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령(太史令)의 직책에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맡은 일을 하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유언으로 당부했던
방대한 역사책의 저술에도 정성을 쏟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장군이 외적과 맞서 싸우다가
항복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조정의 모든 대신들이 그 장군을 비난했고
왕도 장군의 가족들을 모두 잡아 죽이라고 할 정도로
화를 냈습니다.
이 때 태사령이 나서
그 장군은 5천의 군사로 8만의 적을 맞아
열흘이나 용감하게 싸웠으나 힘이 부쳐
어쩔 수 없이 거짓 항복을 한 것이라며
왕의 처사가 부당함을 지적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더욱 화를 내며
태사령을 궁형(宮刑)에 처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궁형이란 남자의 생식기를 자르는 형벌로
사형보다 더 치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옥에 갇힌 태사령은 그 안에서
자신이 쓰던 역사책을 계속 쓰면서
그 심경을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적어 보냈습니다.
"사람이란 누구나 한 번은 죽기 마련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태산(泰山)과 같이 무거울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홍모(鴻毛)와 같이 가벼울 것이네.
그런 차이는 그 쓰임새가 다르기 때문이지."
동양 최고의 역사서라고 평가받는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이
한무제(漢武帝)로부터 궁형을 당하고 감옥에 갇힌 후
친구인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입니다.
치욕스러운 궁형을 받고도 살아 있는 이유는
자신의 목숨을 기러기의 깃털처럼 가볍게 버리기보다
태산처럼 무겁게 쓰기 위해서라는 것이지요.
사마천에게 그것은
'사기'를 완성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마천이 친구에게 한 말에서
가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비교하는
'태산홍모(泰山鴻毛)'라는 말이 나왔는데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사마천과 같은
힘들고 외로운 선택의 시간을 맞곤 합니다.
그 때
홍모가 될 것인지 아니면 태산이 될 것인지는
평소에 얼마나 부지런히
내공을 쌓아 놓았느냐에 달려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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