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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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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태규 명리학 <332>

또 하나의 청명절을 맞아

중국은 금년부터 청명절을 휴일로 지정했다. 이는 단순한 전통의 복원이 아니다.
  
  중국은 공산주의를 통해 서구 근대화의 정신을 받아들였다. 그로 해서 중국은 그들의 고유한 문화를 모두 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의미의 文化大革命(문화대혁명)을 단행했고, 그 과정에서 전통 명절인 청명절도 폐지되었다.
  
  그런 까닭에 이번부터 청명절을 휴일로 했다는 것은 문화대혁명이 실패이자 과오였음을 에둘러 인정하는 중국식 의사표현이다.
  
  중국은 전부터 '사회주의식 시장경제'라는 애매한 표현을 써왔지만, 이 말에는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는 모두 당신네 서구인들의 관점일 뿐, 우리 중국은 장차 그런 것에 개의치 않겠다는 주체적 의지가 담겨져 있다.
  
  따라서 이번의 청명절 휴일 지정은 그들이 누렸던 과거의 위상을 조만간 되찾을 수 있고 또 되찾겠다는 강한 자신감의 표명이다. 이는 곧 등소평이 제시한 小康(소강)사회를 조만간 넘어 그들의 목표인 국내적으로는 大同(대동)사회를 건설하고 국제적으로는 '大國屈起(대국굴기)'로 가는 행보의 하나라 하겠다.
  
  그런데 이런 중국의 청명절 휴일 지정 소식을 전하는 국내 신문과 매체들의 기사를 읽다보니 의미부여와 해석을 떠나 기본적인 사실을 혼동하고 있었다.
  
  모 신문 기사는 "청명절은 본디 황제가 자신을 위해 희생한 충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라고 보도하고 있었다. 그것은 寒食(한식)이지 청명이 아니다. 다른 매체들도 찾아 읽어보니 매양 한 가지로 잘못 알고 있었다.
  
  은근히 열이 나던 차에 방송의 보도를 접하니 부아가 거세게 치밀었다.
  
  귀여운 앵커 아가씨가 식목일과 한식을 맞아 전국도로가 분주하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청명'이란 말은 들리지 않았다. 중국의 청명절 휴일 지정은 물론 동아시아 여러 나라가 모두 청명절 휴일을 즐기는 마당에, 우리의 경우 휴일은 아닐지언정 아예 청명이란 개념마저 이젠 망각되었구나, 갑자기 속이 아려왔다.
  
  전통과의 단절, 문화의 공백, 주인은 간 곳이 없고 객들만 설치는 난장판, 동아시아의 외톨이, 갖은 생각들이 일순 쏟아졌다.
  
  사흘 정도 지내면서 치밀었던 부아를 가라앉히고 그 앵커 아가씨와 방송국을 용서하고 아울러 신문기자님들도 모두 용서한 뒤, 마음을 새롭게 해서 이 글을 쓴다.
  
  한식은 '차가운 밥'을 먹는다는 뜻이다. 동지로부터 105 일째 되는 날로서 작년에 쓰던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씨를 당기기 전에 잠시 불을 금하던 고대 종교 풍습에서 온 것이다.
  
  이는 送舊迎新(송구영신), 묵은 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이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작년에 쓰던 불씨도 보내야겠지만, 불은 소중한 것이니 잠시 불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기후가 온화해지는 이맘때에 최종적으로 묵은 불씨를 끄고 새롭게 불씨를 당기는 것이 한식의 본뜻이다.
  
  이에 그 뜻을 잘 모르는 대중들에 의해 다시 여러 얘기가 지어지고 덧붙여지면서 한식으로 전해져왔다.
  
  송구영신의 개념은 결국 우리의 삶 역시 한 해 단위로 또 다시 부활하고 재생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한식은 기독교의 부활절과 종교적 의미면에서 거의 같은 것이다.
  
  淸明(청명)과 한식은 거의 같은 시기이지만, 그 뜻도 다르고 산출방법도 다르다.
  
  청명은 1 년 365와 1/4 일 정도에 해당되는 기간을 12 등분해서 동지로부터 3과 1/2 되는 시점을 잡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식과 비슷한 날에 잡는 결과가 된다.
  
  금년의 경우, 청명은 4월 4일이고 한식은 4월 5일이었다. 비슷하다보니 사람들은 잘 구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또 한식에 성묘를 하다 보니 더욱 그렇게 되었다.
  
  나온 김에 한식에 성묘를 하는 이유도 얘기해보자.
  
  조상을 모신 산에 수시로 들러 안부를 전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지만, 추운 겨울에는 아무래도 찾아뵙기가 어렵다. 특히 찬 공기로 폐렴이라도 걸리면 안 되는 까닭에 날만 풀리면 바로 찾아뵙는 것이 도리라 하겠다.
  
  그런데 한식 무렵에는 기후가 온화하므로 이때까지도 성묘를 하지 않는 자는 실로 불효한 자라 여긴 것이다. 다시 말해 한식은 성묘하는 날이 아니라, 성묘를 가야할 최종 시한인 것이다.
  
  한식까지만 찾아온다면 먼저 간 조상도 이해해주겠다는 차원인 것이지 한식에만 성묘를 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조상을 섬기는 마음이 있다면 한식 전에라도 미리미리 성묘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또 省墓(성묘)란 말은 '묘소를 들러 살펴본다'는 의미임도 밝혀둔다.
  
  그러면 淸明(청명)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자. 왜 청명이 중요한 날인지를.
  
  청명은 '하늘이 맑고 밝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기후가 온화하고 양기가 가득하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청명으로서 일 년 열 두 달의 하나인 辰(진)월이 시작되는데, '진'이라는 말에는 그 또한 의미가 있다.
  
  辰(진)은 그 의미가 '별' 또는 '날'이라는 의미이다. 진월로서 사실상 한 해의 모든 활동이 본격화되는 새 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양력 4월초의 청명으로서 진월이니 한 해의 모든 활동들이 본격화된다. 무슨 일들이 본격화된다는 것일까?
  
  겨우내 숨죽였던 풀들이 이 달로서 싹을 틔우고, 곡물의 파종, 씨뿌리기가 시작된다.
  
  식물들이 꽃을 활짝 피우는 것은 짝짓기를 하기 위함이다. 식물들의 섹스가 시작되는 철인 것이다.
  
  식물들만 그런가. 모든 동물들도 그렇다.
  
  옛글에 보면 이 달로서 암말은 발정을 시작한다고 되어있지만, 실은 모든 동물을 포함하여 인간도 春心(춘심), 즉 이성에 대한 성욕이 발동되는 시기인 것이다. 그렇기에 진월은 꽃피는 춘삼월이고 싱송생송한 때인 것이다. 단적으로 이몽룡과 성춘향이 연애 거는 시절이다.
  
  물론 연애만 하는 시절이 아니다. 청명으로서 모든 사회 정치 경제 활동이 본격화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남녀의 연애는 후손을 낳는 생산의 시작이듯이, 모든 생산 활동이 표면화되는 시기가 바로 청명인 것이다. 식목일을 4월 5일로 한 것도 바로 청명을 날로 잡은 것이다.
  
  우리 마음에 있는 따뜻한 봄이란 추위가 남아있는 양력 2,3월의 이른 봄이 아니라, 바로 이 달인 辰月(진월)이며 춘삼월인 것이다.
  
  청명으로서 산과 들에 나가보면 온화하고 또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시원함을 느낀다는 것은 기후가 온화하기에 그런 것이다.
  
  청명으로서 겨우내 땅속에 얼어있던 수분들이 녹아서 지표로 올라와 증발하는 것이 본격화된다. 따뜻해진 땅은 그 수분과 함께 상승기류를 만들어낸다. 그러면 천공에서는 찬 공기가 내려온다.
  
  그 결과 온습한 상승기류와 건조하고 차가운 하강기류가 섞이면서 부단히 구름을 만들어낸다. 그 구름은 순식간에 흩어지고 다른 모양을 만들며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우리 先人(선인)들은 바람이 흐른다고 해서 風流(풍류)라고 했다. 또 그처럼 자유자재하여 막힘이 없이 천지간에 흘러 다니는 无涯(무애)의 정신을 또 풍류라고 했다.
  
  우리의 삶은 조건에 있어 기본적으로 척박하다. 모든 것에 제한이 있고 제약이 있다. 많이 가졌어도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는 일이며, 오래 산다 해도 영원히 살 수는 없다.
  
  부귀도 잠시이며 영화도 잠시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빈천도 잠시이며 굴욕도 잠시인 것이다. 그저 한 때 그럴 뿐이다.
  
  설령 우리의 삶이 척박하지 않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생명은 有限(유한)하기에 제약과 제한은 생명 있는 개체의 숙명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은 특별하다. 제약을 벗어날 순 없지만, 초월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超越(초월)이란 사물의 제약을 정신의 자유로움을 통해 넘어서는 행위이다. 산더러 오라고 해도 오지 않으면 내가 산으로 다가가는 것이 초월이다.
  
  초월이란 안 되는 것을 애써 부정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더욱 더 강렬한 삶의 힘을 발현하는 행위이다.
  
  사랑하는 당신과 백년을 살 순 없다 해도 이 순간 서로의 진실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랑을 통한 초월적 행위이다.
  
  우리 선인들은 청명이면 들에 나가 바람의 얽매이지 않는 모습, 풍류를 보면서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고 그를 통해 삶을 초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그런 놀이를 逍風(소풍), 자유로운 바람과 함께 노는 것이라 했다.
  
  청명은 당연히 휴일이어야 하는 것이니, 휴가를 내어서라도 나가야 한다. 이 달에 들로 나가 콧바람을 쐬지 않으면 올 한 해를 헛되이 보내는 것이고, 한 해를 헛되이 하는 자는 일생을 헛되이 할 것이니 마땅히 나가야 할 것이다.
  
  청명이다, 모두 시간을 내어 들로 나가서 시원한 바람을 본받아서 우리의 삶을 초월해보자. 돈이나 명예, 때 묻은 욕망으로부터 한 번 크게 넘어서보자.
  
  (전화:02-534-7250, E-mail :1tgkim@hanmail.net)
  김태규의 명리학 카페 : cafe.daum.net/8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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