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천체의 운동이 과연 이렇게 규칙적이고 간단한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뉴턴의 운동 법칙과 중력 법칙으로부터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을 정확히 얻어내었고 이를 고전역학의 꽃이라고 부른다는 얘기 기억나죠?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릅니다.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정확히 풀어낸 문제는 해와 지구만 있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지구가 해를 초점으로 하는 타원 자리길을 따라 돈다는 걸 정확하게 보일 수 있지요. 그러나 문제는 실제로 태양계에 해와 지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큰 행성만 따져도 지구를 포함해서 8개가 있지요. 따라서 해까지 모두 9개의 물체가 중력에 의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운동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유감스럽게도 고전역학을 적용해서 얻은 운동방정식을 정확히 풀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엄밀하게 말하면 어떻게 될지 잘 모르는 거죠.
그래서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이를 크게 고민했다고 합니다.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을 한 겁니다. 만일 지구 자리길이 불안정하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지구가 해에 끌려갈 수도 있지요. 그러면 지구에서 볼 때 해가 지구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이 무너지는 거죠. 만일에 거꾸로, 지구가 돌다가 해로부터 멀어져서 궁극적으로 태양계 바깥으로 도망갈 수도 있죠. 그러면 결국 해 대신에 다른 별이 가까워지고 역시 하늘이 떨어지지요. 말하자면 밤하늘이 떨어지는 거죠. 아무튼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는 동안에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이 되었지요.
보통 사람이 이러한 고민을 했다면 별일 없이 끝났겠지만, 그 사람은 왕이었습니다. 왕은 자기 고민을 다른 사람보고 풀어달라고 하였습니다. 권력이 있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상금을 걸었어요. 하늘이 무너지지 않음을 증명하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스웨덴의 왕 오스카 2세Oscar II의 회갑 기념으로 연 '수학경시대회' 문제였지요. (참으로 멋진 회갑잔치지요? 요즘 세상에서는 이런 일은 꿈도 못 꾸지요, 권력자가 워낙 수준이 떨어져서 대부분 일반인보다도 못한 듯하니,) 그래서 이걸 풀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푸앵카레가 풀어서 상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푸앵카레는 독일의 리만과 더불어 19세기 최고의 수학자 및 수리물리학자로 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미분방정식 형태로 주어지는 운동방정식에서 시간을 띄엄띄엄하게 생각하면 본뜨기 형태로 환원하여 쉽게 분석할 수 있는데 이러한 푸앵카레 단면을 제안했고 천체역학과 혼돈 등 동역학계, 위상수학, 상대성이론에도 많이 기여했습니다.
프랑스의 서울인 파리에 가보면 공동묘지들이 있는데, 유명한 사람들이 꽤 묻혀 있어요. 이러한 유명한 사람들 묘지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구경을 왔다가 지하철 차표를 한 장씩 놓고 갑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우리 식으로 생각하면 저승 가는 노자로 쓰라는 거 아닐까 싶네요. 그런데 아까우니까 꼭 이미 사용한 표를 놓지요. 새 표를 놓은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몽파르나스(Montparnasse) 공동묘지에 가보면 차표가 엄청나게 많이 있는 묘지가 있습니다. 사르트르(Jean-Paul Sartre)와 보봐르(Simone de Beauvoir)의 묘소이고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묘소에도 차표가 제법 있어요. 그런데 푸앵카레의 묘소도 있는데, 차표가 단 한 장도 없더군요. 사실 푸앵카레가 수학과 물리학에서 이룬 업적은 서양철학에서 사르트르가 차지하는 것 보다 훨씬 중요한데도 관광객들은 아무도 모르는 듯합니다. 역시 '두 문화'의 문제일까요? 사실 공학은 물론이고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도 푸앵카레를 잘 모르는지요? 아무튼 차표가 한 장도 없어서 내가 차표를 하나 놓고 왔어요.
행성계의 안정성 문제는 푸앵카레가 처음으로 풀었지만 완벽하게 푼 것은 아닙니다. 이 문제의 완벽한 풀이는 1960년이 되어서야 얻어졌지요. 먼저 콜모고로프(Andrei N. Kolmogorov)가 풀이를 제시했고 뒤이어 아놀드(Vladimir I. Arnold)와 모저(Jürgen K. Moser)가 독립적으로 이를 확장했습니다. 그래서 콜모고로프, 아놀드, 모저 세 사람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캄 정리(KAM theorem)이라고 불러요. 사실 러시아의 콜모고로프가 먼저 풀었고 역시 러시아의 아놀드가 해밀토니안계에 대해 완결을 지었는데, 러시아, 옛 소련에서의 업적은 서유럽이나 미국에 잘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요. 아무튼 이 정리 덕분에 발 뻗고 자도 되지요. 다행히도 지구 자리길은 사실상 안정되어 있다고 증명했으니 잠잘 때 하늘 무너질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이건 서양 얘기입니다. 1960년이 돼서야 이러한 사실을 알았는데, 서양이 원래 좀 뒤떨어졌으니까 늦어졌나요? 동양에서는 오래 전에 하늘이 무너질까봐 걱정했고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나 봅니다. 하늘이 무너질까봐 걱정하는 걸 '기우(杞憂)'라고 했는데 이는 쓸데없는 걱정을 뜻하지요.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므로 그런 표현을 쓴 거겠죠. 어떻게 알았을까요? 역시 도가 통한 분들이 많았나 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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