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열린 연례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며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el-Qaddafi)를 몰락시킨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푸틴은 미국의 개입이 리비아의 혼란을 초래했고 결과적으로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미 대사의 죽음을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리아 문제에 대해 러시아가 실수하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최근 2년간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 대통령에 대한 반군의 저항이 거세지고 시리아 정부군의 민간인 학살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독 러시아가 시리아의 군사적 개입을 반대하면서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잃어갈 것이라는 분석에 대한 푸틴의 대답이다. 그는 오히려 나토를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이 리비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면서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푸틴은 "(나토를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그들의 군사적 개입에 대해 어떤 해명을 하든 상관없이 지금 리비아는 무너져 가고 있다"며 "민족, 집단, 종족 간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미국 대사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는 여기서 실수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게 바로 실수 아닌가? 러시아가 다른 나라들이 했던 실수를 또 반복하길 원하는가?"라고 되물었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연례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
하지만 푸틴은 러시아의 조치는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시리아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는 아사드 정권의 운명과 상관이 없다"며 "물론 변화의 요구가 있을 테지만 아사드가 물러난 이후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시리아에 대한 그의 이러한 발언은 유엔 인권 조사관의 조사 결과로부터 비롯됐다. 조사에서는 시리아의 위기가 아사드를 축출하려는 것에서 종파간의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리아 내부의 집단들이 서로를 적으로 삼고 있고 이 갈등에서 이기기 위해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용병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푸틴은 시리아의 현재 상황이 갈등으로 치닫는 와중에 아사드 정부와 반군이 싸움이 수그러들지 않은 상태로 단지 정권만 교체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러시아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 면밀히 따져보고 있다며 "우리는 시리아의 붕괴와 끝나지 않는 내전으로부터 시리아와 중동 지역을 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사드 정권의 연장을 돕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시리아 사람들이 아사드 정권이 물러난 이후 어떻게 자신들의 미래를 그려나갈지, 사회의 안전과 기대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합의를 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합의에 따라 현재 상황을 바꿔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열린 기자회견을 전하며 최근 러시아에서는 아사드의 정권 연장을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관리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시리아로부터 러시아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근거라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시리아의 오랜 동맹국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미국과 기타 국가들에 의한 군사적 개입과 아사드 정권의 자주적 방어 모두에 거부권을 행사해왔다.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가 아사드 축출에 도움을 주길 바라는 마음에 러시아의 입장변화를 민감하게 관찰하고 있지만, 실제로 러시아가 아사드에게 정권을 포기하라고 설득할지는 확실치 않다.
러시아는 시리아 무기의 주요 공급처이자 아사드 정권의 중요한 경제적 동반자다. 1971년부터 시리아 타르투스 항구를 러시아의 해군기지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푸틴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 시리아는 단지 '업무상의 관계'라고 해명했다. 그는 "(러시아와 시리아가)특별한 관계인가? 아니다. 아사드는 그의 재임기간 중 모스크바에 온 적이 없다. 오히려 파리나 다른 유럽국가의 수도에 더 자주 방문했다"고 말했다.
시리아 갈등, 집단·종파 간 갈등으로 확대
아사드 대통령과 반군의 대립으로 시작한 시리아 내전이 내부 집단 간 갈등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유엔 인권이사회 중간보고에 참석한 한 패널의 말을 인용해 시리아 갈등이 종파분쟁으로 치닫고 있다고 보도했다.
브라질 인권 조사관 파울로 피네이로(Paulo Pinheiro)가 이끄는 유엔 조사단 일원인 이 패널은 서로에 대한 공격과 그에 따르는 보복이 집단들을 무장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 두 달간 시리아를 관찰한 중간 보고서에 "모든 집단들이 시리아에서 축출되거나 살해당할 수 있다는 위협을 안고 있다"고 기록했다.
그는 아사드 대통령을 비롯하여 시리아의 정치·군사 부문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시아파의 알라위트파와 시리아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수니파의 대립이 가장 첨예하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런데 이 갈등이 아르메니안, 기독교인, 드루즈파(시아파의 한 분파), 팔레스타인, 쿠르드족, 투르크만족에게까지 퍼져가고 있는 것이 최근의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패널은 외국에서 온 용병들 중 시리아 내전에 연루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웃 국가인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수니파 무슬림'이라고 말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극단주의자 그룹과 연관된 사람들이며, 종종 자유 시리아군의 반대 입장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레바논의 대표적인 시아파인 헤즈볼라는 아사드 정부를 위해 싸우고 있다. 이라크의 시아파 역시 시리아로 들어왔다. 이란에서는 이란 혁명 수비대가 아사드 정권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의 4번째 보고서를 만들면서 조사관들은 시리아 정부와 그 지원군들이 수니파의 시민들을 공격하고 있고 반군은 알라위트파와 다른 정부 지원 집단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쿠르드족은 정부와 반군 사이에서 의견 충돌을 벌이고 있고 투르크만족 군대는 반군과 함께 싸우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정부와 반군 모두로부터 군비를 조달받고 있다.
한 패널은 "시리아의 갈등이 장시간 계속되면서 집단 간 갈등은 더 과격해졌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제법을 어기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있다"며 시리아의 현 상황을 전했다.
러시아 하원의 대미인권법 합당하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하원이 미국인들의 러시아 아이 입양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대미(對美) 인권 법안 심의에 착수한 것은 합당한 대응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인의 러시아 아이 입양 금지 법안은 입양아 문제에 대해 필요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미국 정부를 겨냥한 것"이라며 "미국은 러시아 당국자들이 러시아 입양아들이 사는 가정을 방문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은 러시아 의회의 대미 인권법안 심의를 촉발한 미국의 대(對)러 인권법 채택과 관련해 이 법은 러시아와 미국 관계에 해를 끼칠 뿐이라며 양국 관계를 과거로 되돌리는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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