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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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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해석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43> 측정과 해석 ④

양자역학에서 표준으로 받아들이는 해석은 보통 코펜하겐 해석(Copenhagen interpretation)이라고 부릅니다. 1927년에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열린 솔베이 국제회의(Solvay International Conference)에 내노라 하는 물리학자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플랑크, 드브로이,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보어, 보른, 디랙 등 쟁쟁한 물리학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여기서 보어와 아인슈타인 사이의 논쟁이 유명하지요. "하느님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말이 이 때 나왔습니다. 보어가 주도한 이른바 코펜하겐 해석이 많이 논의되었고 결국 양자역학의 표준 해석이 됐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인슈타인은 물론이고 슈뢰딩거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도 이러한 코펜하겐 해석에 별로 찬성하는 입장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쩌면 양자역학의 탄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 중에 찬성한 사람이 오히려 적었던 것도 같은데 왜 코펜하겐 해석이 표준이 되었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사실 엄밀하게 보면 코펜하겐 해석은 측정과 관련해서 논리적으로 완전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거의 모든 양자역학 교과서는 코펜하겐 해석에 기반을 두고 있고 물리학 전공 교육에서도 코펜하겐 해석만 가르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과학사 입장에서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네요.
  
  현대 기술은 대부분 양자역학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컴퓨터, 전자기술, 통신을 포함해서 보통 정보기술(IT)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 양자역학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나노기술(NT)과 흔히 유전공학이라고 하는 생물기술(BT)도 상당 부분 양자역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보면 20세기에 자연의 이해에 있어서 양자역학이 대단히 성공적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상의 예측이나 위에서 언급한 응용의 측면에서는 놀랄 만큼 성공적이었지만 가장 기본적인 해석의 문제에 있어서는 논리적인 정합성에 미흡함이 있고 아직도 논란이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이런 말도 있지요. "양자역학은 스스로 파멸의 씨앗을 지니고 있다(Quantum mechanics carries the seed of its own destruction.)"
  
  이에 따라 코펜하겐 해석 밖에도 몇 가지 다른 해석들이 제안되었는데 논리적인 정합성을 지닌 해석으로 현재 두 가지가 알려져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으로 '많은 세계 해석(many-worlds interpretation)'과 '보옴역학(Bohmian mechanics)'이지요.
  
  많은 세계 해석은 조금 전에 지적한 측정의 문제점과 관련해서 상태함수의 환원이라는 '부자연스러운' 개념을 버립니다. 따라서 대체로 우주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상태함수의 환원 대신에 측정할 때마다 세계가 갈래 친다는 '더욱 이상한'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측정할 때마다 우주는 갈라지므로 사실상 무한히 많은 우주와 우리의 미래가 있는 셈이지요.
  
  상태함수의 환원이라는 개념은 보옴(David J. Bohm)이 만든 보옴역학에서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는 양자역학의 또 다른 해석이라기보다 양자역학과는 완전히 다른 체계로서 새로운 고전역학이라 할 수 있지요. 고전역학적 관점에서 출발하지만 놀랍게도 양자역학과 완전히 같은 결과를 주도록 만들어낸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이른바 숨은 변수 이론인 셈인데 비국소성을 지니고 있어서 벨의 부등식과 상관없이 표준의 양자역학과 완전히 같은 결과를 줍니다. 양자힘(quantum force)이라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 아무튼 특이하지요.
  
  보옴은 흥미로운 사람입니다. 양자역학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지요. 보옴-아로노프 효과(Bohm-Aharonov effect: 또는 아로노프-보옴 효과)라는 매우 중요한 현상을 밝혀내어서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사실 노벨상을 받기 어려워요. 미국에서 태어나서 공부하고 아인슈타인과 같이 일했지만 체포되고 대학교수직을 쫓겨나서 미국을 떠났습니다. 공산주의자, 이른바 빨갱이로 낙인찍힌 건데 그러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살기 힘들지요. [사실 나치스 치하의 독일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빨갱이'로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주요 감시 대상이었지요. 다행히 드러나게 탄압을 받지는 않았는데, 노벨상을 미국에 오기 전에 이미 받았고 워낙 유명인사라서 손을 대기 어려웠나 봅니다.]
  
  매카시즘(McCarthyism)이란 것 들어봤어요? 핵폭탄을 개발하는 책임자였던 그의 스승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와 마찬가지로 그것에 걸려들었고, 결국 대학에서 쫓겨나 브라질로 갔다가 영국에 정착해서 살다 타계했습니다. 물리학뿐 아니라 존재론과 인식 등 철학과 인지과학의 근본 문제를 성찰하였고, 특히 인도 및 불교철학 등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지요. 인도 철학자 크리슈나무티(Jiddu Krishnamurti)와 가까웠고 달라이라마(Dalai Lama)와도 교류했으며 미국의 원주민들과도 교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 대륙의 원래 주인들인데 인디아(인도) 사람이 아니니 인디언이란 매우 잘못된 용어입니다.] 특이한 분이고 특이한 이론을 만들어냈는데 주류사회에서는 이른바 왕따 당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최근에는 코펜하겐 해석에 대응해서 서울 해석(Seoul interpretation)이란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교수이셨던 장회익 선생님께서 만드신 독특한 해석으로, 기존의 해석과는 달리 인식론적인 관점에서의 양자역학 해석입니다. 양자역학 자체보다는 한 단계 위에서 동역학의 본질적인 이론 구조를 고찰해서 얻은 해석이지요.
  
  (매주 화,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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