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일본 공산당 기관지인 『아카하타(赤旗)』에도, 우파 언론인 『산케이(産経) 신문』에도 동시에 기고하는 등, 현실 정치 세계 속에서 명확한 사상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가끔 그의 초기 단편들을 접하게 되면, 대하 만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사과시계」(時計仕掛けのリンゴ)라는 제목의 작품도 데즈카 작품 중에 내가 비교적 좋아하는 만화 중의 하나이다.
「사과 시계」라는 제목은 앤소니 버제스(Anthony Burgess, 1917-1993)의 디스토피아(Dystopia)소설 『오렌지 시계』(A Clockwork Orange) 에서 따왔다고 한다. 『오렌지 시계』는 1971년에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1928-1999)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명배우 커크 더글러스(Kirk Douglas)가 출연한 영화 「스파르타쿠스(Spartacus)」(1960)를 만든 그 감독이다.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의 정반대 뜻으로, 철저하게 관리되는 근미래 통제사회의 뜻을 담고 있다.
데즈카는 『사과시계』에서 일종의 대체역사(Alternative History)적인 기법을 동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 혹은 다소 SF적인 성격을 감안하면, 혹시 월면 기지를 그린 근미래 소설 복거일의 『파란 달 아래』에 닮아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황우석 사건으로 주목받은 영화 「아일랜드」나, 「혹성탈출」, 혹은 조지 오웰의 『1984년』도 이런 종류일지 모르겠다. 사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일정한 가정 하에 재구성하는 설정방식은 데즈카의 대표작인 『불새』에서도 그 전형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지방 소도시에서 일어난 쿠데타
『사과시계』는 지방 소도시 이나다케 시를 무대로 펼쳐진다. 자위대의 일부 급진 군인들이 쿠데타를 음모한다. 쿠데타의 사상적 배경은 전혀 그려내고 있지 않다. 다만 주모자가 전전(戰前)의 일본 군인들이 일으켜 실패로 끝난 쿠데타 미수 사건인 5.15사건(1932)과 2.26사건(1936)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전전 국가주의자의 계보를 잇는 듯이 묘사하고 있지만, 우익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군대, 혹은 전체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지은이는 인물 설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자위대 군인들은 도쿄에서 쿠데타를 일으키기에 앞서 이 도시를 예행연습의 대상으로 삼는다. 쿠데타 결행 약 한달 전부터 프로마이신(puromycin)이라 불리는 약재를 시내에 공급되는 쌀에 몰래 함유시켜 사람들의 인지능력, 저항능력, 비판 능력을 감퇴시켜나간다. 시민들은 서서히 약물의 영향으로 서서히 '순한 양'이 되어간다. 시민들이 순응적으로 바뀌었다고 판단되자마자, 이 도시로 향하는 모든 다리, 도로를 출동한 자위대가 무력을 동원해 차단한다. 이 도시는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된다. 방송도 차단되고, 신문은 이 도시에서 새롭게 제작된 '가짜신문'으로 대체된다. 사람들은 점점 무력해지며, 아니 자신이 무력해졌다는 사실조차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분식이 쌀보다 건강에 좋다'는 아내의 성화 때문에 하루 세 끼를 빵만 먹고 생활하는 주인공은 주위 사람들의 변화 등에 의문을 가지고 있던 중, 자위대에 의해 이 도시가 강제로 봉쇄되었으며, 또한 약물 중독으로 시민들의 인지능력, 저항능력이 상실되었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은 양어장에 있던 물고기에 'SOS'라는 글자를 새겨 넣어 강 하류에 방류함으로써 외부세계와 '소통'을 꾀한다. 결국 자위대의 쿠데타는 이 '소통'으로 좌절된다.
이 작품은 몇 가지의 설정에 의해 은유된다. 하나는 무대가 된 도시의 설정이다. 이 도시는 산악에 둘러 싸여 있는 산골 마을이면서도 주로 시계 같은 정밀기계공업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도시 중간층 월급쟁이 중심의 현대적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는데, 전후 사정으로 보면, 실제로 일본의 나가노(長野)현에 있는 스와(諏訪)시를 연상케 한다. 스와 시는 시계로 유명한 세이코 시계의 본거지이다. 스와 시는 현재 약 인구 5만 명의 소도시인데, 이 작품 발표 직후의 인구도 약 4만 명 정도였던 곳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주로 빵 등의 분식을 좋아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을 보면, 데즈카는 급속한 고도성장으로 도시화/산업화/탈 농촌화가 진행되던 당시의 일본 사회를 이 도시를 통해 그려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산악 도시라는 설정은 외부로부터 차단되어 있는 일본의 '폐쇄적 분위기'를, 그리고 월급쟁이 중산층은 당시 일본의 고도성장 사회 속의 일본 사회의 개인주의를, 그리고 분식은 당시 중산층의 새로운 식생활을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분식은 외부세계와 소통 가능한 모티브(당시 일본 사회도 혼분식 장려 사회였다)로, 쌀은 전통주의, 폐쇄주의 일본 사회를 상징한다. 그리고 양어장의 물고기는 아마 첨단 통신 수단의 무력함을 상징하는 소통수단으로 간주되는 듯하다. 데즈카는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상문제나 욕망 때문에 일으키는 테러라면 혹시 몰라도,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인간의 광기다". 아마 이런 마지막 대사를 통해 작품 때문에 생길 수도 있는 사상문제를 피해가려 했을 것이다.
자위대와 쿠데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만들어진 1968년이라는 시기이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1968년은 일본 학생운동의 절정기이다. 도쿄(東京)대학의 야스다(安田)공방사태가 있었고, 이 사태의 여파로 도쿄대학은 신입생을 선발하지 못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도쿄대학에 68학번은 없는 셈이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자위대의 쿠데타 가능성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시기였다.
실제로 이 작품이 발표되기 7년 전인 1961년 12월 12일, 도쿄 경시청은 쿠데타 미수 혐의로 전 육군 장교를 포함해 약 13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개회 중인 국회를 점거하고 각료를 사살하고 보도를 통제한 다음, 계엄령 하에서 임시정부를 세우려 한다. 이들은 1952년에 제정된 파괴활동방지법에 의해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는다. 이 사건은 세금 없고, 실업자 없고,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고 해서 소위 '삼무(三無) 사건'이라 불린다. 이 사건에 당시 자위대 간부들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치적 파급력을 고려한 정부 당국자에 의해 법적인 처분을 받지는 않고 좌천 등의 형태로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한다. 자위대 관여 의혹에 대해 일본정부는 현재까지도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 사건에서 인상적인 것은 사건 관계자로 등장한 인물 중에 두 명의 한국인이 있다는 사실이다. 실업가로 알려진 강경길(康烱吉)과 당시 육군 소장이었던 박림원(朴林垣)이다. 1962년 3월 9일 일본 중의원 법무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강경길은 1915년 생으로 국적은 한국이다. 중국의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에 일본군에 입대, 이후 당시 정보학교로 유명했던 나카노 정보학교를 나온 후, 주로 헌병대에 근무하다가, 해방 후에는 주로 무역회사 등을 경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정희에 의한 5.16 쿠데타로부터 약 반 년, 두 명의 한국인 관여, 자위대와의 관련설 등, 이 사건은 여전히 의혹투성이이다. 이 사건의 정치적 파급력을 고려해서인지, 당시 일본수상이었던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는 1961년 12월 14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일본의 혁명 시도자들이 한국의 군사혁명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 또 서로 관련성이 있었는지"여부를 묻는 사회당 의원의 질문에 "전 일본군 장교들에 의한 '쿠데타' 기도가 한국의 혁명과는 조금도 관련성이 없다"고 단언하였다.
또 1970년에는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는 자위대 본부 옥상에서 자위대원들에게 쿠데타를 선동하다가 자위대원들의 호응이 없자, 그 자리에서 할복자살을 한다. 1992년에는 육상자위대 소속 야나우치 신사쿠(柳內伸作) 3등육좌(소령급)는 "쿠데타를 통한 정치개혁을 단행하자" 취지의 글을 주간문춘(週刊文春)에 기고했다가 파면처분을 당했다.
그리고 2007년 1월 9일, 1954년 7월 1일 총리부의 외청으로 설립된 방위청이 '드디어' 방위성으로 승격되었다. 이로써 문민통제의 원칙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자위대를 포함한 방위성의 정치적 발언권이 커졌다. 물론 그렇다고 일본에서 자위대의 군사 쿠데타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헌법 개정 문제와 맞물려서 '군대 아닌 군대'였던 자위대가 '군대 이상의 군대'로 탈바꿈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을 보면, 데즈카가 1968년에 그렸던 '사과시계'를 그저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렌지 시계'나 '사과 시계'는 겉으로는 사과나 오렌지지만 속에는 시계가 숨겨져 있다. 겉으로 보기에 달콤하고 산뜻한 빛깔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는 고도로 정교하게 장치된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뜻일 것이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안정, 풍요, 평화가 오렌지이고 사과라면,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변화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안정, 풍요, 평화라는 프로마이신에 중독되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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