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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 공주와 숲 속의 양산박, 그리고 일곱 명의 난장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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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 공주와 숲 속의 양산박, 그리고 일곱 명의 난장이들"

김민웅의 세상읽기 <268> 동화 속에 담긴 비밀

"백설 공주"는 압축해서 말하자면, 그 미모에 대한 질시를 받아 마녀인 계모에게 목숨을 위협당하다가 결국 죽게 되고 (알고 보니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것처럼 보인 가사(假死)상태가 된 것이지만), 어떤 왕자의 사랑으로 되살아나는 공주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잘 아는 이야기지만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어느 왕국에 왕비가 어느 날 옷을 꿰매다가 실수로 바늘에 손이 찔려 그 핏방울이 눈이 하얗게 덮인 대지 위에 떨어진다. 그걸 보고 왕비는 살결이 눈처럼 희고, 입술은 핏방울처럼 붉고 머리카락은 흑단나무처럼 칠흑같이 아름다운 딸을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
  
  눈처럼 희고, 핏방울처럼 붉고 흑단나무처럼 검은
  
  왕비가 바라던 대로 예쁜 여자아기가 태어나지만, 왕비는 산고를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만다. 공주는 그 모습대로 백설 공주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엄마 없이 자라는 딸을 위해 왕은 새로 왕비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계모가 된 이 왕비는 사실 마녀였고, 그녀는 마술 거울 앞에서 자신과 미모를 견줄 수 있는 여인이 세상에 있는지 늘 묻곤 했다. 언제나 최고의 미모로 만족감을 누리던 이 왕비는 백설 공주가 자신의 적수임을 확인하고는 심복을 시켜 숲 속에 데리고 가 살해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백설 공주의 심장을 증거로 가져오라고 하지만, 명령을 받은 심복은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공주를 숲 속에서 놓아주는 대신 어린 사슴의 심장을 왕비에게 가져간다.
  
  이제 마녀 왕비는 그녀와 미모를 경쟁할 여인이 없게 된 기쁨으로 나날을 지내게 될 줄로 알았으나 되나, 백설 공주가 숲 속에 있는 일곱 명의 난장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다시 그녀를 살해할 계략을 꾸민다. 떠돌이 장사치처럼 변장을 하고 공주를 찾아간 마녀는 목에 감는 장식 레이스, 독을 바른 빗으로 목을 조르거나 독살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만다. 마지막으로 독이 든 사과를 가지고 가 공주가 사과를 먹게 하는데 성공하게 되고 백설 공주는 일곱 명의 난장이에 의해 유리관에 안치된다. 그렇게 했던 까닭은 숨이 멈춘 공주가 전혀 모습이 변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이곳을 지나다가 유리관 속의 공주에 반한 한 왕자가 난장이들에게 간청하여 유리관을 가지고 가려하는데 관이 움직이는 순간, 목에 걸린 독이 든 사과가 입 밖으로 튀어나와 백설 공주는 살아난다. 당연한 수순으로 두 젊은 남녀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게 되고, 흉계를 꾸몄던 왕비는 뜨겁게 달구어진 철로 된 신발을 신고 죽을 때까지 뜨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가운데 춤을 추는 형벌을 받고 죄 값을 치르게 된다.
  
  마녀의 질투, 민심이 기우는 곳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통해 본래 이 이야기의 전승주체인 민중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던 것일까? 대체로 이 백설 공주 이야기는, 미모의 착한 소녀가 어려움을 겪다가 진정한 사랑을 만나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로맨스로 해석된다. 물론 그렇게 읽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렇게만 읽고 말아버리기에는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현실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유럽의 고대와 중세에서 왕권의 계승은 남자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백설 공주는 새로 시집왔으나 자식이 없는 계모 왕비에게는 권력 계승의 결정적인 적대세력이 된다. 게다가 그녀의 영혼은 백설처럼 맑고 깨끗하다. 민심이 장차 누구에게로 기울게 될 것인지는 분명하다.
  
  마녀 왕비가 매일 바라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누구인가를 묻는 것은, 자신을 압도할 수 있는 경쟁세력의 색출과정으로 이어진다. 기이하게도 백설 공주의 어머니 왕비가 세상을 뜬 후, 왕은 이 이야기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왕은 존재했으나 이미 실권은 계모 왕비에게 넘어간 이후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 해도 계승권 0순위의 공주를 살해하려는 것은 역모(逆謀)다. 그래서 그녀는 그 일을 아무도 모르게 실행하려 들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한편, 백설 공주가 숲 속에 버려진 때는 일곱 살로 설정되어 있다. 일곱 살은 어린 나이이기도 하지만, 그 "7"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행운의 힘이 그녀를 감싸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7"은 일곱 명의 난장이들로 연결된다. 당연히 난장이들은 왕국의 권력자들에 비해 모든 것이 미미하게만 보이는 존재들이지만 공주를 마녀의 추적과 살해음모에서 번번이 구해내는 것은 이들이다.
  
  숲속의 양산박(梁山泊), 그리고 일곱 명의 난장이들
  
  구도가 이렇게 되어가면서 우리는 점차, 왕국의 막강한 권력과 숲속에 은밀히 마련된 양산박(梁山泊)과 같은 산채(山砦) 사이의 긴장과 대립을 보게 된다. 마녀 왕비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누구냐고 묻는 마술거울은, 돌아가는 정세를 세밀히 파악해서 그녀의 권력이 위협받지 않도록 하는 이를테면 왕국의 비밀 안보기관이다. 그리고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로 마녀는 자신의 권력에 대한 저항의 근거지가 될 현장으로 파고 들어가 권력의 눈으로 보면 기껏 7명의 난장이에 불과한 자들에게 희망의 깃발로 떠오르고 있는 공주를 독살하는데 마침내 성공하게 된다.
  
  독 사과는 성서의 선악과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기호다. 마녀는 공주를 죽이려 들었지만 그 방식은 신의 질서에 도전했다는 것을 비유하고 있는 격이다. 백설 공주는 숨이 멈추었지만 모습이 변하지 않고 본래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지켜내고 있음은 공주와 함께 했던 숲속의 정신은 무너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 아름다움은 그녀가 타고난 것이기도 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왕궁에서 철모르고 자랐던 그녀가 이들 난장이들과 함께 민중적 현실을 경험하면서 더욱 성숙해진 현실을 의미해주고 있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백설 공주의 어머니 왕비가 옷을 꿰매던 장면도 그대로 지나칠 수 없다. 왕비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백설 공주의 어머니는 왕궁에서 손에 물 하나 묻히지 않고 바느질 하나 하지 못하는 권력자의 모습보다는 그런 삶이 일상인 백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바라던 새로운 세상의 자식은 순결한 영혼과 핏 빛 같은 열정, 그리고 칠흑같이 단호한 의지의 존재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러한 존재는 현실에서 외롭다. 백설 공주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것은 그런 현실을 보여준다. 그런 그녀에게는 왕궁 안에서가 아니라 궁 밖에서, 새로운 연대의 동지들을 발견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그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위협당하고 고난 받는 가운데 발견하게 되는 숲 속의 사람들이 바로 그녀의 새로운 동지들이다.
  
  이 시대에 가사상태가 된 정신은 무엇일까?
  
  백설 공주가 마녀의 계략에 걸려 중도에 넘어진 듯하지만, 그녀가 비록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아름다움에 이끌린 한 남자의 등장은 사태를 결정적으로 바꾼다. 백설 공주가 흔든 희망의 깃발이 그녀의 죽음으로 이제는 빛바랬다고 여기고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그건 여전히 마음을 바칠 이유가 있는 목표라는 것을 깨우친 존재는 관 속의 공주에게도 영혼이 사로잡힌다.
  
  역사를 순결하게 바꾸는 힘은 때로 시대적 음모에 의해 가사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관이 움직이면 독이 든 사과는 무력해지고 말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열정과 사랑이, 잠시 시대적 위협과 핍박으로 기력이 꺾인 줄 알았던 존재가 관이 움직이자, 즉 유리관에 누운 백설 공주를 그저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하는 자의 행동이 있자, 역사는 예상치 못한 전환을 경험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우리에게 전승되고 있는 "백설 공주"는 이 사건 이후 숲속의 난장이들의 역할과 존재에 사라지고 없다는 점이다. 일곱 명의 난장이들은 이 이야기의 부속장치가 아니라 사실은 백설 공주의 운명에 가장 결정적 기여를 하는 주인공들이다. 숲 속의 난장이들, 그들과의 연대를 결코 망각하지 않고 마녀가 지배하는 세상을 이겨내는 백설 공주, 그리고 왕자의 등장, 그것이 사실상 이 민담의 전승 주체였던 민중들이 가장 바라고 바랐던 것은 아닐까?
  
  또 한 가지, 이 시대에 가사상태에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그래서 관을 움직이면 깨어날 그 공주의 이름은 과연 무엇일까? "백설 공주" 이야기는 그렇게 여전히 계속된다.
  
  * <출판저널>에 동시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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