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존재한다는 이른바 원자 사상은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리스 시대에 아낙사고라스(Anaxagoras)라는 사람 들어 봤죠? 못 들어 봤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다 알지요? 일반적으로 자연철학자라고 부르지요. 아낙사고라스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질이 연속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최소 단위란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와 다른 생각을 한 사람이 데모크리토스(Democritus)입니다. 들어 봤죠? 그는 물질이 연속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고 물질의 최소 단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최소 단위를 원자라고 불렀지요. 원자란 말 자체가 더는 쪼갤 수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데모크리토스는 아무런 근거 없이 순전히 사변적으로 생각한 겁니다.
근대적 의미에서 원자를 처음으로 생각한 사람은 누구죠? 근대란 의미는 실험적 근거가 있다, 곧 검증이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릴레이를 과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겁니다. 근대과학에서 원자론은 19세기에 돌턴(John Dalton)이 발표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원자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을까요? 돌턴은 화학자라 할 수 있는데, 화학반응을 연구했지요. 물질은 화학반응을 통해서 다른 물질로 바뀝니다. 화학반응에서 관여하는 화합물을 분석해 보고 화합물의 성분이 일정한 비율로 주어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컨대 물은 수소와 산소로 돼있는데 아무렇게나 결합돼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2 대 1로 결합돼 있지요. 이같이 성분이 일정한 비율로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비유하자면 설탕을 타서 커피를 마시는데 설탕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알고 싶은 경우를 생각할 수 있겠네요. 커피 잔이 여러 개 있는데, 설탕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분석해 봤더니 어떤 것은 설탕이 12 g 들어 있었고, 다른 것들에는 6 g, 9 g, 15 g 있었습니다. 분석 결과 모든 잔에 들어 있는 설탕의 양은 언제나 3 g의 배수였습니다. 이는 설탕을 넣을 때 가루설탕이 아니라 각설탕을 넣었고, 각설탕 하나가 3 g이라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고 합리적입니다.
화학반응이 일정한 성분비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설탕의 양이 일정한 양, 곧 각설탕의 정수배로 주어지는 경우에 비유할 수 있지요. 이에 따라 각설탕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각설탕을 원자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원자라는 기본단위가 있다고 생각한 거죠. 원자 가설이라고 말하는데, 이른바 가설을 세운 겁니다. 앞에서 이론의 구조를 잠깐 공부했는데, 적절한 가설 또는 기본원리를 세워서 전제하고 시작하지요. 가설연역(hypothetico-deductive) 체계라고 부르는데 가설―이건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에서 출발해서 정합성을 유지하며 논리 전개를 하고 얻어진 결론을 실제 세계와 맞춰 봐야 합니다. 이른바 실험적 검증을 하는 겁니다. 실험적으로 검증해서 일치하면 가설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일치하지 않으면 버리고 새로운 가설을 세워야 합니다.
돌턴이 처음에 원자라는 가설을 채택하자 여러 가지 화학반응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답을 아니까 당연한 것 같지만 원자라는 걸 생각하지 않으면 화학반응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수소와 산소가 만나서 물이 되는 반응을 생각해 보지요. 언제나 수소와 산소가 2 대 1로 반응해서 물이 되는데, 왜 반드시 2 대 1일까요? 물질의 기본 단위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원자가 있다고 생각하면 편리하게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요. 물질의 특성을 지닌 기본 단위는 분자로서 수소나 산소는 각각 원자 둘이 모여서 분자를 이룹니다. 이들이 만나서 물이 되는 반응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나타냅니다.
2H2 + O2 → 2H2O
수소분자(H2) 2개와 산소분자(O2) 1개가 만나서 물 분자(H2O) 2개가 생기는 것을 간단하고 명확하게 보여주지요.
세상에 물질이 모두 몇 가지나 있을까요? 아무도 모른다가 답입니다. 워낙 많고 갈수록 점점 많아지죠. 계속 인공적으로 합성하니까요. 그 무한에 가까운 다양성을 원자 가설에 의하면 불과 수십 가지의 원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요. 그래서 원자 가설은 획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자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누구나 다 인정합니다. 원자의 존재를 믿지 않는 학생 있어요? 감각기관으로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지만 수많은 간접 근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돌턴도 화학반응과 물질의 다양성 면에서 원자 가설을 세웠지만, 원자의 실재성을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사고의 방편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정도의 실재성을 부여한 사람은 그보다 훨씬 뒤인 19세기 후반의 볼츠만(Ludwig Boltzmann)입니다. 통계역학을 창안해낸 사람인데, 처음으로 엄밀한 의미의 원자를 정립하였습니다. 업적의 중요성과 과학 발전에 미친 영향을 볼 때 아인슈타인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시대를 너무 앞서 갔기 때문에 일찍 불행하게 죽었다고 할 수 있지요.
원자의 구성 입자
그리고 원자란 말 자체가 더는 쪼갤 수 없다는 뜻을 지녔지만,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원자도 더 기본적인 것들로 구성돼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원자보다 더 기본적인 알갱이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이 톰슨(Joseph J. Thomson)입니다. 유리로 만든 밀폐된 용기 안의 양쪽에 전극을 집어넣고 공기를 웬만큼 빼내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전극 사이에 전압을 걸어줍니다. 전기이음줄을 통해서 외부 전지를 전극에 연결한 거지요. 전압을 충분히 올려주면 두 전극 중에 전지의 (-)단자에 연결된 음극에서 뭔가 나오는 것 같단 말이에요. 물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를 음극선(cathode ray)이라 불렀습니다. 1897년의 일이지요.
뭔가 나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용기 안에 공기 같은 기체가 조금 있으면 빛이 납니다. 여기에 어떤 기체를 채우느냐에 따라 특정한 빛을 냅니다. 이를 이용한 것이 바로 네온사인(neon sign)이지요. 꼭 네온을 채우는 것은 아니고 수은, 질소, 아르곤 따위를 채우는데, 이에 따라 나오는 빛깔이 청록, 주황, 빨강 등으로 달라집니다. 우리나라 밤거리에는 유달리 네온사인이 많지요. 외국에는 환락가에만 네온사인이 찬란하지 주거지역은 물론 일반 상업지역도 네온사인은 드뭅니다. 유난히 십자가 네온사인이 많죠? 외국인들은 공동묘지가 많은 줄로 오해한다고 하지요. 의원 네온사인도 많은데 응급실 표시가 아니고 밤에 열지도 않지만 광고하기 위해 켜놓는 듯합니다. 그런데 병 고치는 걸 광고한다니 좀 이상하지요. 성형외과라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용기 안에 장애물을 넣으면 그 뒤에 그림자가 진다는 사실도 관측했습니다. 이는 눈에는 안 보이지만 뭔가 나와서 직진하기 때문에 장애물 뒤에 도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뿐만 아니라 바람개비를 갖다 놓으면 돌아가는 것도 봤습니다. 무엇인가 나온 것이 바람개비에 부딪쳐서 돌아간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또한 외부에 전극을 내부전극과 수직으로 배치하거나 자석을 놓으면 굽은 길로 움직인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결국 음극에서 무엇인가 나온다고 결론지을 수 있고, 이를 음극선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음극선은 여러 가지 성질로 미루어봐서 어떤 작은 알갱이들이 흘러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뭔가 와서 부딪히고 압력을 줘서 바람개비가 돌아가니까 운동량을 가지고 있고, 이는 질량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질량을 지닌 알갱이들의 흐름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전기나 자기를 걸면 가는 길이 굽어지는 걸로 봐서 전기를 띤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그 전기가 음(-)전기라고 정해진 거죠. 따라서 음극선은 질량과 음전기를 지닌 어떤 알갱이들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알갱이를 전기를 띠고 있다는 뜻에서 전자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아주 가벼워서, 질량이 원자 중에서 가장 가벼운 수소원자에 비해도 1836분의 1 밖에 안 되지요.
이것으로 보아 원자가 존재하고,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원자 안에는 전자가 있고 그 전자가 (-)전기를 띠는데 원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므로 어딘가 나머지 부분은 양(+)전기를 띠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전체적으로 중성이 되니까요. 그리고 전자가 아주 가벼운 것으로 미뤄봐서 전자를 뺀 나머지가 원자 질량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원자에는 (-)전기를 띤 전자가 있고 전자 이외의 나머지 부분은 (+)전기를 띠면서 원자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톰슨은 원자는 찐빵처럼 돼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찐빵이 어떻게 생겼어요? 안에 아무 것도 없는 빵은 맛이 좀 없으니까, 빵 안에 팥 앙금 같은 소를 넣지요. 소 대신에 건포도를 빵 전체에 퍼져 있도록 고르게 넣었다고 합시다. 이러한 원자의 찐빵모형(pudding model)에서 건포도가 (-)전기를 띤 전자에 해당하고 나머지 부분에 (+)전기가 고르게 퍼져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중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이 타당한지 확인하기 위해서 20세기 초에 톰슨의 제자였던 러더포드(Ernest Rutherford)는 알파선(α-ray)을 흩뜨리는 실험을 했습니다. 알파선은 방사성 원소가 붕괴할 때 나오는데 흔히 베타선(β-ray), 감마선(γ-ray)과 함께 나옵니다. 알파선은 에너지가 약해서 큰 문제가 없지만 감마선은 위험하니까 쬐지 않는 게 좋습니다. 핵반응로(nuclear reactor)에서 - 부정확하게 원자로라고 부르지요 - 많이 나옵니다.
알파선 흩뜨림 실험을 하기 위해 금으로 만든 얇은 막에 알파선을 쏘아 보냈습니다. 알파선을 이루는 알갱이는 사실 헬륨의 원자핵입니다. 양성자와 중성자 각각 2개로 이루어져 있어서 양전기를 띠고 있지요. 알파 알갱이들로 금 원자를 두들기니까 대부분은 그냥 쓱 지나갔지만 어떤 것은 가다가 방향이 휘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녀석은 가다가 거의 되돌아온 녀석도 있었습니다. 이는 밀치는 힘을 받았기 때문인데 알파 알갱이가 양전기를 띠고 있으니까 금 원자가 어딘가 역시 양전기를 띤 부분이 있어서 전기력에 의해 밀어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찐빵모형에 의하면 금 원자가 바깥에서 볼 땐 완벽한 중성이니까 전기력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는 알파선이 흩뜨려지는 것으로 봐서 금 원자는 양전기, 음전기가 고르게 섞여서 중성이 아니라 어딘가 양전기만 지닌 부분이 따로 있다는 얘기입니다. 러더포드의 결론은 찐빵모형과 달리 원자에는 양전기와 음전기가 골고루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음전기를 띤 전자에 더해서 양전기를 띤 부분이 따로 있다는 것이었지요. 양전기를 띤 부분을 원자핵(atomic nucleus)이라고 불렀습니다. 원자에는 핵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결국 원자는 양전기를 지닌 핵과 음전기를 띤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문제가 생기는데, 양전기와 음전기는 서로 당길 터인데 핵과 전자가 어떻게 붙어버리지 않고 따로 있을 수 있냐는 거지요. 이 문제를 마치 해와 지구가 서로 당기는 상황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당기니까 우리가 (지구에서) 볼 때에는 해가 지구로 떨어져야 할 것 같은데 다행히도 안 떨어지고 있어서 우리가 살아있을 수 있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물론 서로 돌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서로 당기니까 가속도가 생기는데 돌고 있으니까 가속도는 도는 방향을 계속 바꿔주어서 원운동하도록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핵과 전자가 서로 당기지만 전자가 핵 주위를 돌고 있으므로 붙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마치 태양 주위를 행성들이 돌듯이. 이 러더포드 모형은 스승이던 톰슨의 찐빵모형보다 원자를 훨씬 잘 설명해줍니다. 뒤에 논의하겠지만 이보다 더 좋은 원자 모형이 보어(Niels Bohr)에 의해 제안되었는데 보어는 러더포드의 제자였지요. 이들 모두 노벨상을 받게 됩니다.
러더포드는 원자핵이 양전기를 띠고 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에 채드윅(James Chadwick)은 원자핵이 전기를 띠지 않은 중성자라는 알갱이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아냈습니다. 핵은 전체적으로는 양전기를 지녀야 합니다. 그런데 중성인 녀석이 있는 걸로 봐서 핵 안에는 양전기를 띠고 있는 녀석이 따로 있다는 거죠. 그걸 양성자라고 이름 붙였고, 따라서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런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서 원자의 구조는 가운데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핵이 있고 주위에 전자가 있다고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 사람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매주 화, 목, 금 연재)
* 이 연재기사는 지난 2008년 12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라는 제목의 책으로(책갈피 출판사)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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