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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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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내용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39> 양자역학 ④

뉴턴의 고전역학에서는 주어진 대상에 작용하는 힘을 먼저 살펴보고, 힘을 모두 더해서 얻은 알짜힘을 대상물체의 질량으로 나누어 그 대상의 가속도를 구합니다. 그리고 가속도를 적분하면 임의의 순간에서 속도와 위치를 얻을 수 있고 이는 곧 그 대상의 상태를 이해한 것입니다. 따라서 할 일이 다 끝난 거지요. 물론 뉴턴역학 대신에 해밀턴의 원리에서 출발할 수도 있습니다. 힘 대신에 주어진 대상계의 작용 또는 해밀토니안, 곧 에너지를 고려합니다.

양자역학에서도 먼저 주어진 계의 해밀토니안, 곧 계의 에너지를 기술해주는 함수 꼴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슈뢰딩거방정식을 쓸 수 있고, 이 편미분방정식을 풀어서 계의 상태함수를 얻으면 됩니다. 상태함수를 얻으면 사실상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고 할 일이 다 끝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것을 제곱해서 확률을 얻으면 감각기관을 통한 현실세계와 연결할 수 있습니다.

확률의 뜻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지요. 어떤 계의 해밀토니안이 주어지면 그 계가 가질 수 있는 상태들이 정해지게 됩니다. 주어진 해밀토니안에 대해 가능한 상태를 고유상태(eigenstate)라고 부릅니다. 계가 가능한 고유상태 중에서 실제로 어떤 상태에 있느냐를 확률로 기술한다는 것입니다.

겹실틈의 예를 생각해보지요. 겹실틈에 전자를 보내면 그것이 두 실틈 중에 어디로 지나갔느냐에 따라 두 가지 상태가 가능합니다. 위쪽 실틈으로 지나간 상태와 아래쪽 실틈으로 지나간 상태가 계의 두 가지 고유상태입니다. 위로 지나간 고유상태를 기술하는 고유함수(eigenfunction)를
이라 나타내고 아래로 지나간 고유함수를
라 하면 전자의 일반적인 상태함수
는 이 두 고유상태가 포개져 있는 것으로 주어집니다. 포개짐(superposition)을 한자어로는 중첩이라고 하지요. 식으로는



로 쓸 수 있습니다.

포개진 상태라서 위쪽으로 지나간
상태와 아래쪽으로 지나간
상태가 다 가능합니다. 그 두 가지 중 어디로 지나가는가, 곧 두 고유상태 중 어느 상태에 있는가는 확률로 주어집니다. 상태함수의 절대값을 제곱하면 확률이 된다고 했지요. 위의 식의 절대값을 제곱하면

가 됩니다.

상태함수는 보통 복소수로 주어질 수 있으므로 별표(*)는 허수부의 부호를 바꾸는 복소켤레(공액; complex conjugate)를 뜻합니다. 복소수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은 별표를 무시해도 괜찮습니다. 여기서
은 각각
상태 및
상태에 있을 확률에 해당합니다. 만일 두 실틈이 완전히 같아서 각 실틈으로 지나갈 확률이 같다면
이지요. 그러면 서로 다른 두 상태함수
가 곱해진 항은 무엇을 나타낼까요? 흥미롭게도 이는 두 상태의 간섭을 나타냅니다. 이른바 전자의 파동성을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항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두 가지 고유상태가 포개진 상태
에 있는 계의 상태를 실제로 측정하면 놀랍게도 고유상태 중 하나, 곧
이나 또는
로 바뀌어 버립니다. 측정하지 않으면 전자가 위쪽 길로도 지나가고 아래쪽 길로도 지나가는데 실제로 어디로 가는지 측정하면 전자는 위쪽 길로 지나갔거나 아래쪽 길로 지나갔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전자가 쪼개지지 않는 상황에서 양쪽 길 모두 동시에 지나갈 수야 없지요. 그러나 측정하기 전에는 두 가지가 포개진 상태로 있습니다.

거듭 강조하는데 측정하기 전에도 우리가 모를 뿐이지 전자가 실제로는 두 가지 중에 한 쪽 길로 지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측정을 하지 않으면 위쪽 길로 지나가는 상태와 아래쪽 길로 지나가는 상태가 같이 포개져 있는 것입니다. 마치 파동을 보내면 이리로도 가고 저리로도 가는 것처럼 전자도 각 길로 가는 두 상태가 포개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디로 지나가는지 일단 측정하면 분명히 둘 중에 어느 한 쪽 길로 간다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이는 전자의 상태 자체가 측정하는 순간에 두 고유상태
중에 하나로 바뀌게 됨을 뜻합니다. 이런 현상을 상태함수가 고유함수 중 어느 하나로 붕괴(collapse) 또는 환원(reduction)된다고 표현합니다.
▲ 베르너 하이젠베르그

둘 또는 그 이상의 고유상태 중에 어느 쪽으로 환원되느냐하는 것은 측정하기 전에는 알 수 없고, 다만 확률로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 지적했듯이 전자를 겹실틈에 보냈을 때 어디로 지나가는지 측정한다면 위쪽과 아래쪽으로 지나간다는 결과를 얻을 확률이 각각
이지요.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측정을 함으로써 대상의 상태가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상태가
로 주어진 계에서 측정을 하면 상태가
중에 하나로 바뀌게 된다고 지적했지요. 만일 측정을 하지 않았다면 계의 상태는 그냥
로 남아 있을 터인데 결국 측정이 대상의 상태를 바꿔버린 것입니다. 이는 고전역학과 완전히 다르지요.

고전역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인식과 관계없이 우주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알다시피 고전역학의 철학적 배경을 보면 데카르트(René Descartes)적인 사고가 담겨져 있습니다. 서양철학의 핵심은 결국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이고, 그 원류는 플라톤(Plato)에 있다고 하지요. "서양철학사는 플라톤의 각주(footnote)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양철학은 몇 천 년을 지나봤자 결국 플라톤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얘기지요.

이 말을 한 사람이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로 기억합니다. 이른바 과정철학(process philosophy)으로 널리 알려진 20세기의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 러셀(Bertrand A.W. Russell)이란 사람은 다 알죠? 화이트헤드와 러셀은 둘 다 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수학자로 출발했고 실제로도 수학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러셀의 역설(Russell's paradox) 같은 것은 수학 기초론에 아주 중요한 공헌을 했고 특히 두 사람의 공저인 ≪수학의 원리(Principia Mathematica)≫는 수학의 공리체계를 새롭게 바꾸고 이로부터 수학의 명제를 얻어내는 작업을 한 명저로 꼽힙니다. 물리학에도 조예가 있어서 화이트헤드는 물리학적으로는 중요하게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아인슈타인과 조금 다른 상대성이론을 제시하기도 했고 러셀도 몇 가지 물리학에 대한 저서를 남겼습니다. 두 사람 모두 과학철학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지요.

화이트헤드의 저서 중에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난해하기로도 유명합니다. 관심 있으면 한 번 열심히 읽어보세요. 문장도 난해하지만 철학, 수학, 그리고 물리학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철학을 전공하는 분들은 수학, 물리학을 모르고 물리학 전공인 나 같은 사람은 철학을 모르니 이해하기 어렵지요. 따라서 제대로 이해하고 번역하기가 매우 힘들 겁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말로 번역이 되어 있지만 오히려 더 어렵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러셀은 더욱 흥미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수학과 철학, 특히 인식론과 논리학, 분석철학, 과학철학, 언어철학, 그리고 교육, 종교, 정치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정열적으로 활동하였고 많은 업적과 저서를 남겼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했고 말년까지 반전, 반핵, 평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해서 투옥되기도 한 참으로 놀라운 사람입니다.

아무튼 고전역학에서는 인간의 인식과 관계없이 물질이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사고가 깔려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가 사실 우리의 인식에도 영향을 많이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 세대에서는 아니겠지만 예술에서 순수냐 참여냐 하는 논쟁이 상당히 활발하게 있었습니다. 고전역학에서는 우리가 대상의 운동 상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 위치나 속도를 측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전제돼 있습니다. 이는 다분히 순수주의 쪽의 바탕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의 의식과 물질은 관계가 없고, 우리는 대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인식할 수 있다는 관점이지요.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알다시피 측정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대상의 상태 자체를 바꿔 버립니다. 측정이 필연적으로 대상에 영향을 주며, 따라서 대상과 상관없이 우리의 인식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사고의 변화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순수냐 참여냐 하는 말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 에르윈 쉬뢰딩거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해석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양자역학을 반대한 입장에 섰던 사람으로 아인슈타인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사실 양자역학의 형성에 커다란 공헌을 했지요. 빛전자효과라던가 빛알 이론은 양자역학의 토대가 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 자신은 양자역학을 받아들이기를 꺼렸습니다. 그의 말 중에 "하느님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God does not play dice)"가 유명하지요. 양자역학의 확률적인 해석을 못마땅해 한 것입니다. 측정하기 전에는 확률로서만 말할 수 있다니, 결국 하느님이 주사위를 던져서 자연 법칙을 결정한다는 뜻이냐고 말한 것입니다. 이는 실재성과 관련되어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더 이상한 점은 이런 것입니다. 측정이 대상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했는데, 어떤 대상을 측정했느냐 안 했느냐가 그 대상을 다르게 바꾼다는 얘기지요. 그러면 여러분이 밤하늘에 달을 볼 때랑 안 볼 때랑 달이 달라진다는 얘기입니다. 달을 본다는 것은 측정하는 것이지요. 달에서 나온 빛을 눈으로 측정하는 것이니, 여러분이 달을 쳐다보느냐 아니냐가 달에 영향을 준다는 말이 됩니다.

이것이 믿어져요? 극단적으로 말해서 과연 쳐다보지 않으면 달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현상이란 언제나 관측된 현상일 뿐이다(A phenomenon is always an observed phenomenon.)" 관측하지 않은 현상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양자역학의 해석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생겨나는데 다음 강의에서 다루기로 하지요.

(매주 화,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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