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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의 복수, 파괴자의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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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의 복수, 파괴자의 트라우마

[권혁태의 일본 읽기] <3> 두 사람의 '인생유전'

1975년 1월 6일, 영국 교외의 노숙자 공동생활 폐가에서 50대 초반의 남성이 피투성이 사체로 발견되었다. 사체 옆에는 자신의 경동맥을 끊은 가위와 함께 짧은 유서가 발견되었다. 유서에는 인생의 목적을 더 이상 찾기 힘들어졌고, 더구나 자신이 선택한 사회봉사라는 일에도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으며, 친구들조차도 자신에게 무거운 짐이 되어버렸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추도식에는 이타적 행동의 진화를 혈연선택이론으로 설명한 윌리엄 해밀턴(W. Hamilton, 1936-2000),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volutionary Stable Strategie: ESS)으로 유명한 메이너드 스미스(John Maynard Smith) 같은 당대의 최고 진화 생물학자와 함께 기묘하게도 수 명의 노숙자가 자리를 같이 했다.

이 기묘한 추도식의 주인공은 조지 프라이스(George Price). 이 인물을 한 마디로 소개하기는 아주 어렵다. 다양한 직업과 경험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영역에서도 당대 최고의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는 플루토늄 연구자였으면서, 국제정치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진화생물학자였고, 성서연구자이기도 했으며, 사회봉사를 몸소 실천하는 참된 신앙인이기도 했다.

또 한 사람 클라우드 이덜리(Claude Eatherly).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자랑하는 전폭기 조종사였고 예비역 공군소령이었다. 그러나 그는 전후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수표를 위조하거나 강도로 돌변하기도 했으며 정신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리고 1978년 쓸쓸히 숨을 거둔다.
▲ <히로시마 나의 죄와 벌> ⓒ권혁태

이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굴곡을 가지고 있다. '인생 유전'인 셈이다. 이 간단한 약력만으로는 이 사람들의 '인생 유전'을 설명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확인하기가 힘들다. 비극적인 인생의 종말은 보일지언정, 이들의 '변신'과 '변신' 사이에 당연히 존재해야 할 그 어떤 필연적인 연결고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변신'을 '인생유전'이라고 한다면, 그 '유전'을 어떤 연결고리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클라우드 이덜리와 조지 프라이스, 이 두 사람을 한 책에서 같이 다루고 있다는 것조차 생소하게 느껴진다.

사실 이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 두 개의 책을 통해 이 두 사람의 인생 유전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재구성해보자. 하나는 고사카 요스케(小坂洋右)가 쓴 <파괴자의 트라우마-원폭 과학자와 파이로트의 기묘한 운명>(破壊者のトラウマー原爆科学者とパイロットの奇妙な運命、、未来社、2005年)이며, 다른 하나는 이덜리 자신이 다른 사람과의 교환편지를 묶어 출판한 <히로시마 나의 죄와 벌>(ヒロシマわが罪と罰, ちくま文庫, 1987年)이다.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원폭'과의 만남과 인생

먼저 조지 프라이스의 족적을 살펴보자. 1922년 미국 뉴욕 태생. 4살 때 부친 사망. 오페라 가수이면서 배우기도 했던 어머니는 남편을 잃고 조그마한 조명회사를 경영하면서 조지 프라이스와 그의 형, 그렇게 두 아들을 키운다. 형은 가난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지만 가난을 보고 자란 조지 프라이스는 공부가 그에게 새로운 명예와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은 듯, 자신에 찬 탄탄대로의 길을 걸어 시카고 대학에 진학했고 화학, 그 중에서도 플루토늄 등의 신원소 분석을 전공하게 된다.

그는 1944년부터 당시 미국의 원폭 개발 프로젝트인 소위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게 되는데, 약관 22살의 나이에 이 계획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뛰어난 연구 역량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가 당시 미국에서도 찾기 힘든 플루토늄 전공자였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의 도움으로 플루토늄 원폭은 완성되었고, 1945년 8월 10일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그리고 7만 명이 죽었다. 전쟁은 끝났고, 그는 화학박사학위를 받은 뒤 1946년 하버드대학에 강사로 취직한다. 그리고 '맨해튼 계획'에서 알게 된 여성과 결혼하게 된다. 플루토늄은 그의 출세와 행복을 돕는 '천사'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를 나중에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악마'가 될 것이라고는 당시에 그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셈이다.

첫 번째 악마는 '이혼'이라는 형태로 그를 찾아 왔다. 원폭 사용을 둘러싼 입장 차이가 부부간의 파경을 앞당기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인은 당시의 바티칸의 공식 입장에 따라 "민간인을 살육한 미국의 핵공격"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프라이스는 원폭 투하의 최고 책임자인 해리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의 설명처럼, 핵병기가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켜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준 정의의 무기"라는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후 그는 1950년대에 미소간의 평화공존을 꿈꾸는 국제정치학자이면서 저널리스트였고, 1960년대에는 IBM의 개발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그는 돌연 1967년 미국에서 영국으로 이주했고 이후 진화론과 게임이론을 접목시킨 세계적인 생물학자로 <네이처>에 논문을 실었다.

그가 진화생물학의 세계에 빠져든 이유는 아주 명확하다. 자신이 개발에 참여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의해 플루토늄 원폭이 개발되었고 그 결과 세계는 핵전쟁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인명을 구하기 위해서 핵병기를 개발했다'는 그 자신이 줄곧 주장하던 논리는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이 핵병기를 소유하게 된 1960년대에 와서 더 이상 자신을 납득시킬 수 없었다. 핵병기의 개발과 사용을 제한하려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시도도 좌절에 빠졌다. 그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길은 전쟁이나 핵병기 같은 국가, 혹은 집단 간의 대립을 보다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시점에서 서서 재해석하는 길 뿐이었다.

"인간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서 싸우지만 동물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싸우지는 않는다. 혹시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충돌을 피하는 무언가가 동물들에는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즉 동물들의 '이타(利他)행동'에 대한 관심이다. 그의 소박하면서도 근본적인 사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의 연구는 학문적으로 생물학계에 '충격'을 줄 정도로 매우 뛰어난 것이었지만, 연구가 발전되고 학계에서 인정을 받으면 받을수록 연구 결과는 그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도움으로써, 다시 말하면 서로에게 이익이 되면 될수록 발전, 유지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서로를 괴롭히고 서로를 죽이고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는 것에 의해서도 발전, 유지된다는 결론이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에 해를 끼치는 행동, 같은 종(種)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백해무익의 살상행위, 즉 '악의'(spite)의 발견이자 증명이었던 것이다. 그가 했던 것은 '악의'의 생물학이었던 셈이다. 그에게 두 번째로 찾아온 '악마'였다.

이후 게임이론과 진화의 결합을 시도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생물학의 좌절이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여행'을 떠난다. 그는 1970년에 "나는 굴복했다. 그리고 신이 존재함을 받아 들인다"고 쓰고 있다.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로의 '전향'이다.

이후 그는 성서연구에 몰두한다. 그리고 성서학에 업적을 남긴다. 그는 특히 4대 복음서를 '과학적'으로 연구, 분석해서 예수가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의 시간이 사실은 1주일(7일)이 아니라 12일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이후엔 성서에 충실한 사회봉사정신으로 장애인이나 노숙자를 지원하는 일에 종사하다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던지고 거의 영양실조 상태에서 자살을 한다.
▲ <파괴자의 트라우마-원폭 과학자와 파이로트의 기묘한 운명> ⓒ권혁태

클라우드 이덜리의 경우

클라우드 이덜리는 미 공군의 촉망받는 전폭기 조종사였고 고급 장교에 속하는 공군 소령이었다. 그는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편대기의 조종사였다. 귀환 후, 그는 미국의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는 원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이 남태평양에서 실시한 원폭 실험에 계속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그는 이 때 방사능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는 1948년 5월에 퇴역군인국을 상대로 해서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장애"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되었다. 그에게 찾아온 첫 번째 '악마'였다.

제대 후 몇 가지 안정적인 생활을 거친 것을 제외하면 파란만장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자살 미수, 수표 위조, 그리고 절도, 또 자살미수, 정신병원 수감을 반복, 전전한다. 말 그대로 '인생 유전'인 셈이다. 그는 1949년부터 돌연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나는 도시의 상공을 비행기를 조종하면서 날고 있다. 그 도시는 화염에 쌓여 있다. 아이들이 화염 속에서 비명을 질러댄다. 나는 아이들을 구하려고 불 속에 뛰어들려 한다. 그러나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히로시마의 참상을 그는 꿈속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는 실제로 히로시마를 본 적이 없다.

그는 잠을 자기 위해서 술을 마셔댔고 1950년 히로시마 시장에게 "원폭으로 희생된 아이들의 재활에 써 달라"는 간단한 메모와 함께 수백 달러의 돈을 보낸다. 그 이후 그는 거의 자기학대에 가까운 기행을 반복하면서도 히로시마와의 '인연'을 이어간다.

1960년 8월 일본의 국회의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덜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원폭 투하로부터) 15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내가 저지른 엄청난 범죄행위와 그 행위와 관련된 죄의식은 내 마음 속에 많은 혼돈 상태를 만들었습니다. 15년 동안 거의 8년을 나는 병원에서 그리고 짧은 기간이기는 했지만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감옥에서 나는 더 행복했습니다. 왜냐 하면, 벌을 받음으로써 나는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파괴자의 트라우마

이 두 사람과 인생유전, 그리고 종말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책의 제목에 드러나 있다. "파괴자의 트라우마"

"사람의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면, 마치 모든 것이 우연의 연속인 것처럼 보인다. 만일 내가 그 때 당시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식의 '후회'로 인생 궤적을 되돌아보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자신의 선택을 항상 긍정적으로 되돌아보는 경우도 있다. 그 '되돌아 봄'이 반드시 똑같은 궤적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정지된 시공간 속에서 살고 있고, 그 시공간 속에서 내려지는 삶에 대한 불가항력적인 평가가 과거의 궤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쉽게 확인해볼 수 있다.

<백 투더 퓨처>라는 영화나 복거일의 대체역사적인 소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현재를 결정짓는 것은 언뜻 과거의 선택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현재의 선택이고, 현재의 선택 여하에 따라 과거의 궤적이 재구성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 두 사람의 삶의 궤적에 대한 평가는 어쩌면 이 책의 지은이인 고사카 요스케가 살고 있는 현재, 더구나 고사카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 세계에 대한 평가와 직결되어 있는 셈이다.

여기서 말하는 '파괴자'란 다름 아니라 이 두 사람이 원자폭탄 개발과 사용에 관계되어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프라이스는 나가사키에 투하된 인류최초의 플루토늄형 원폭(히로시마는 우라늄형이다) 개발에 관계되어 있던 사람이고, 이덜리는 원폭 투하를 위한 정찰 비행에 나선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파괴자'인 것이다.

따라서 "트라우마"는 파괴에 가담한 이 두 사람의 부채의식, 혹은 죄의식의 병적인 결과인 것이다. 그렇다면 설명이 된다. 즉 이 사람들의 '인생 유전'과 그 비극적인 종말(거의 자기학대에 가까운)은 파괴자가 응당 지불해야 할 트라우마의 결과물이며,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의 에필로그의 소제목인 '원폭으로부터의 복수'인 셈이다.

'비극'으로 '희망'을 말한다. 그러나 루즈벨트와 트루먼은?

실제로 이 책을 읽는 한, 이 두 사람의 인생 유전에는 원폭 개발과 투하에 관계한 자신들의 '과거'가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이덜리가 반복해서 일본에 '사죄'의 편지를 보내거나, 혹은 반핵활동에 종사하거나 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이덜리는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해서조차 "자신의 편한 생활을 해선 안 된다. 교도소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자신의 '과거'에 대해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프라이스는 훨씬 구체적이다. 그는 핵전쟁의 위기가 높아졌던 1950년대에는 미소간의 평화공존을 위한 방책들에 대해 글을 썼고, 이후에는 인간의 폭력성을 연구하게 위해 '진화론'을 연구했고, 그 결과를 특히 동물에 내재되어 있는 악의(spite)를 통해 밝히려 했다. 물론 그 결과, 그는 오히려 절망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종교에 귀의했지만 그 속에서 조차 해답을 찾지는 못했던 것 같다.

실제로 이 사람들의 인생 유전이 원폭 개발과 투하에 관계한 '파괴자의 트라우마'의 결과인지, 이 책에서 충분히 다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그건 사실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과거의 삶은 현재의 시공간 속에서 재구성되는 것이다. 지은이는 원폭개발자와 투하자가 짊어져야 할, 응당 치루어야 할 대가를 이 두 사람의 인생 유전을 원폭과 결합시키는 현재의 행위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원폭 투하는 정당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계된 사람은 당연히 비극적이어야 하고, 당연히 부채의식에 시달려야 하며, 당연히 "종말"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그 비극적인 종말을 그려냄으로써 인간은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다소 희망적인 결론에 다다를 수 있고, 또한 역사에 대한 믿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은이는 이 두 사람의 비극적인 인생 유전을 통해, 희망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경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루스벨트는 어떨까? 트루먼은 어떨까? 그리고 현재진행형의 핵무장론자는 어떨까? 실제로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에놀라 게이라는 전폭기의 조종사였던 폴 티벳츠(Paul Warfield Tibbets, Jr, 1916-2007)는 2007년 11월 9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자신의 행위에 대해 '후회'하거나 '사죄'의 뜻을 밝힌 적은 없었다. 더구나 이덜리의 '자기학대'에 가까운 삶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1982년에 개봉된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아토믹 카페>(Atomic Cafe)에서 그의 '당당함'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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