습니다. 이 강의실과 옆 강의실이 아무리 똑같다고 하더라도 공기 분자 하나하나를 모두 비교해 보면 지금 이 순간 이 강의실에 분자가 여기 있고 속도가 이쪽으로 있는데 옆 강의실에 똑같은 자리에 분자가 똑같은 속도를 갖고 있을 리는 없지요. 그러니까 미시적인 관점에서 공기 분자 하나하나의 상태를 비교해보면 두 강의실의 공기의 상태는 서로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상태, 예컨대 압력, 온도, 부피 따위를 거시상태(macroscopic state)라고 부르는데 두 계가 거시상태는 같아도 동역학에서 다루는 상태, 곧 미시상태(microscopic state)는 일반적으로 다릅니다. 이는 거시상태가 미시상태와 1:1로 대응하지 않음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윷놀이를 할 때 네 윷가락을 던져서 개가 나왔다면 거시상태는 '개'로서 모두 같지요. 그러나 윷가락 하나하나를 보면 네 가락 중에서 둘이 엎어지고 둘이 자빠진 것인데 어떤 두 가락이 엎어졌느냐를 보면 여섯 가지의 서로 다른 미시상태가 있는 셈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모두 '개'라고 하는 하나의 거시상태에 해당하지요.
  
  불과 네 가락의 윷으로도 여섯 가지가 가능한데 강의실의 공기에서는 분자 개수가 엄청나게 많으니 가능한 미시상태는 얼마나 많겠어요. 무수히 많을 터인데 그들 모두 거시상태로는 한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여러 미시상태에 대해서 하나의 거시상태가 대응할 수 있습니다. 윷놀이의 예를 들면 거시상태는 도, 개, 걸, 윷, 모의 다섯 가지가 있고, 각 거시상태에 몇 가지의 미시상태가 대응하는데 그 중에 모나 윷은 한 가지 미시상태만 대응하고, 도나 걸은 네 가지에 대응하고, 개는 여섯 가지가 대응합니다. 전체 미시상태의 수는 물론 이들을 모두 더해서 16 가지가 되지요.
  
  일반적으로 뭇알갱이계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미시상태를 가질 수 있는데 그 중에서 어떤 것들은 하나의 거시상태에 대응하고 다른 것들은 또 다른 거시상태에 대응합니다. 따라서 이 강의실과 옆 강의실의 미시상태가 지나치게 다르다면 거시상태도 다를 것입니다. 예컨대 옆 강의실에서 분자들이 이 강의실의 분자들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인다면 미시상태가 다를 뿐 아니라 압력이나 온도도 다르므로 거시상태도 다르지요. 거시상태 하나에 대응하는 미시상태는 일반적으로 여럿, 흔히 아주 많은 수가 있는데, 어떤 거시상태냐에 따라서 대응하는 미시상태의 수는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어진 거시상태에 대응하는 여러 미시상태 중에서 각 상태의 확률은 모두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사위를 던지면 1에서 6까지 나올 확률이 모두 똑같잖아요. 이것은 확률의 기본 전제로서 '선험적 고른 확률 가설(postulate of equal a priori probability)'이라 말합니다. 선험적으로 확률은 다 고르다고 전제하는 것이지요.
  
  윷놀이를 하면 주로 개만 나오잖아요? 그 이유는 개에 대응하는 미시상태의 수가 가장 많기 때문입니다. 모두 16 가지의 미시상태들이 모두 고르게, 곧 똑같은 확률로 나온다고 전제하면 그 중에 어느 하나가 나올 확률은 1/16이겠지요. 그런데 그 중에 무려 6 가지가 개에 해당하므로 개가 나올 확률은 6/16이 됩니다. 반면에 모는 대응하는 미시상태가 하나 밖에 없으므로 모가 나올 확률은 1/16 밖에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윷놀이를 하다보면 필요한 모는 나오지 않고 개만 자꾸 나오니, 정말 개 같을 때가 많지요.
  
  윷놀이에서 개와 모가 다르게 나오는 이유는 각각에 대응하는 미시상태의 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면 거시상태의 성질을 이해하려고 할 때 거시상태에 대응하는 미시상태가 얼마나 많으냐가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는 짐작이 갑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계의 미시상태가 모두 108, 곧 1억 가지가 있고, 한편 거시상태로는 1, 2, 3, 4, 5의 다섯 가지를 가진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1억 개의 미시상태가 다섯 개의 거시상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생각하는데 1이라는 거시상태에 대응하는 미시상태는 두 가지만 있고, 다음에 2라는 거시상태에 대응하는 미시상태는 14 가지가 있다고 하지요. 마찬가지로 거시상태 3에 대응하는 미시상태는 188 가지가 있고, 4에는 4,732 가지가, 그리고 5에는 나머지 99,995,064 가지가 대응한다고 하지요. 보다시피 거시상태 5에 대응하는 미시상태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네요. 이런 상황에서 계의 거시상태를 관측하면 5에 있을 확률이 얼마가 되겠어요? 1억 분의 9900만 5064, 곧 0.99995입니다. 나머지 상태, 1에서 4까지 네 가지 중에 어느 한 상태 있을 확률은 불과 0.00005 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 이 계는 사실상 언제나 상태 5에 있다는 얘기지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