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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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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323>

산에 가본들 거기에 산은 없다

그간 중국과 일본, 미국에 대해 얘기하면서 다소 딱딱했으리라. 그래서 이번 글은 쉬어가는 내용이다.
  
  꿈이 많다, 반면 가진 것은 없다면 그것이 젊음이다.
  
  젊은이는 장차 많이 가져야 할 사람들이다. 또 가지고자 무진 애를 쓴다.
  
  한편으로 젊은이들은 이미 많이 가진 자를 시샘하거나 비방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가진 자의 기술을 모방하려고 열심히 훔쳐보기도 한다. 더러는 여태껏 앞 사람들이 가져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아예 창조함으로써 가지려고도 한다.
  
  젊은이의 이런 노력과 열정이 바로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힘이다. 젊은이는 그러나 대개의 경우 방법론에 있어 유치하다. 여자를 꼬드기는 기술도, 남자를 유혹하는 기술도 나이든 사람의 눈에는 유치하듯이 가지려는 열정에 비해 방법론은 대부분 서툴고 어리석다.
  
  오늘은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그 방법의 要諦(요체)를 알려드리고자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역사의 지혜이며, 시쳇말로 '짬밥'이라고도 한다.
  
  방법과 기술에 관계없이 시도가 많으면 收率(수율)은 떨어져도 그럭저럭 얻을 수가 있다.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단계지만, 일단 좋은 출발이고 근기가 생긴 것이다.
  
  일단 걸려든 목적물을 약간 늦춰주는 요령을 얻으면 중간 고수의 반열에 든다.
  
  나아가서 탐이 나는 물건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수 있다면 어느덧 고수의 반열에 오른 셈이다.
  
  더 나아가서 겉보기에 잃어주는 것 같은 시늉을 할 수 있으면 상등 고수라 할 수 있다.
  
  여기까지 오면 이미 많은 것을 얻게 되겠지만, 아직 절정고수라 할 수 없고 상승 내공의 경지는 아니다. 그저 힘에서 技藝(기예)의 경지로 들어온 정도라 하겠다.
  
  상승 내공은 기예에서 道(도)의 경지로 들어가는 것이고, 일종의 초월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경지로 들어갈 수 있는 자는 많지 않다.
  
  탐하는 척은 하지만, 실제로는 탐하지 않고 그저 즐기는 것이다. 그간 많이 가져보고 많이 놀아봤기에 이젠 그리 아쉽지 않은 것이다.
  
  탐심이 없으면 세상은 더 많은 것을 주게 되어있다. 더 많은 것을 받아 즐기다보니 더더욱 탐심이 없어진다. 그러면 더 주는 것이 세상이다. 이것이 상승 경지로 들어가는 入門(입문)이다.
  
  나아가서 많은 것을 소유한 척은 하지만, 실제로는 잠시 쓰고 즐기다가 때가 되면 놓고 갈 줄을 알면 되는 것이다.
  
  이 정도면 상승 경계로 한참을 들어간 것이다. 거의 虛靈(허령)의 단계, 즉 빈 것도 같고 신령스런 경지로 발을 디딘 셈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소유한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우리의 삶인데, 이 삶마저도 잠시 때를 얻어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다시 때가 되어 놓아버릴 줄 알면 자연과 하나, 천지와 하나가 되어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
  
  오늘은 무언가를 얻고자 또 자신만의 파랑새를 찾고자 이 세상을 방황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그 요령을 말씀드렸다.
  
  '노력하며 애쓰는 자를 천사들은 구원하리라'고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말했으니 노력하다보면 반드시 답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삶의 진정한 의미를 물질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에서 찾는 '진지'파와 '갈구'파 젊은이들, 이런 젊은이들은 패닉의 노래 '달팽이'를 듣고 한 번쯤은 울컥했던 자들임이 분명하다.
  
  그런 달팽이들에게 아무도 보지 못하고 간 적도 없는 저 먼 바다로 가는 길을 안내해드리고자 한다.
  
  먼저 물질 이상의 것을 구하려 한다는 것은 현실을 초월하려는 것인데 이는 사실 욕심이 많아도 한참 많은 것이라는 점부터 알아야 한다.
  
  세상이 시시하고 물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산으로 가도 좋다. 그곳에서 얼마 동안을 지내다보면 결국 산에서는 산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정도 깨달음을 얻었으면 창피해하지 말고 다시 下山(하산)하라는 것이다.
  
  정신의 세계를 추구한다고 물질의 세계를 떠나 산으로 갔지만, 물질이 없는 곳에는 정신도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될 것이다. 터득했으면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아니면 산에서 식당이나 주점을 하나 차리고 살든지.
  
  물질과 정신이 하나임을 알게 되면 도회지에 살아도 관계가 없다. 그냥 다니던 직장을 다녀도 별 관계가 없다. 문밖을 나서면 물질세상이지만, 문만 닫아도 정신세계이기 때문이다.
  
  돈 걱정하는 순간 번잡한 속세이고 塵世(진세)이지만, 돌아앉아 시 한 편을 읽으면 즉각 仙境(선경)인 것이다.
  
  仙(선)은 산 위이고 俗(속)은 산 아래인데, 알고 보면 한 호흡에 오르내리는 가까운 거리임을 알고 나면 피우는 담배 연기 속에서도 파랑새가 나래를 펼쳐 보일 것이다.
  
  필자가 좋아해 마지않는 시 한편, 나름의 감상을 얘기함으로써 글을 맺고자 한다. 정현종 시인의 "기억제 1" 이라는 시다.
  
  "금인 시간의 비밀을 알고 난 뒤의
  즐거움을 그대는 알고 있을까
  처음과 끝은 항상 아무것도 없고
  그 사이에 흐르는
  노래의 자연
  울음의 자연을.
  헛됨을 버리지 말고
  흘러감을 버리지 말고
  기억하렴
  쓰레기는 가장 낮은 데서 취해 있고
  별들은 天空에서 취해 있으며
  그대는 중간의 다리 위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음을."

  
  우리의 삶에서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은 시간이기에 '시간은 금'이라는 아주 평범한 금언으로 시가 시작된다. 그런데 평범한 말도 시인의 손을 거치면 대단한 것이 되니 그야말로 기교라 하겠다.
  
  그리고 시간의 비밀을 안다는 것은 삶의 密意(밀의)를 안다는 것인데, 시인을 그것을 알았다는 것이고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누자고 한다. 실로 엄청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시인은 그 비밀을 얘기하기 시작한다. 처음과 끝, 다시 말해 탄생과 죽음 그 자체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먼저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 처음과 끝 사이에 있는 그 무엇이라는 것이니 삶의 과정 속에 비밀이 담겨있다고 얘기한다.
  
  삶의 시간, 거기에는 노래하기도 하고 고통으로 울기도 하는 자연이 흘러가고 있다고 얘기한다.
  
  저 들과 산에 있는 자연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도 그런 자연이라고 말한다. 절로 그러한 바가 自然인 것이니 삶이란 어쩔 수 없이 노래와 고통이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지녔다는 것이다.
  
  살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삶의 모든 것들이 허무하기도 하고 또 그저 흘러가버릴 성질의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시인은 그런 감정과 생각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버리지 말라고 얘기한다. 삶의 얼마 되지 않는 승리와 절정의 시간들만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헛됨과 무상함 역시 소중한 것이라고 賢者(현자)의 모습으로 얘기한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시인은 마지막으로 정리한다.
  
  마치 쓰레기와도 같이 누추한 우리의 현실이지만 그 역시 나름으로 취해볼만한 것이며, 그렇다고 사라지지 않는 우리의 꿈과 이상 역시 저 높은 밤하늘의 별로서 취해있다.
  
  쓰레기 역시 우리의 삶이고, 밤하늘의 별 역시 우리의 삶이다. 이에 그대가 어느 추운 겨울 밤, 만취한 상태로 육교를 건너가다가 하늘의 별과 땅의 쓰레기 사이에서 토악질하면서 난간을 붙잡고 비틀거리고 섰다면 바로 그 모습 그대로가 삶의 본질이자 비밀이라고 시인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시인은!
  
  저번에 '소상팔경'이란 제목으로 글을 한 편 올렸더니 꽤나 반응이 좋았다. 메일을 통해 좀 더 알아볼 수 있는 자료가 없느냐는 질의가 여러 번 있었다. 책방에 가보니 대단히 좋은 책이 한 권 있기에 소개한다.
  
  전경원 씨라는 학자 분이 "소상팔경, 동아시아의 시와 그림"이란 제목으로 오랜 연구를 통해 이 방면에 관련된 시와 그림들을 거의 집대성해놓은 책을 만들었다. 한 번 읽어보면 즐거울 것이다.
  
  (전화:02-534-7250, E-mail :1tgkim@hanmail.net)
  김태규의 명리학 카페 : cafe.daum.net/8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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