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특수상대성이론을 다루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에 매우 중요한 논문 세 편을 발표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특수상대성이론에 관한 논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빛전자 효과라는 빛알의 알갱이 성질에 대한 논문, 마지막으로 브라운 운동이라고 열과 원자의 세계에 관련된 현상에 대한 논문을 모두 1905년에 발표했습니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100주년을 맞은 2005년이 세계 물리의 해로 정해졌습니다.
그동안 공부했던 특수상대성이론에 대해서 더 질문 있나요?
학생: 지난 강의에서 빛보다 빠른 입자에 대해 잠깐 말씀해 주셨는데요, 실제로 있나요?
지난 시간에 타키온에 대해 얘기했지요. 타키온은 느리게 하는 데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에너지를 공급해도 빛보다 느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쪽 세계에서 우리 세계로 넘어오지는 못합니다. 빛이 경계가 되어서 우리 쪽에서 넘어가거나 그쪽에서 넘어올 수 없고, 우리 세계와 직접 상호작용하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검출할 방법은 있습니다. 타키온이 생성되면 빛보다 빨리 움직이면서 빛을 방출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체렌코프 내비침(Cherenkov radiation)이라고 부르지요. 이 때 나오는 빛을 측정하면 타키온의 존재를 간접적이지만 알 수 있으리라 추측합니다. 그런데 아직 검출된 적은 없습니다. 대체로 타키온은 불안정해서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체렌코프 내비침이란 빛보다 빨리 달리는 알갱이가 충격파에 해당하는 빛을 내는 현상을 말합니다. 어떤 물체가 빛의 빠르기만큼 달릴 수는 없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진공에서의 이야기지요. 진공에서 빛 빠르기인 , 곧 30만 km/s 보다 빠를 수 없다는 것인데, 물질 내에서는 빛의 빠르기가 현저히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알갱이가 빛보다 오히려 빠를 수 있는데, 그러한 경우에는 특별한 현상이 생깁니다. 초음속 비행기가 소리보다 빠르게 날게 되면 어떻게 되죠? 강력한 충격파(shock wave)가 생깁니다. 전투기 같은 것이 낮게 지나가면 유리창이 깨지고 난리가 나는데 강력한 충격파가 생겨서 그렇습니다. 공군기지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피해가 심할 수 있고 매우 괴롭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알갱이가 빛보다 빨라지게 되면 충격파에 해당하는 빛을 낼 수 있고 이러한 현상이 체렌코프 내비침입니다.
또한 물질 중에서 빛의 위상속도(phase velocity)나 무리속도(group velocity)는 c보다도 빠를 수도 있습니다. 위상속도란 파동에서 일정한 위상(phase)이 진행하는 속도이고 무리속도는 파동의 너비(amplitude)의 변화, 곧 변조(modulation)가 진행하는 속도를 말합니다. 최근에는 이른바 빛알을 흡수하는 껴울림(resonance)을 강하게 지닌 물질에서 빛의 무리속도가 c보다 클 수 있음이 확인되었는데 중요한 점은 이러한 것들도 역시 정보의 전파 속도는 아닙니다. 정보의 전파 속도는 물질 알갱이가 움직이는 속도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c보다 작으며, 한편 빛알의 속도는 언제나 c이지요.
그 동안 특수상대성이론을 공부했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특수한 경우에만 성립하는 이론입니다. 두 기준틀 혹은 두 관측자가 서로 등속운동을 하는 경우를 다루는 이론이지요. 그러나 일반적인 여러 관측자나 기준틀을 생각해보면 그들이 서로 등속도로 운동할 이유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가속도 운동을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차가 정지했다가 출발할 때나 기차가 굽은 철로를 달릴 때는 가속운동을 합니다. 그럴 때 기차라는 기준틀과 지면이라는 기준틀은 서로 가속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를 다루는 것이 일반상대성이론입니다.
일반상대성원리
일반상대성이론, 줄여서 일반상대론(general relativity)은 일반상대성원리(general principal of relativity)에서 출발합니다. 가속운동을 하건 등속운동을 하건 모든 관측자는 동등하다는 것이 바로 일반상대성 원리입니다. 임의의 운동 상태에 있는 모든 관측자에게 모든 물리법칙이 똑같은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특수상대성원리는 등속도로 운동하는 관측자들은 동등하다는 것인데 일반상대성원리는 그걸 더 확장해서 모든 관측자가 동등하다고 과감하게 주장합니다.
현실세계에서도 이런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정지해 있는 사람과 회전목마를 탄 사람에게 모든 물리법칙이나 자연현상이 동등하게 기술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상경험에서는 얼른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이것은 흥미로운 문제인데 대표적인 가속운동 중 하나가 원운동 또는 회전운동입니다. 우리가 회전목마에 타고 빙빙 돌면 바깥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하늘도 돌고 눈도 돌고 어지럽죠. 뭔가 다른 느낌이 드는데 왜 그럴까요? 회전운동은 등속도 운동과 다르다고 여길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런 거지요. 양동이에 물을 담아 놓으면 다음 쪽 그림의 I처럼 수면은 수평면을 이룰 겁니다. 그런데 양동이를 그림 II처럼 가운데 대칭축을 중심으로 해서 돌리면 수면이 어떻게 될까요? 그림 III에 보였듯이 가운데가 푹 들어갈 텐데, 옆에서 보면 포물선이 되고 그 면은 수학적으로 포물선을 한 바퀴 돌린 모양인 포물면이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동차 머리등(headlight)의 반사경 모양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양동이를 돌리면 수면 가운데가 내려가고 안 돌리면 안 내려가니까 두 경우는 동등하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수면이 왜 내려가는 걸까요? 돌리면 무엇이 달라져서 돌리지 않는 것과 구분이 되는 걸까요?
뉴턴의 운동 법칙 a = F/m는 등속도로 움직이는 관성기준틀에서 성립하고 가속운동을 하는 가속기준틀(accelerating frame of reference)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속기준틀에서는 기준틀 자체의 가속도만큼 관측 대상의 가속도 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식을 억지로 성립하게 하려면 왼쪽에서 달라진 가속도a만큼 오른쪽의 F힘 를 바꾸면 됩니다. 이렇게 실제로는 없지만 운동 법칙을 성립하게 하기 위해서 억지로 더해주는 겉보기 힘(fictitious force)을 관성력이라고 부릅니다.
고등학교 때 관성력이라는 것을 배운 학생들 있죠? 버스를 탔을 때 갑자기 출발하면 누군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힘을 받는 느낌이 듭니다. 손잡이를 잡고 있지 않으면 뒤로 넘어질 수도 있지요. 물론 실제로 뒤에서 잡아당긴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관성력의 예입니다. 버스가 가속도를 가지므로 관성기준틀이 아니라서 느껴지는 거지요. 버스가 커브를 돌 때 바깥쪽으로 밀리는 느낌도 마찬가지로 바로 관성력의 예입니다. 커브를 도는 원운동의 경우에는 관성력이 원심력(centrifugal force)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가속운동을 하는 버스 안의 손잡이는 아래 그림에서 보였듯이 줄이 기울어지게 됩니다. 질량 m의 손잡이는 지구로부터 중력mg를, 매달린 줄로부터 켕길힘를 t받지요. 기울어져 있으면 중력과 켕길힘의 방향이 반대가 아니므로 이 두 가지 힘을 벡터로서 더한 알짜 힘 는 0이 아니게 됩니다.
이를 버스 밖 지면에 서서 보면 당연하다고 할 것입니다. 손잡이는 버스와 같은 가속도 를 지니고 있고, 이 가속도와 손잡이의 알짜 힘이 운동 법칙을 만족해야 하지요. 따라서 당연히 알짜 힘 는 가속도와 같은 방향으로 만큼 있어야 합니다.
바로 위에 보였듯이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이 보면 어떨까요? 손잡이는 똑같이 줄이 기울어져 있고, 중력과 켕길힘을 더한 알짜 힘은 위의 경우와 같아서 F=ma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손잡이는 이 사람과 같이 움직이므로 정지해 있는 것으로 보이지요. 따라서 가속도는 없는데 알짜 힘은 F는 0이 아니고, 그러니 뉴턴의 운동 법칙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굳이 성립하게 하려면 무언가 힘이 더 있다고 해서 모두 더한 힘을 0으로 만들어 주면 됩니다. 결국 가상적인 힘
원운동은 도는 빠르기가 일정한 경우, 곧 등속(력)원운동이라도 중심 방향으로 가속도를
그러면 물이 담긴 양동이를 돌리는 문제로 돌아가지요. 물의 각 부분이 원운동하니까 구심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서는 중력의 일부 성분이 구심력으로 쓰이고, 이를 뺀 나머지 성분에 대해 수면이 수직으로 놓이는 것입니다. 물은 왜 수평면을 이루는 걸까요? 이유는 중력의 방향에 수직면이기 때문입니다. 수면은 언제나 힘에 대해서 수직으로 있습니다. 따라서 수면이 가운데가 낮아지는 것은 중력에서 구심력으로 쓰인 성분을 뺀 나머지 알짜 힘에 수직이 되도록 수면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수면이 포물면으로 되지요.
그럼 안에서 같이 돌면서 볼 때는 어떻게 될까요? 물과 같이 도는 가속기준틀에서는 물은 가속운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은 중력뿐 아니라 원심력도 받으니까 이 두 가지를 더한 알짜 힘에 수직이 되도록 수면이 만들어집니다. 그 결과가 포물면이지요.
여러분 중에 원심력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원심력과 구심력을 혼동하거나, 서로 작용-반작용의 짝이라고 생각하든지, 또는 줄에 매어 돌리던 추가 줄이 끊어지면 원심력을 받아서 날라 간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모두 타당하지 않습니다. 다시 강조하는데 원심력은 실제로 있는 힘은 아닙니다. 원운동으로 돌고 있는 가속기준틀, 이른바 회전기준틀(rotating frame of reference)에서 운동 법칙을 성립하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관성력, 곧 겉보기 힘이지요.
그러면 겉보기 힘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관성기준틀의 기준은 무엇이지요? 그동안 대체로 지면을 관성기준틀로 여겨 왔지만 사실 앞에서 논의했듯이 지면도 자격이 없습니다. 지면에 있다는 것은 지구에 대해서 정지해 있는 건데, 지구는 자전도 하고 공전도 하기 때문에 지구 자신이 회전목마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면에 가만히 서 있어도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면도 엄밀하게는 돌고 있는 가속기준틀이고, 지면에서 운동을 기술할 때에도 운동 법칙을 맞추려면 사실은 관성력이 필요합니다. 해나 별, 은하도 마찬가지고, 이렇게 생각해 보면 우주 전체에서 회전목마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특별한 관성기준틀이 없는 듯합니다.
본론에서 벗어난 얘기지만 특히 움직이는 물체를 지면과 같이 도는 기준틀에서 보면 원심력과 함께 코리올리힘(Coriolis force)이라는 관성력이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북반구에서 움직이는 물체는 일반적으로 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휘게 되고, 남반구에서는 왼쪽으로 휘게 되지요. 이는 고기압이나 저기압 주위의 대기가 똑바로 흐르지 않고 회오리 모양으로 돌게 합니다. 태풍의 중심에서 특징적인 시계바늘 반대방향의 회오리 흐름이 잘 나타나지요.
아무튼 지면에 있는 사람과 양동이와 같이 돌고 있는 사람이 서로 본질적으로 다를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양동이를 돌리면 돌리지 않을 때와 비교해서 수면이 달라지고, 이는 두 경우의 명백한 차이를 주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양동이를 돌리는 대신에 관측자가 돌면 어떻게 될까요? 정지해 있는 양동이의 수면이 돌고 있는 관측자에게는 포물면으로 나타날까요? 관심 있으면 실제로 실험을 해봐요. 너무 어지럽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요. 뭔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뉴턴은 자신의 운동 법칙이 엄밀하게 성립하는 관성기준틀이 절대공간으로서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우주에 대해 잘 모를 때였으므로 절대공간은 태양계의 중심으로서 해 근처에 있다고 생각했지요. 뉴턴의 대작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에는 이러한 공간 및 시간의 절대성에 대한 뉴턴의 신념이 신학적 관점과 섞여서 사실상 신앙의 형태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절대공간에 대해 어떻게 움직이는가가 운동의 절대적 기준이 됩니다. 결국 양동이를 돌리면 절대공간에 대해 도는 것이므로 돌지 않을 때와 근본적으로 다르고, 그 차이가 수면이 포물면을 이루는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절대공간이 태양계에 있다는 생각은 물론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으나 대신에 19세기 말까지 절대공간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던 것이 지난 시간에 이야기한 에테르였습니다. 그러니까 양동이가 에테르에 대해서 돌면 수면이 달라진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마이컬슨-몰리 실험 등에 의해 에테르의 존재를 인정하기 어렵게 되었고, 더불어 절대공간의 개념도 무너졌습니다.
그러면 양동이를 돌리면 왜 수면이 달라질까요? 새로운 해석은 우주에 존재하는 은하 등의 물질 분포에 대해서 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양동이를 가만히 놔두고 나머지 우주를 돌려 보면 양동이의 수면이 어떻게 될까요? 물론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머릿속은 자유롭잖아요. 그래서 이론물리학이란 분야가 예술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상상력을 추구할 수 있지요.
뉴턴의 생각대로라면 양동이가 절대공간에 대해 도는 것이 아니므로 수면은 그대로 있어야 합니다. 반면에 새로운 생각은 양동이를 놔두고 나머지 우주의 물질을 돌리면 양동이의 물이 포물면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는 멀리 있는 우주의 물질이 여기 양동이의 물의 관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이러한 생각을 마하(Ernst Mach)의 이름을 따서 마하의 원리(Mach's principle)라 부릅니다. 이에 따르면 우주에 어떤 물체 하나만 있고 다른 물질이 없다면 그 물체의 질량은 없는 거지요.
마하는 유체에서 움직이는 물체의 빠르기를 나타내는 마하수(Mach number)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컨대 비행기가 소리보다 두 배 빠르면 그 빠르기를 마하 2라고 나타내지요. 그는 과학철학의 시초 및 인식론에 중요한 공헌을 했는데 매우 특이한 관점을 가졌습니다. 극도의 실증주의(positivism)의 입장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18세기에 주교였던 버클리(George Berkeley)가 물질 같은 추상적 개념을 배격하고 오직 감각에 의한 인식을 중시해서 극단적인 경험론(empiricism)의 입장을 견지했고 관념론(idealism)의 원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하도 이러한 경향을 가져서, 물질의 실재성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물리법칙도 물질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관계를 기술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뒤에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 특히 비엔나학파(Vienna Circle)로 일컬어지는 과학철학의 조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하는 실제로 관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절대공간을 완전히 부정하였습니다. 절대성은 없고 운동은 상대적이니 모든 관측자는 동등해서 양동이가 도는 거나 우주가 도는 거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하의 생각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학생: 양동이가 돌면 수면이 내려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건가요? 아니면 실제로 내려가는 건가요?
글쎄요, 실제는 내려가지 않는데 내려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요? 양동이를 돌리면 수면이 분명히 내려가지요. 혹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지난 시간에 시간이 천천히 가고 길이가 짧아진다고 했는데 천천히 가거나 짧아진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우리의 감각경험도 물리법칙에 의해 지배받는 것이고, 서로 위배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시간이 천천히 가지는 않고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라는 말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관측하면 실제로 그렇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쌍둥이 역설에서 동생이 우주여행 갔다가 돌아와서 언니와 비교해 보면 실제로 누구는 젊고 누구는 늙은 것입니다. 보이기만 그렇고 실제로는 아니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지 명확하지 않네요.
아인슈타인은 마하의 절대성 부정은 받아들였지만 극도의 실증주의적 사고는 공감하지 않았습니다. 마하는 한 마디로 말해서 보지 않은 것은 믿을 수 없다는 관점을 가졌고, 이에 따라 직접 관측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자의 개념도 강하게 부정해서 볼츠만과 대립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오늘날에는 원자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은 없지요. 실제로 원자힘현미경(atomic force microscope)을 통해서 원자의 상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인슈타인은 논리보다 상상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마하의 관점으로는 잘못된 논리를 찾아낼 수는 있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마하의 원리의 영향으로 가속기준틀을 포함해서 "모든 기준틀은 동등하다"라는 일반상대성원리가 얻어졌고, 이는 일반상대성이론의 기본원리로 전제됩니다.
(매주 화,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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