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지난 강의에서 전자기이론은 맥스웰의 방정식으로 요약할 수 있고, 이는 전자기파, 곧 빛의 존재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전자기 법칙의 집대성은 빛이라 할 수 있겠네요.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빛은 에돌이나 간섭 등을 보이는 파동입니다. 그런데 파동이란 어떤 물질의 진동이 퍼져나가는 현상을 뜻합니다. 예컨대 물결파는 물이 진동해서 퍼져나가는 것이고 소리는 공기의 진동이 퍼져나가는 것이지요. 줄을 흔들면 줄의 진동이 퍼져 나갑니다. 현악기는 줄의 진동에 의해 소리를 만들어 내고, 관악기는 직접 공기를 진동시키지요. 각 부분이 적절하게 진동해서 파동을 전달해주는 물질을 매질(medium)이라고 부릅니다. 소리의 매질은 공기고 물결파의 매질은 물, 지진파의 매질은 땅이지요. 그러니까 파동은 매질의 진동이 퍼져나가는 현상입니다.
그러면 빛도 파동이니 어떤 매질이 있어야 진동이 퍼져나갈 거 아니겠어요? 빛의 매질이 뭔지는 모르지만 '에테르(ether)'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를 찾아낼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일 것입니다. 고전물리학에서 역학과 전자기학은 서로 따로 놀았지만 에테르를 발견해 내면 전자기현상을 역학현상으로 환원시켜서 두 가지를 하나로 통일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에테르가 우주 전체 공간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면 바로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고전역학이 엄밀하게 성립하는, 바로 절대공간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지요. 따라서 전자기, 빛의 문제뿐 아니라 고전역학에서 봐도 에테르는 반드시 필요하며, 물리학자들은 에테르를 찾으려고 상당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면 에테르라는 것이 어디 있을까 생각해 봅시다. 햇빛이 지구까지 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별빛도 지구까지 옵니다. 그렇다면 우주공간은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빛이 지나가는 것을 미루어봐서 빛을 전달하는 매질이 우주공간에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에테르는 우주 전체 공간에 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우리 주위에도 에테르가 있겠지요. 그렇다면 에테르를 이렇게 찾자는 겁니다. 지구는 움직입니다. 자전도 하고 공전도 하지요. 지구는 결국 에테르 속에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물 속에서 움직이고 공기 속에서 움직이듯이 지구는 에테르 안에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공기 속에 있는 우리가 빨리 뛰면 바람이 느껴지지요. 우리에 대해 공기가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에테르 안에서 지구가 움직이니까 에테르의 바람이 불 것이라고 예상하고 이 바람을 찾는 실험을 했습니다.
다음 쪽의 그림 1에 보인 너비가 L인 강에서 갑돌이와 갑순이가 헤엄치기 내기를 한다고 하지요. 강물은 속도 v로 흘러가는데 지점 O에서 갑돌이는 강을 따라 헤엄쳐 내려가서 거리 L만큼 떨어진 지점 A까지 갔다가 거슬러 돌아 왔고, 갑순이는 헤엄쳐서 강을 건너 지점 B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겁니다. 똑같은 거리를 헤엄쳤는데 헤엄치는 빠르기도 c로 똑같다면 둘 중 누가 이기겠습니까? 갔다 왔을 때 걸린 시간을 살펴보지요. 갑돌이가 강물 따라 내려갈 때는 빨라져서 빠르기가 c + v가 되므로 거리 L가는 동안 걸린 시간은
한편 갑순이는 어떨까요? 바로 B를 향해서 헤엄치면 강물의 흐름 때문에 실제로는 하류 쪽으로 내려가 닿게 됩니다. 따라서 B에 닿으려면 비스듬히 상류 쪽을 바라보고 헤엄쳐야 하고, 이속도 가 강물의 속도 와 (벡터로서) 더해지면 강의 방향에 수직으로 B를 똑바로 향하게 되지요. 이렇게 헤엄치는 갑순이를 강둑 지면에서 보면 빠르기는
이 됩니다. 비교를 위해서 둘의 비를 구해보지요.
이는 1보다 작습니다. 따라서 갑순이가 빨리 돌아오고 내기에서 이깁니다.
여기서 헤엄치는 사람을 빛으로, 강물을 에테르라고 생각해 봅시다. 곧 c는 빛의 빠르기v이고 는 에테르 흐름의 빠르기지요. 공기 중에서 소리의 빠르기가 340 m/s 라고 하지요. 이것은 공기가 움직이지 않을 때고 바람이 불게 되면 불어가는 방향으로 소리가 빨라지게 됩니다. 빛이 나아갈 때 에테르가 흘러간다면 흘러가는 쪽으로는 빨라지고 반대 방향으로는 느려질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추론에 따라 에테르의 흐르는 방향으로 한 줄기 빛을 보냈다가 돌아오게 하고, 또 한줄기 빛은 에테르가 흐르는 방향에 수직으로 똑같은 거리를 보냈다가 돌아오게 했습니다. 헤엄 내기와 마찬가지로 돌아온 두 줄기 빛이 걸린 시간을 비교해보면 에테르의 속도를 구할 수 있습니다. 이 실험은 19세기 말에 마이컬슨(Albert A. Michelson)과 몰리(Edward W. Morley)에 의해 수행되었지요. 그러나 놀랍게도 두 시간은 같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러 가지를 바꿔가며 실험을 해봤지만 언제나 같았습니다. 도저히 에테르가 흘러가는 것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실험이었는데, 사실 마이컬슨은 그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는 못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튼 마이컬슨은 이 실험을 해서 미국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사실 그 때까지 미국은 과학에서 별 볼일 없는 뒤떨어진 나라였지요. 거의 모든 업적은 주로 프랑스, 독일, 또는 영국에서 나왔고, 미국이 과학에서 따라잡으며 결국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입니다.
아무튼 이 부정적인 실험결과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에테르의 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결과에 대해 별별 생각을 다 해봤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구에 대해서 에테르가 딱 정지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에테르가 지구와 같이 움직인다는 거지요. 그러면 지구가 해 주위를 도니까 해에서 보면 에테르가 움직이겠지요. 별에서 봐도 에테르가 움직이는데 단지 지구에서 보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므로 지구가 정말로 우주의 중심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믿거나 말거나인데 정상적으로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생각은 에테르는 정지해 있고 지구가 움직이는데 점성이 있어서 지구가 에테르를 끌고 다닌다는 가정입니다. 우리도 물속에서 움직일 때 실제로 어느 정도 물을 끌고 다니지요. 공기도 점성이 낮아서 잘 안 느껴지지만 마찬가지입니다. 이 생각이 옳다면 지구 표면에 에테르가 붙어서 지구와 함께 움직이므로 지표면에서는 에테르가 정지해 있는 것으로 보이겠지요. 지표면에서 멀리 나가야 에테르가 움직이는 바람을 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럴듯한 이야기이지만 광행차(aberration of light)라는 현상으로써 이 생각이 타당하지 않음을 보일 수 있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아 비가 똑바로 내리는 경우에 서 있을 때에는 우산을 똑바로 받으면 되지만 빨리 걸으면 앞으로 기울여서 받아야 합니다. 지면에 대한 비의 (연직방향의) 속도에서 걷는 사람의 속도를 빼야 걷는 사람에 대한 비의 속도가 되기 때문이지요. 비 올 때 자동차 타고 달리면 비가 똑바로 안 떨어지고 차창에 비껴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구의 공전 궤도면에 수직방향에 있는 별을 지구에서 관측하면 지구의 공전 속도 때문에 별빛의 방향이 지구가 공전해서 나가는 방향으로 기울어집니다. 이를 광행차라 하지요. 같은 별을 6개월 후에 관측하면 지구의 공전 속도 방향이 반대로 되니까 별빛의 기울어지는 방향도 반대가 됩니다. 그러면 별의 위치가 변한 것으로 보이지요. [실제로는 이것과 한참 뒤에서 논의할 연주시차(parallax)가 섞여 나타납니다.] 이것을 광행차라고 하는데, 만일에 지구가 에테르를 끌고 다닌다면 생길 수 없지요.
다음으로 머리를 짜내어서 어떤 생각을 했냐면, 지구가 움직이므로 에테르가 흐르긴 하는데 흐르는 방향하고 평행하게 있는 물체는 길이가 좀 짧아진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짧아지냐면
누구 말을 믿든 간에 결론은 모든 관측자들에게 빛의 빠르기가 언제나 같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내는 빛을 누가 재도 빛 빠르기 는 언제나 30만 km/s로 같다는 이야기지요. 이것을 빛 빠르기 불변(invariance of the speed of light)의 원리라고 말합니다. 획기적인 생각입니다.
이에 대한 실험적 근거들은 제법 있습니다. 그 중 하나로 별 중에서 이중성(binar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두 별이 가까이서 서로 상당히 빠른 속도로 돌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돌고 있지 않으면 중력 때문에 서로 부딪히겠지요. 지구에서는 보통 둘로 구분할 수 없고 하나로 보이지만 별의 밝기가 변합니다. 왜냐하면 지구에서 볼 때 두 별이 나란히 있을 때랑 하나가 가려 있을 때는 당연히 밝기가 다르죠. 일종의 변광성(variable star)이 됩니다. 변광성이라면 보통 시피이드 변광성(Cepheid variable)을 말하는데 이는 별이 불안정해서 수축과 팽창을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밝기가 변합니다.
그런데 이중성도 지구에서 볼 때는 변광성이지요. 별 밝기의 주기를 보면 별이 얼마나 빨리 운동하나 알 수가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지구에 접근할 때와 멀어질 때는 지구에서 보는 빛의 빠르기가 달라져야 하겠죠? 예를 들어 기차 소리를 들을 때 기차가 다가올 때와 멀어질 때의 소리 빠르기는 다르잖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중성의 주기를 보면 그렇지 않고 빛의 빠르기가 항상 똑같다는 결론을 얻습니다. 다시 말해서 별이 지구로 가까이 오면서 빛을 내나 멀어지면서 빛을 내나 빛의 빠르기를 재면 같습니다. 이것이 빛의 빠르기가 언제나 같다, 곧 c는 상수라는 원리입니다.
로렌츠는 당시에 뛰어난 물리학로서 에테르의 필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고, 따라서 에테르의 존재를 전제하고 이 실험 결과를 해석하려 했기 때문에 로렌츠 짧아짐이라는 특이한 가설을 세운 것입니다. (사실은 피체럴드George F. FitzGerald가 로렌츠 보다 몇 해 먼저 제안했지요.)
반면에 아인슈타인은 과감하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에테르는 쓸데없는 개념이고, 따라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서 아인슈타인의 특별함이 나오는데 에테르라는 절대성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와 더불어 고전역학에서 상정한 절대공간도 버린 셈이지요.
(매주 화,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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