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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및 사회에서의 혼돈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50> 혼돈과 질서 ⑥

실제로 자연이나 사회에서 혼돈 현상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도 볼 수 있는데, 앞서 언급했지만 염통의 박동도 완전히 일정하지는 않고, 약간의 혼돈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지요. 흔히 뇌파(brain wave)라고 부르는 뇌전도(EEG; electroencephalogram)도 마찬가지지요.
  
  경제학에서 경기순환이나 주식시세 같은 것들도 혼돈을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주식시세의 변화는 규칙적이지 않고 말 그대로 혼돈스럽지요. 떨어져야 할 것 같은데 오르고 오를듯한데 더 떨어지고. 그걸 예측할 수 있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네요. 자연재해나 기상이변 따위도 혼돈 현상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심할 점은 이런 현상들이 마구잡이처럼 보이는 이유가 정말 내재적 비선형성 때문인지, 아니면 외부에서 어떤 마구잡이 요소가 직접 개입하기 때문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요. 앞의 경우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혼돈이고 뒤는 실제로 마구잡이인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그네가 혼돈 현상을 보이는 원인은 외부에서 마구잡이로 밀기 때문이 아니지요. 외부에선 주기적으로, 곧 규칙적으로 미는데, 내재적인 이유로 혼돈을 보이 는 겁니다. 병참본뜨기에서도 외부 마구잡이 요소는 없지요.
  
  반면에 주식 시세 따위에서 볼 수 있는 불규칙성은 내재적인 원인으로 일어나는 혼돈 현상인지, 아니면 '큰 손'이 마구잡이로 휘젓기 때문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뒤의 경우라면 예측은 완전히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앞의 경우라면, 곧 주식 시세의 변동이 마구잡이가 아니라 내재적 비선형성 때문에 생기는 혼돈이라면 완전히 예측이야 할 수 없지만 단기적인 예측은 가능합니다. 실제로 일기예보도 대체로 하루나 이틀 정도는 제법 잘 맞지요. 그 이유는 초기조건이 조금 다르면 궁극적으로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지만, 처음에 잠깐 동안은 거동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단기 예측은 가능한 거지요. 심전도나 뇌전도가 보이는 불규칙성도 혼돈 현상으로 판단할 수 있다면 건강 진단에 보다 유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불규칙성을 보이는 거동이 완전히 외부 마구잡이 현상이라면 그 계 자체적으로 조절할 수 없지만 내재적인 혼돈 현상이라면 적절한 변수를 조금씩 바꿔주면서 혼돈을 제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혼돈공학(chaos engineering)'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요.
  
  그런데 자연에서 과연 '이상적인' 의미로 마구잡이 현상이 존재할까요? 자연에서 전형적인 마구잡이로서 흔히 분자들의 열운동(thermal motion)을 듭니다. 여기서 분자의 운동도 동역학으로 기술한다면 초기조건에 의해 나중의 상태가 정해질 터이고 결국은 마구잡이가 아니라 결정론적이겠지요. 그러나 수많은 분자들의 운동을 초기조건을 지정해서 동역학으로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술 취한 주정뱅이가 아무렇게나 걷는 것을 마구걷기(random walk)라고 합니다. 이러한 거동도 고전역학으로 기술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각 순간의 힘이 주정뱅이의 '마음대로' 정해지므로 명확히 지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예를 보면 마구잡이란 무언가 동역학으로 처리할 수 없는 요소가 개입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다음 강의에서 논의하겠지만 이는 엄청나게 많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자유도(degree of freedom)가 매우 많은 외부 세계 - 환경(environment)이라 부르는 - 의 영향을 말하는데, 결국 정보의 처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주사위나 동전을 던지는 경우도 고전역학에 의해 기술되므로 원리적으로는 결정론적입니다. 곧 초기조건이 같으면 결과도 같지요.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결과가 마구잡이로 나옵니다. 초기조건을 아무리 같게 하려 해도 조금은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 미세한 차이가 완전히 다른 결과를 주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동전던지기는 빵반죽 변환과 사실상 동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여기서도 외부에서 반죽을 마구잡이로 주무른 게 아니지요. 그 변환 자체는 간단하고 규칙적이며 질서정연한데 처음 위치의 미세한 차이가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므로 결국 마구잡이로 나타납니다.
  
  지적했듯이 이러한 현상은 초기조건의 정밀도의 한계와 더불어 실수의 성질에 기인합니다. 이는 인간의 한계라기보다는 자연의 본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뉴턴적인 결정론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고전역학은 초기조건이 주어지면 결과가 정해지므로 결정론이라고 믿어왔지만, 실제로는 이런 혼돈 현상 때문에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양자역학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고전역학 자체에서도 라플라스 방식의 결정론은 타당하지 않음을 보여주지요. 그래서 이를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초기조건의 정밀도도 결국은 정보의 문제이므로 라플라스의 전제에 이미 포함이 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다시 강조하지만 질서와 혼돈은 서로 모순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보다시피 결정론, 곧 질서에서 혼돈이 나오는가 하면 혼돈 자체에도 놀라운 질서가 숨어있습니다. 질서와 혼돈에는 이중성이 있고 어떻게 보면 상호보완적이라 할 수 있지요. 자연의 해석에서 결정론을 완전히 버려야 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지만, 결정론이 전부는 아니고 예측불가능성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므로 두 가지를 상호보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두 가지의 관계는 이른바 '변증법적'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듯하네요. 그래서인지 실제로 마르크스주의는 자연과학적 관점을 강하게 지니고 있습니다.
  
  질서와 혼돈을 보여주는 예로서 물을 끓이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자취하는 학생이 있나요? 라면을 끓여먹으려고 냄비에 물을 부어 불판 위에 올려놓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물의 아래부터 뜨거워지는데 처음에는 물 분자 하나하나가 마구잡이로 움직입니다. 이럴 땐 에너지는 열전도(heat conduction) 현상에 의해서 전달되죠. 말하자면 물 분자 하나하나가 들떠서 마구 돌아다니다가 옆에 있는 분자와 부딪혀서 들뜸, 곧 에너지가 전해지고 같이 들떠서 돌아다니게 됩니다. 아무튼 각 분자는 마구잡이로 움직이지요.
  
  그런데 물이 제법 뜨거워지면 엇흐름(convection)이 일어납니다. 한자어로 대류라고 하지요. 이러한 엇흐름에는 흥미로운 질서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물 분자 하나하나가 마구잡이로 움직이지 않고 많은 수가 떼를 지어 규칙적으로 다니는 거예요. 냄비의 모양에 따라 다르지만 흔히 두루마리 모양의 무늬를 만들며 순환합니다. 마치 단체로 모여서 질서정연하게 응원하는 붉은악마처럼 되는 거죠.
  
  그러다가 더욱 뜨거워지면 계속 단체로 움직이되, 불규칙하게 엉망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붉은악마가 너무나 들떠서 질서를 잃고 난장판이 된 상태라 할까요. 물론 구성원 하나하나가 따로 날뛰는 것이 아니라 떼를 지어 함께 난리를 치는 거지요. 이를 막흐름(turbulence)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바로 혼돈에 해당합니다. 펄펄 끓는 현상이고, 이럴 때 라면을 넣어야 되지요.
  
  다시 강조하는데 처음에 물 분자 하나하나가 제각각 멋대로 움직이는 건 마구잡이 현상입니다. 이와 달리 펄펄 끓는 막흐름에서는 물 분자가 제각각 움직이는 게 아니라 단체로 움직입니다. 따라서 물 분자 하나하나를 고려할 필요 없이 전체를 하나로 보고 다루면 되지요. 처음에는 개개의 물 분자가 따로따로 노니까 이른바 자유도가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엇흐름에서와 같이 모여서 떼를 이루어 한꺼번에 놀게 되면 하나로 볼 수 있으니까 자유도가 적어져서 예컨대 흔들이처럼 기술할 수가 있지요. 그래서 규칙적인 무늬를 보이듯이 질서 있는 거동을 하기도 하지만 막흐름과 같이 혼돈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물을 끓이면 마구잡이에서 시작해서 질서를 보였다가 다시 혼돈으로 가는 등, 질서와 무질서 또는 혼돈이 서로 관련됨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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