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자연현상은 그 현상의 실체인 물질의 구성원 사이의 상호작용 때문에 생긴다고 했습니다. 간단한 예로 공을 던졌을 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것도 자연현상입니다. 공이라는 구성원과 지구라는 구성원 사이의 상호작용, 곧 중력에 의해 어떻게 날아갈지 운동이 정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것은 딱딱하고 어떤 것은 물렁물렁하고 어떤 것은 빨갛고 혹은 파랗고 어떤 것은 반짝이고 등 물건의 성질도 모두 자연현상입니다.
그런 것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그 물건의 구성원, 즉 분자를 생각해야 합니다. 분자들 사이에 어떤 상호작용이 있는지, 빛을 쬐었을 때 빛알과 분자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알면 왜 어떤 것은 딱딱하고 어떤 것은 빨간지 등의 성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공을 던졌을 때 어떻게 운동하는지와 왜 파란색을 띠는지는 기본적으로 같은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역학
일반적으로 주어진 대상―계(system)라고 부르는 ―의 구성원들이 상호작용 할 때 어떤 결과가 생길지가 자연현상의 이해에 관련해서 일반적으로 품게 되는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물리학의 방법을 역학(mechanics), 또는 강조해서 동역학(dynamics)이라고 부릅니다. 보통 운동(motion)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는데, 어떤 주어진 대상에서 구성원 사이에 상호작용에 의해 구성원의 상태가 결정되는 것을 흔히 어떤 운동을 하느냐 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운동을 보편이론 체계에서 기술하는 방법이 (동)역학이지요.
동역학은 물론 고전역학에서 출발했는데, 고전역학 체계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갈릴레이지만, 결국 17세기에 뉴턴이 고전역학을 창안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상적인 대상의 운동을 기술하는 데 놀랄 만큼 성공적이었습니다. 공을 던졌을 때 어떻게 날아가는지, 누가 맞는지를 정확하게 기술했고, 지구나 행성, 천체들의 운동도 놀랄 만큼 정확하게 기술합니다. 그래서 혜성이 몇 년 후, 몇 월, 몇 일, 몇 시, 몇 분, 몇 초에 어느 하늘에 나타나는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대단히 놀랍고 성공적인 이론 체계입니다.
그런데 이른바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들어오면 고전역학 체계로 해석할 수 없는 현상들이 생기게 됐습니다. 쿤의 용어로 말하자면 변칙 또는 비정상성이 쌓이면서 20세기 초에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학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상대성이론과 더불어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이론 체계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상대성이론의 선구적 역할을 한 사람은 푸앵카레(J. Henri Poincaré)와 로렌츠(Hendrik A. Lorentz)이고 잘 알다시피 아인슈타인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민코프스키(Hermann Minkowski)도 수학적으로 중요하게 공헌했지요.
양자역학이라는 이론 체계의 효시는 플랑크(Max K. Planck)와 드 브로이(Louis de Broglie)였고 보어(Niels Bohr)를 거쳐서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 두 사람이 이론의 완성에 핵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보른(Max Born)과 파울리(Wolfgang E. Pauli), 디랙 같은 사람이 완성에 공헌했지요.
고전역학은 일상세계에서 대단히 성공적인 이론이었는데 반면에 양자역학은 작은 미시(microscopic)세계의 기술에 성공적이었습니다. 미시세계란 한 마디로 원자나 기본입자들의 세계를 말합니다. 이런 작은 세계에서는 뉴턴의 고전역학이 타당하지 않으므로 새로운 체계로 대체돼야 하는데 그것이 양자역학입니다.
양자역학은 미시세계에만 적용되고 일상세계에서 적용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양자역학이 고전역학보다 더 좋은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는 더 보편적인 이론 체계라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더 일반적이고 적용범위가 더 넓다는 것입니다. 미시세계뿐만 아니라 일상세계에서도 성립하고 적용할 수 있지만, 일상세계에 양자역학을 적용하면 고전역학과 똑같은 결과가 됩니다. 그러니까 고전역학에 비해서 양자역학이 적용범위가 더 넓습니다. 보편성의 관점에서 볼 때 더 좋은 이론인 것입니다.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본 개념을 바꾸었으며 양자역학과 함께 현대물리학의 두 기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상대론이라 줄여서 말하며, 이에 따른 동역학 체계를 상대론적 역학(relativistic mechanics)이라고 부릅니다. 양자역학은 미시세계의 기술에 적절한 데 비해서 상대론적 역학의 적용범위는 빠른 세계입니다. 대상이 아주 빠르게 움직일 때는 뉴턴의 고전역학이 역시 타당성을 잃고 상대론적으로 수정되어야 합니다. 얼마나 빠른가의 기준은 빛의 빠르기, 대략 3×108 m/s, 그러니까 1초에 30만 km이지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속력은 이보다 훨씬 작습니다. 예컨대 빠른 전투기도 3000 km/h를 넘지 않으니 빛 빠르기의 30만분의1 수준이지요. 이러한 경우에는 상대론적 수정이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습니다. 그리고 빠른 세계뿐 아니라 아주 거대한 세계에서도 상대론적 고찰이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거대하다는 것은 우주에서 다루는 크기로서 중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빠른 세계의 기술에는 특수상대성이론이 적용되는 데 비해서 거대한 세계의 경우에는 중력이론이라 할 일반상대성이론이 필요하지요.
상대론도 빠른 세계나 거대 세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세계에서 적용이 됩니다. 그러나 일상세계에 적용하면 뉴턴의 고전역학과 똑같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일상세계에서는 상대론적 수정이 무시할 만큼 작기 때문이지요.
결론적으로 일상세계를 기술하려면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충분하지만, 원자나 분자 등 작은 세계의 기술에는 양자역학, 빛의 빠르기에 비해 너무 늦지 않은 빠른 세계나 우주 등 거대한 세계를 기술하는 경우에는 상대성이론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작고 빠른 세계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예를 들어 양성자가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경우이지요. 작은 것을 기술하는 양자역학과 빠른 것을 기술하는 특수상대성이론, 두 가지를 합쳐야 하겠네요. 이에 따라 이른바 상대론적 양자역학(relativistic quantum mechanics)이라는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면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을 합쳐야 할 경우가 있을까요?
학생: 양자역학과 일반상대론은 정반대 경우 아닌가요?
좋아요. 양자역학은 작은 세계, 일반상대론은 거대한 세계에 적용되니까 서로 배치되고 따라서 합쳐야 하는 경우가 없을 것 같네요. 그러나 일반상대론은 중력을 기술하는 이론이므로 작지만 중력이 중요한 세계를 기술하려면 양자역학과 일반상대론을 합쳐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게이지입자로서 중력알이나 검은구멍이 대표적 경우인데 양자중력이라 부르는 이러한 이론 체계는 앞 강의에서 지적했듯이 아직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관련된 문제는 더 이상 논의하지 않기로 하고, 이제 일상을 원자, 분자 세계와 대비하여 큰 세계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러면 일상세계는 느리고 큰 세계입니다. 반면에 작고 느린 세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크고 빠른 세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드물지만 어떤 일상적 물체가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이는 경우지요. 마지막으로 작고 빠른 세계가 있습니다. 전체를 이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이 중에서 일상세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바로 뉴턴의 고전역학입니다. 느리거나 빠르거나에 상관없이 큰 세계에 적용되는 것이 상대론적 고전역학이고, 반면에 크거나 작거나 상관없이 느린 세계를 다루는 것이 양자역학입니다. 작고 느린 세계와 크고 느린 일상세계를 포함하지요. 마지막으로 모든 세계를 다룰 수 있는 것이 상대론적 양자역학입니다. 이는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가장 보편적인 이론이고, 보편성 관점에서 가장 좋은 이론입니다. 상대론적 양자역학을 작고 느린 세계에 적용하면 보통 양자역학이 되고, 크고 빠른 세계에 적용하면 상대론적 고전역학이 되며, 일상세계에 적용하면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환원되는 거지요.
가끔 양자역학이 나오게 되면서 고전역학은 틀렸고 잘못됐으니 버려야 한다고 이해하는 경우를 보는데 이는 옳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상대론적 양자역학만 남기고 양자역학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사실 고전역학은 지금도 대단히 훌륭한 이론입니다. 다만 적용범위가 양자역학만큼 넓지 않은 것뿐입니다. 보편성 면에서는 양자역학이 더 좋은 이론이지만 좋은 이론의 관점이라는 것이 보편성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다른 요소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고전역학이 양자역학보다 오히려 더 좋은 이론입니다.
공을 던졌을 때 어디로 떨어질지를 계산하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계산하겠습니까? 물리를 조금 배운 학생들은 포물선을 생각하겠지요. 이는 뉴턴의 운동 법칙
분필을 던지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고전역학에서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분필을 던지면 어디로 날아가는지는 분필과 지구를 각각 하나의 구성요소라고 생각하고 둘 사이의 상호작용을 고려해서 알아낼 수 있습니다. 분필과 지구는 충분히 큰 세계이기 때문에 고전역학으로 잘 해석할 수 있지요.
그런데 분필이 왜 하얀지를 설명하려면 분필의 분자 하나하나를 생각해야 하고, 분자와 빛알과의 상호작용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분자 수준의 작은 세계를 다루어야 하고 따라서 고전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는 양자역학을 적용해야 합니다. 양자역학이 작은 세계를 설명하니까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분필이 하얀 것은 작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과 관련이 있고, 따라서 이를 설명하려면 양자역학을 사용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즐겨 쓰는 휴대전화나 컴퓨터 같은 것도 다 양자역학 덕분에 가능한 것이고, 양자역학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매주 화,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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