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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비대칭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21> 물리법칙의 대칭성 <하>

시간 비대칭

그런데 일상에서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 있습니다.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물리법칙은 시간되짚기 대칭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는 명백하게도 시간되짚기 대칭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에게 과거와 미래는 명확히 다릅니다. 예컨대 우리는 늙기만 하지 다시 젊어지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다시 어려지지는 않고 자라기만 하고, 내 나이가 되면 슬프게도 늙어가기만 하지 다시 젊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신들린 사람을 빼고 보통 사람들은 과거는 기억하지만 미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다른 것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지요. 이것을 비디오카메라로 찍어서 거꾸로 돌리면 어떻게 될까요? 시간되짚기를 해보면 호수의 가장자리에서 갑자기 파문이 일고 가운데로 모여들지요. 그리고는 가운데에서 돌이 하나 쏙 솟아 올라올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실 고전역학에서 원리적으로는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서 운동법칙을 따릅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이 다시 젊어지는 것을 본 사람이 없듯이. 사실상 모든 물리 법칙은 시간되짚기 대칭이 있다는데 왜 우리 일상생활에는 없을까요? 왜 과거와 미래가 다르게 시간이 비대칭이 될까요?

물 한 컵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트리면 쭉 퍼져서 전체가 푸르스름해지는데 이 과정이 거꾸로 되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중 한 명이 병에 담긴 향수를 가져와서 뚜껑을 열면 향기가 퍼져서 모두들 기분이 좋아지겠지요. 그런데 퍼졌던 향기가 다 모여서 향수병으로 쏙 들어가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엎질러진 물'이 라는 말이 그래서 생긴 겁니다. 왜 퍼졌던 향기가 다시 모여서 향수병으로 돌아 들어가는 일은 안 생길까요?

우리는 모두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모든 일상생활은 물리법칙에 의해서 기술됩니다. 물리법칙을 위배하는 현상을 본 적이 있습니까? 물론 여기서 종교 얘기는 하지 말기로 하지요. 홍해가 갈라졌다거나 강물이 빨갛게 됐다거나 하는. 사실 우리나라도 진도나 무창포도 홍해처럼 갈라지고, 남해도 해마다 빨갛게 됩니다. 아무튼 일반적으로 물리법칙에 위배되는 현상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과 우주에 관한 모든 것은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자연을 해석하는 기본 전제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모든 물리법칙은 시간되짚기 대칭성이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K나 B 중간자는 극히 예외적인 것으로 일상에서 시간되짚기 대칭이 없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현상입니다. 아무튼 왜 일상에서는 시간되짚기 대칭이 없는가, 물리법칙에는 시간의 방향이 없는데 일상에는 왜 시간의 방향이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 물가에 물체가 떨어져 물결이 생성되는 모습

비유로 이런 것을 생각해 봅시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어딘가 가려고 시외버스 터미널에 갔습니다. 다른 도시로 가는 버스가 있는데, 춘천이나 속초 가는 것도 있고, 원주 가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원주에서 춘천 가는 것도 있고, 원주에서 강릉 가는 것도 있고 또 강릉에서 춘천 가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서울에서 대전, 대구, 그리고 광주 등 여러 도시에 가는 것이 복잡하게 많겠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초등학교 때 공부를 너무 안 해서 한글을 못 읽는다고 합시다. 그래서 어디 가는 버스인지 모르므로 아무거나 탄다고 합시다. 어딘가에 도착해 또 아무거나 타는 걸 반복하면 다시 서울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노선이 아주 복잡하게 많은 상황에서는 우연히 돌아오게 될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사실 모든 노선에서 상행과 하행은 똑같아서 대칭성이 있습니다. 하나하나는 모두 대칭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마구잡이로 계속 가는 사람의 여행 행로를 보면 당연히 대칭은 깨질 것입니다. 부분의 하나하나는 대칭이 있어도 그렇습니다. 이에 따라 원래 출발지로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어지는데, 시간되짚기 대칭성 깨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예로서 이 강의실을 생각해 봅시다. 지금 남녀 학생의 비율이 똑같다고 하고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고 했으니 남학생은 오른쪽에 앉고 여학생은 왼쪽에 앉았다고 합시다. 줄을 맞추어서 정돈해 앉았는데 어느 순간에 일어나서 마구 뒤섞입니다. 하나하나 학생은 자기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며, 각 학생마다 움직임은 시간되짚기 대칭이 있습니다. 그렇게 한참 하다보면 남녀 학생이 섞일 텐데 계속 하면 남녀가 갈라져서 정돈된 처음 상태로 다시 돌아올까요?

일반적으로는 완전히 뒤섞여서 처음 상태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시간되짚기 대칭이 깨지게 될 것입니다. 학기말 가까이 되어 자세히 강의하겠지만 이를 엔트로피는 커지게 된다는 표현을 쓰고 열역학 둘째법칙(second law of thermodynamics)이라고 부릅니다. 열이 뜨거운데서 차가운 데로만 흐르는데 그 반대현상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 반대가 있다고 하면 여름에 물을 한 컵을 놔뒀는데 자고 일어나면 그 물이 꽁꽁 얼어버릴 수 있습니다. 물이 열이 나가기만 하고 들어오지 않으면, 물의 온도가 차가와지고 주위 공기가 뜨거워도 열이 거꾸로 흐를 수 있다면 물의 열이 바깥으로 나가니까 그 에너지를 잃어버려 점점 온도가 떨어져서 얼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볼 사람도 없을 겁니다. 영원히 없을 것입니다.

이 예에서 보면 개개의 운동 분자들은 물리법칙을 따릅니다. 그래서 개개 운동은 시간되짚기 대칭이 있는데 전체로 보면 시간되짚기 대칭이 깨지게 되지요. 예를 들어 물에다 잉크 한 방울을 집어넣어도 잉크 분자들의 운동은 물리법칙을 따르는 겁니다. 분자 하나하나의 운동은 완전히 시간되짚기 대칭이 있는데 전체로 보면 시간되짚기 대칭이 깨지는 겁니다. 결국 분자나 구성원 하나하나의 상황과 전체의 현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자 등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대상 - 거시(macroscopic)세계라고 부르는 - 에서는 뭔가 다른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구성원 하나하나를 이해한다고 해서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여기에서도 여실히 나타납니다. 이는 열역학 둘째법칙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이른바 시간화살(time arrow)이라고 표현합니다. 시간이 화살처럼 한쪽 방향으로 날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왜 이렇게 되는지는 아주 흥미롭고 중요한 문제며 자연현상을 해석하는 데에 핵심적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뒤에서 정보와 엔트로피를 배울 때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물질을 자연현상의 실체로 상정했고, 물질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상호작용 때문에 다양한 자연현상이 나타난다고 전제했습니다. 이에 따라 물질의 기본 구성요소가 무엇인지, 그 사이의 상호작용이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성질이 있는지 살펴보았지요. 이제 남은 일은 그러한 자연현상을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 입니다.

(매주 화,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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