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감동'이나 '희망'이라고 하기엔 멋쩍다. 우리 손으로 선택했으므로 인정해야 할 '현실'이란 말이 훨씬 생생하게 와 닿는다. 처음부터 1등이던, 4년6개월의 대세론을 누린 후보가 대통령이 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박 당선인이 선거기간 내내 외쳤던 '시대교체'와 실제의 박근혜에게 투영되는 변화의 기대 사이에 괴리가 큰 탓이다. 새 대통령을 뽑은 날 내보내는 글로는 사나울 수 있겠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 역시 이제부터 직면해야 할 바가 현실이기에, 이해를 당부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보수와 진보도 내전 수준으로 맞부딪혔다. 1971년 박정희와 김대중이 맞붙은 7대 대선 이후 41년만의 양자대결이 파생시킨 국민적 갈등은 넓고 깊고 오래가는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더구나 '진보의 시대'로 향해가는 세상의 흐름은 '보수의 총아'인 박 당선인의 지향과 파열음을 빚을 수밖에 없다. "줄푸세와 경제민주화가 다르지 않다"는 그의 인식에서 그 일단을 엿보았다.
국민정서도 반드시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야권에 투표한 표심에는 야권 후보가 좋아서라기보다 박근혜가 싫어서 찍은 표가 상당히 섞여있다. 단순한 비호감의 정도를 넘어선 거부감과 분노를 보았다. 유신을 경험한 세대는 "독재자의 딸"이라고 했다. 젊은이들은 TV토론에 나온 그의 모습에 듣기 민망한 조롱을 쏟아냈다. 그의 눈빛에서 공포를 느꼈다는 이들도 있었다.
숱한 이유로 반대편의 48%에 묶인 이들은 추상이 아니다. 정치적 실체다. 이런 현실 앞에 박 당선인은 "100% 국민대통합"을 얘기했다. 불가능하다. 그러나 통합에 대한 의지만큼은 지켜나가길 바란다. '과반 대통령'의 힘보다 '여성 대통령'의 섬세한 리더십이 발휘돼야 길이 열린다. 분열의 치유는 그의 진정성으로부터 국민들에게 스며들 것이다.
박 당선인의 임기 초반, 2014년 6월 지방선거까지의 1년4개월이 중요하다. 임기 초 '국정쇄신 정책회의'를 설치하고 정치쇄신 계획을 실천하겠다는 약속에 주목한다. 계층과 세대, 이념, 지역을 대표하는 시민대표, 야당이 추천하는 인사까지 수용하겠다고 했다. 이런 통합적 행보가 지속적으로 쌓여야 박 당선인을 향한 우려와 거부가 누그러진다.
사회경제적으로는 '박정희 패러다임'을 넘어서려는 각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박 당선인이 박정희의 정치적, 생물학적 유전자를 물려받은 적통이라는 점에서 가혹한 주문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거치며 '성장'과 '경쟁'을 세상의 유일 가치로 주입받은 우리사회에 '나누면서도 같이 잘 사는 길'을 바라는 의식이 크게 성장했음을 확인했다. 박정희 패러다임과의 적대적 긴장이다. 박 당선인의 열렬한 지지층이 성장의 시대에 소외되고 박탈당한 도시와 농촌의 약자들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정책적 방향과 실체는 조만간 드러날 용인술로 증명될 것이다. 그의 주변엔 '개발연대'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이 수두룩하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의 견인차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견제하고 비판한 사람들이 그들이다. 국정의 원리와 계파의 원리는 달라야 한다. 박근혜를 향한 '가신의 충성심' 외에 시대에 맞는 소양을 갖추지 못한 '친박(親朴) 그룹'과 이제는 거리를 둬야 한다.
선거는 끝났다. "우리 모두의 승리"는 좋은 말이지만 그런 건 없다는 걸 우린 다 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만족스럽지만 누군가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은 선거를 거치며 숙성해가는 민도의 체험이 민주주의다. 승자에게 겸손과 아량이 절대적인 덕목이듯 패자 진영의 승복과 반성도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요체다. 승자를 격려하고 패자를 위로하는 중심에서 박근혜 당선인이 제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