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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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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원리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25> 공간과 시간 <상>

9강 공간과 시간

19세기 말에 고전물리학이 완성됐는데 크게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물질의 운동을 다루는 고전역학이고, 다른 하나는 전기, 자기, 빛을 다루는 전자기학 및 광학입니다. 고전역학은 기본적으로 뉴턴이 창안한 뒤에 라그랑주, 해밀턴 같은 사람들이 더 공헌했고, 전자기학은 쿨롱, 앙페르, 패러데이 등의 업적을 바탕으로 해서 맥스웰이 완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전물리학의 두 가지 이론체계로 모든 자연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19세기 말에는 물리학자가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비관적으로(?) 생각했지요.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그런 생각이 타당하지 않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쿤의 용어를 빌리자면 변칙 또는 비정상성이 쌓이면서 혁명이 일어나게 된 건데, 그 출발이 바로 고전역학을 통해 완전히 이해했다고 믿고 있던 운동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상대성원리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는 사물이 정지해 있는 것이 본질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은 근원을 찾아가니까, 예컨대 물건을 밀어도 움직이다가 언젠가는 정지합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다른 원인 때문에 잠깐 운동을 하다가도 결국은 정지하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스콜라철학에 영향을 주었고 중세까지 지배적인 관념체계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근세에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갈릴레이가 이에 대해 반기를 들었습니다. 갈릴레이는 본질적으로 정지상태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움직이는 기차에 탔다고 생각해 봅시다. 지면에 있는 사람이 볼 때는 기차가 움직이지만 우리가 보면 기차는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따라서 기차가 정지해 있느냐 아니냐는 누가 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기차 밖 지면에서 보면 기차가 움직이지만 타고서 보면 가만히 있는 겁니다. 실제로 기차가 미끄러지듯이 움직일 때 창밖을 보면 플랫폼에 서 있던 다른 기차가 뒤로 움직이게 되는데 우리 기차가 떠나는 건지, 아니면 우리 기차는 서 있고 저 기차가 떠나는 건지 가끔 혼동할 때가 있지요.

이에 따라 갈릴레이는 절대적으로 정지해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운동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상대적이므로 - 보는 사람에 따라 정지해 있거나 움직이는 것일 수 있으니까 - 본원적인 정지상태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이같이 운동이 상대적이라는 관념은 이른바 갈릴레이의 상대성원리(Galilean principle of relativity)라고 부르는 기본원리를 가져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서로 등속도로 운동하는 관측자에게 역학 법칙은 같은 형태를 지닌다." 라고 나타내지요.

실제로 고전역학은 갈릴레이의 상대성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간단한 예로서 날아가는 새를 갑돌이는 지면에 서서 보고, 갑순이는 기차에 타고 새가 나는 방향으로 일정하게 움직이면서, 곧 등속운동하면서 보는 경우를 생각해 보지요. 기차에 타서 움직이며 보면 지면에서 볼 때에 비해서 새가 느리게 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갑순이가 보는 새의 속도는 갑돌이가 보는 속도에 비해서 기차의 속도만큼 줄어듭니다. 그러나 가속도는 변함이 없습니다. 가속도는 속도의 변화율, 곧 속도가 시간에 대해 얼마나 빨리 변하냐는 것이죠. 기차의 속도는 변하지 않으므로 새의 속도가 기차의 속도만큼 줄었어도 속도 변화율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떤 대상의 가속도는 갑돌이가 볼 때나 갑돌이에 대해 등속도로 운동하는 갑순이가 볼 때나 같습니다. 질량이나 힘은 누가 보아도 물론 같지요. 그렇다면 운동법칙 a = F/m 갑돌이와 갑순이에게 똑같이 성립합니다. 다시 말해서 두 사람에게 같은 형태를 가지는 거지요. 이것이 갈릴레이의 상대성원리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는 기차, 정확히 말해서 등속운동 하는 기차를 타면 잘 나타납니다. 기차가 움직이고 있는지 정지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기차 안에서 당구를 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기차가 똑바로 미끄러지듯이 등속운동을 할 때의 얘기입니다. 이는 기차에서 당구공의 운동이 지면에서와 같은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지요. 당구는 고전역학에 의해 기술되므로, 이는 결국 기차에서도 고전역학이 똑같이 성립함을 보여줍니다.

이렇듯이 갈릴레이의 상대성원리를 따르는 고전역학을 보면, 운동의 기술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다 정합적이고 완결되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행복한 결말로 끝날 듯도 하네요.

그런데 고전물리학의 두 가지 요소로 운동을 다루는 고전역학과 전기 및 빛을 다루는 전자기학을 지적했습니다. 그럼 전자기 현상은 어떨까요? 전자기 현상을 기술하는 법칙도 관측자에 따라 변하지 않고 같으면 좋겠지요. 다시 말해서 갈릴레이의 상대성원리가 역학 법칙 뿐 아니라 전자기 법칙에도 적용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러면 더 보편적인 이론체계를 추구하는 물리학자는 행복해지지요.
▲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실제로 어떤지 살펴보지요. 간단한 전자기 현상을 생각해 봅시다. 정지해 있는 전하, 곧 전기를 띤 알갱이가 있으면 전기마당이 생깁니다. 여기에 다른 전하를 갖다 놓으면 전기의 부호에 따라 끌어당기거나 밀치게 되지요. 정지해 있는 전하가 자신의 주위 공간에 전기마당을 형성했고, 다른 전하가 그 전기마당에 놓이므로 전기마당에 의해 전기력을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한편 전하가 움직이는 경우, 곧 전류가 있으면 자기마당이 생깁니다. 이는 전류를 흘려서 전자석을 만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전자석이란 자기마당을 만들어내고, 자기마당은 자기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전하가 움직인다고 해서 전기마당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전기마당은 어차피 생기는데 움직이면 거기 더해져서 자기마당이 또 생기므로, 결국은 힘이 달라집니다.

이러한 추론은 매우 중요한 결론을 가져옵니다. 이 지우개가 전하라고 하면, 여러분이 볼 때는 이것이 정지해 있으니까 주위에 전기마당만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움직이면서 보면 이 지우개는 뒤로 움직이니까 전류가 흐르는 거지요. 그러면 자기마당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보면 전기마당만 있는데, 움직이면서 보는 나에게는 전기마당 뿐 아니라 자기마당도 나타납니다. 놀랍게도 전자기 현상의 기술에서는 서로 등속운동 하는 두 관측자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갈릴레이의 상대성원리가 역학 법칙에는 성립하지만 전자기 법칙에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라고 할 수도 있지만, 물리학자는 이런 상황에서 행복하지 못합니다. 보편성이 없이 이것과 저것이 다르다는 결과는 우리가 자연현상에 대한 해석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아예 시간과 공간 같은 기본적인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시작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뛰어나다고 하는 이유는 무모할 만큼 과감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고전물리학 체계를 잘 이해하고 있으면 거기에 대한 선입관념이 강할 터이고 본질적으로 출발이 잘못됐을 거라고 생각하긴 어렵습니다. 왜냐면 고전역학이 케플러 법칙처럼 일상적인 일들을 너무나 완벽하게 해석해 냈는데 그걸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어요? 이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갈릴레이가 당시 받아들여지던 낙하의 법칙―무거운 게 가벼운 것보다 먼저 떨어진다는 것―을 의심한 것만큼이나 생각하기 힘든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기존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에는 근본적인 오류가 있고,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역학 법칙만이 아니라 전자기 법칙도 관측자에 관계없이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등속운동 하는 관측자에게는 역학 법칙만이 아니라 전자기 법칙도 똑같다"고 전제했는데, 이는 결국 고전물리학의 모든 것이 같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요약하면 "서로 등속운동 하는 관측자는 동등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갈릴레이의 상대성원리를 확장한 것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Einstein's principle of relativity), 보다 정확하게는 특수상대성원리(special principle of relativity)라고 부릅니다. 동등하다는 말은 모든 자연현상의 해석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며, 모든 물리법칙이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요새 상대성원리라면 보통 이것을 가리키지요.

그런데 고전역학에서도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습니다. 갈릴레이의 상대성원리에 의하면 서로 등속운동을 하는 관측자에게는 역학 법칙, 운동의 법칙이 똑같이 성립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가속운동을 하는 관측자에게는 어떻게 될까요?

똑바로 일정한 빠르기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생각해 봅시다. 이 비행기는 등속도로 운동하니까 가속도는 0이고, 운동의 법칙에 의해 힘을 받고 있지 않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비행기가 중력을 받지만 날개에서 받는 양력과 크기가 똑같고, 공기 저항력은 비행기의 추진력과 크기가 똑같기 때문에 모든 힘을 더하면 알짜 힘은 0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알짜 힘이 0이기 때문에 가속도가 없고 등속도 운동을 한다고 해석합니다. 지면에 대해 등속도로 움직이면서 보아도 상대성원리에 의해 결론은 같지요. 그러나 가속운동을 하면서 비행기를 보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놀이공원에 가서 회전목마를 타고서 보면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양이 이상하게 보일 것입니다. 비행기가 똑바로 날아가지 않고 빠르기도 변화할 것입니다. 곧, 가속운동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요. 비행기가 받는 알짜 힘은 0인데 가속도가 있으니 운동 법칙 a = F/m 성립하지 않습니다.

운동을 기술하는 관측자의 전망, 구체적으로 좌표계(coordinate system)를 기준틀(reference frame)이라 합니다. 결론적으로 고전역학은 아무런 기준틀에서 성립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회전목마라는 기준틀에서는 성립하지 않지요. 그러면 어느 경우에 성립할까요? 고전역학이 성립하는 기준틀을 관성기준틀(inertial frame of reference)이라 부릅니다. 따라서 갈릴레이의 상대성원리는 "한 관성기준틀에 대해 등속도로 움직이는 기준틀은 모두 관성기준틀이다"라고도 표현할 수 있지요. 관성기준틀이 아닌 경우에는 운동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데, 이를 굳이 성립하도록 하려면 이른바 관성력(inertial force)이라는 가상적인 겉보기 힘이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지면에 정지해 있으면 관성기준틀이 될까요? 지구는 자전과 공전 등 원운동을 포함해서 매우 복잡하게 가속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구 자체가 회전목마인 셈이지요. 그러면 해는 어때요? 해도 자전을 합니다. 자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계 전체가 움직입니다. 무려 250 km/s 라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지요. 나중에 우주를 배울 때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우리가 속해 있는 미리내 은하의 변두리에 태양계가 있습니다. 우리 은하는 자전을 하기 때문에 변두리의 태양계는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별들도 모두 움직이지요. 그럼 우주에 도대체 정지해 있는 것이 있을까요? 궁극적으로 뉴턴의 고전역학이 성립하는 관성기준틀을 절대공간(absolute space)이라 부르는데, 과연 존재하는지 의심이 갑니다. 만일 절대공간이 없다면 고전역학은 아무에게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결국 다 쓸데없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매주 화,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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