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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의 범위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13> 물리학과 물질세계 <상>

5강 물리학과 물질세계

지난 시간까지 서론을 마친 것으로 하고 이번 시간부터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공부한 내용 중에 혹시 질문 있어요? 질문 없으면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강의 계획표를 보면 이번 시간의 주제가 '물질의 구성요소'라고 돼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얘기로 시작하지요. 자연현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것이 자연과학의 목적입니다. 그 기본 전제로 물질이라는 것을 자연현상들의 실체라고 상정하였지요. 따라서 자연과학은 물질세계를 다루는 학문이고 특히 이를 주되게 다루는 분야가 물리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리학의 분야

자연과학을 여러 종류로 나누었는데 그 중 물리학은 성격이 특이하지요. 처음에 지적했듯이 자연과학의 관점에서는 생명을 포함해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게 다 물질에 의한 현상입니다. 따라서 물질을 다루는 물리학은 사실상 모든 자연현상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면 물리학과 다른 자연과학이 같은 자연현상을 탐구할 때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예를 들어 물리학이 생명현상을 탐구하는 경우 생물학과 어떻게 다를까요? 물리학의 차별성은 앞에서 논의한대로 보편지식을 추구하는 데 있습니다. 이론과학이란 면에서 거의 유일하고, 물질세계 전체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물리학은 그동안 모든 자연과학의 모범이 돼 왔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물리학에 대해 공부하기로 하지요.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은 모두 물질에 의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책상, 분필, 공기, 우리 몸 등 모든 것이 물질이지요. 이러한 물질은 일반적으로 구성원과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가 감각기관으로 경험하는 물질은 매우 많은 수의 구성원, 곧 분자들로 이뤄져 있다고 이해합니다. 분자는 원자들로 이뤄져 있고,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들, 그리고 원자핵은 기본입자라고 부르는 양성자, 중성자 따위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하지요.

따라서 물질을 이루는 여러 단계를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중에 어느 단계의 구성단위를 다루느냐에 따라 물리학을 분류합니다. 양성자, 중성자, 전자 따위의 기본입자, 곧 렙톤, 하드론 및 쿼크, 게이지입자 따위를 다루는 분야를 입자물리(particle physics)라고 합니다. 그런 기본입자들이 모여 원자핵을 형성하지요. 원자핵의 구조라든가 상호작용을 다루는 분야는 핵물리학(nuclear physics)이라고 부릅니다. 그 다음에 원자핵과 전자가 함께 원자를 만들고 원자가 몇 개 모여서 분자를 형성하는데, 이러한 원자나 분자를 다루는 분야를 원자분자물리(atomic and molecular physics)라고 하지요. 그리고 이런 원자나 분자가 엄청나게 많은 수가 모여야 비로소 우리가 감각기관으로 경험하는 물질이 됩니다. 우리가 시각이나 촉각, 또는 미각 등 감각기관으로 경험할 수 있는 물질은 아주 많은 수의 원자나 분자가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지요. 그런 물질을 응집물질(condensed matter)이라고 부르고, 이를 다루는 분야를 응집물질물리(condensed matter physics)라고 합니다.

한편 온도를 매우 높이면 원자나 분자에서 전자가 일부 떨어져 나가고 물질은 전기를 띤 이온(ion)들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플라스마(plasma) 상태의 물질을 다루는 분야가 플라스마물리(plasma physics)인데 응집물질 중 액체나 기체 등 흐름체를 다루는 유체물리(fluid physics)와 함께 분류하기도 합니다. 또한 빛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가 광학(optics)입니다. 일반적으로 빛과 관련된 물질 현상은 원자나 분자에 의한 빛의 흡수 및 방출을 통해 생겨나므로 광학은 원자분자물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다른 자연과학 분야와 융합돼 있는 천체물리, 화학물리, 생물물리, 의학물리, 지구물리 따위가 있습니다. 화학은 주로 분자 수준의 현상을 다룹니다. 따라서 화학물리는 분자물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많은 수의 단백질 같은 분자들로 이뤄져 있으므로 생물물리는 당연히 응집물질물리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천체물리는 물론 우주를 다루는데 그 안에는 기본입자, 원자핵, 원자와 분자, 그리고 별이나 은하 등 응집물질도 있습니다. 따라서 천체물리는 입자물리부터 응집물질물리까지 전체의 종합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지구물리는 많은 경우에 분자와 응집물질물리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연구 대상에 따른 물리학의 분야를 설명한 것인데, 물리학의 연구 방법, 곧 보편적인 이론 체계에 따라서 몇 가지로 나누기도 합니다. 물리학의 방법으로서 이론 체계를 일반적으로 역학(mechanics)이라고 합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동역학(dynamics)과 통계역학(statistical mechanics)이지요.

동역학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널리 알려진 것이 17세기 뉴턴의 고전역학입니다. 뉴턴 이후에도 라그랑주(Joseph-Louis Lagrange)나 해밀턴(William R. Hamilton) 등에 의해 완성도가 높아졌지만 기본적으로 뉴턴이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20세기에 와서 슈뢰딩거 및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등에 의해 만들어진 양자역학이 있지요. 이러한 동역학에서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전제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전통적으로 뉴턴 시대의 시간과 공간 개념에 따라 고전역학이 만들어졌고 양자역학도 마찬가지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한 시공간 개념에 따라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상대론적 (고전)역학(relativistic (classical) mechanics), 상대론적 양자역학(relativistic quantum mechanics)이 만들어져서 비상대론적(non-relativistic) 고전역학 또는 양자역학과 대비됩니다.

정리하면 물리학의 보편 이론 체계는 크게 동역학과 통계역학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동역학에는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두 가지 방법이 있고, 각각 상대성이론에 입각했는지 아닌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한편 통계역학은 동역학으로부터 구축되는데 고전역학에 기초를 둘 수도 있고 양자역학에 기초를 둘 수도 있으나 엄밀하게는 양자역학에 기초를 두어야 일관성이 있는 이론 체계를 얻을 수 있지요. 통계역학을 써서 다양한 현상을 기술하는 분야를 흔히 통계물리(statistical physics)라고 부릅니다.

이들과 조금 다른 개념의 방법으로 마당이론(field theory)이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공부하겠지만,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을 포함한 동역학에서는 대상을 알갱이라고 가정합니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알갱이동역학(particle dynamics)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예컨대 힘이 주어졌을 때 알갱이가 어떻게 운동하는지 다루지요. 이와 달리 대상을 알갱이 대신에 마당으로 상정하고 이론을 전개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마당이론이라고 부르는데, 알갱이동역학에서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구분과 마찬가지로 고전마당이론(classical field theory), 양자마당이론(quantum field theory)으로 구분합니다. 흥미롭게도 마당이론은 통계역학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관련을 지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설명하지요.

물리학의 범위

물리학에서 다루는 대상을 여러 가지 눈금으로 살펴보기로 하지요. 먼저 거리 혹은 길이의 눈금으로 볼까요. 그림 1에서 제일 짧은 것을 10-20부터 생각해서 10-10, 100이 되고, 더 커지면 1010, 1020, 1030까지 생각할까요? 이른바 로그 눈금(logarithmic scale)으로 나타내었고 단위는 미터라고 합시다. 원자부터 시작하지요. 원자의 크기는 10-10 m 정도로 보통 옹스트롬(Å)이라고 부르죠. 10-9을 나노(nano)라고 부르니까 원자는 대략 0.1 nm 크기입니다. 그리고 10-15 m 정도에 원자핵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다루는 한계가 10-17m 정도인데, 원리적으로는 10-35 m 가량의 이른바 플랑크 길이(Planck length)가 이해의 한계로서 이보다 더 짧은 길이의 세계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 길이의 세계

10-6 m, 곧 1 μm 쯤에서 비로소 생명이 시작합니다. 여기에 박테리아가 있지요. 인간을 비롯한 많은 생명체가 100 = 1 m 정도 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 크기라 할 수 있겠네요.

10-7 m 정도에 지구의 크기가 있고, 1011 m 부근에 지구와 해 사이의 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1016 m 정도가 1광년입니다. 1초에 30만 km를 가는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지요. 그러면 안드로메다 은하는 어디쯤 있을까요? 지구로부터 대략 2백만 광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밤하늘에서 2백만 년 전의 안드로메다를 보는 겁니다. 지금은 없을지도 모르지요. 그 다음에 1026 m 쯤에 이른바 퀘이사quasar라고 부르는 게 있습니다. 인류가 알고 있는 가장 멀리 있는 천체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관측하는 현재 우주의 크기라 할 수 있지요.

결국 물리학에서 다루는 건 10-35 m 에서 1026 m 까지라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왼쪽 부분을 주로 다루는 게 입자물리고, 다음에 핵물리, 그리고 원자분자물리, 일상세계를 중심으로 해서 응집물질물리지요. 더 큰 오른쪽으로 가면 주로 천체물리가 됩니다. 물리학자들은 이를 가지고 극소에서 극대까지 다 다룬다고 말합니다.
▲ 시간의 세계

시간의 눈금으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아래 그림에 10-40 부터 1030 까지 표시해 놓았습니다. 단위는 초(s)입니다. 현재 원리적으로 이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가장 짧은 시간은 이른바 플랑크 시간(Planck time)으로 10-43 s 입니다. 반면에 10-15 s, 곧 1 fs 정도가 현재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입니다.

지수를 나타내는 접두사를 잠깐 정리해볼까요. 103 이 킬로kilo, 106 이 메가Mega, 109 이 기가Giga, 1012 이 테라Tera입니다. 일상에서 쓰는 말로 thousand, million, billion, trillion에 해당합니다. 그 다음으로 페타peta, 엑사exa, 제타zetta, 요타yotta까지 있지만 많이 쓰이지는 않습니다. 작은 쪽으로 가면 10-3 이 밀리milli, 10-6 이 마이크로micro, 10-9 은 나노nano, 10-12 이 피코pico, 10-15 이 펨토femto, 그리고 10-18 이 아토atto지요. 단위에 붙여서 쓸 때에는 머리글자만 씁니다. 예를 들어 그램, 볼트, 미터, 초에 붙여서 kg, GV, mm, ps처럼 씁니다. 다만 마이크로는 밀리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그리스 문자 μ를 쓰지요.

아무튼 서양에서는 지수가 3, 곧 103 = 1000배씩 올라갑니다. 말이 나온 김에 동양에서는 어떻게 부르는지 볼까요. 만(104), 억(108), 조(1012), 경(1016), 해(1020) 등으로 지수가 4씩 올라갑니다. 그래서 큰 수를 쓸 때 네 자리마다 쉼표를 찍어야 하는데 서양을 따라 세 자리마다 찍으니 읽기에 불편하지요. 서양에서보다 큰 수의 개념이 더 발달해서 극(1048)까지 있고, 불교에서는 이보다도 큰 수로 불가사의(1060), 무량대수(1064)까지 있습니다.

시간 눈금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1020보다 조금 짧은 데에 우주의 나이가 있습니다. 대략 1백 37억 년인데 우주에서 이것보다 긴 시간은 있을 수 없지요. 그러니 물리학에서는 10-43 s 의 '찰나'로부터 1020 s 의 '영원무궁'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길이의 눈금에서와 비슷하게 짧은 시간 쪽은 입자물리가 다루고 핵물리를 거쳐서 10-15 s 쯤부터는 원자분자물리에 해당합니다. 10-9 s 쯤부터는 응집물질물리, 그리고 긴 시간 쪽으로 가면 물론 천체물리의 영역이 되지요.

이번에는 에너지로 따져 볼까요? 10-5부터 해서 100, 105, 1010, 이런 식으로 나가지요. 단위는 전자볼트(eV)를 쓸 겁니다. 처음 보는 학생들도 있죠? 전자볼트라는 단위는 전자 하나를 1 볼트의 전압으로 가속시켜 줄 때 가지게 되는 에너지를 말합니다. 전기량의 단위는 쿨롱Coulomb(C)이지요. 전자가 지닌 전기량을 기본전하(elementary charge)라 하는데 1.6×10-19 C 정도이므로 전자볼트는 널리 쓰이는 주울(J; Joule)이라는 단위와 1 eV ≈ 1.6×10-19 J 의 관계가 있습니다.

작은 에너지부터 1 eV 정도의 에너지까지가 응집물질물리에서 다루는 범위이고 그로부터 104 eV 쯤까지 원자물리에 해당합니다. 핵물리에서는 106 eV, 곧 MeV 부근을 다루고 입자물리는 그로부터 TeV 라는 높은 에너지까지도 다룹니다. 기본입자들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 크기가 이 정도지요. 재밌게도 입자물리는 길이가 짧은 (작은) 세계, 시간도 짧은 세계를 다루지만 에너지로는 제일 높은 걸 다룹니다. 물론 응집물질은 엄청나게 많은 수가 모여 있는 거니까 전체 에너지는 엄청나게 커지지만 여기서는 하나하나 구성원의 에너지를 말하는 건데, 이는 입자물리가 가장 큽니다. 이에 따라 입자물리를 흔히 고에너지물리(high-energy physics)라고도 부르지요.

마지막으로 밀도의 범위를 생각해보지요. 가장 작게는 10-25 부터 크게는 1015 까지 고려할 수 있겠습니다. 단위는 kg/m3 (또는 g/cm3)로, 1 m3 부피만큼의 질량이 몇 킬로그램인가를 나타내는 거지요.

가장 작은 10-22 은 바로 우주에 해당합니다. 우주의 평균밀도가 10-22 kg/m3 이지요. 우주 1 cm3 공간에는 대략 양성자 하나가 있을 따름입니다. 우주는 참으로 비어 있단 얘기지요. 물을 비롯한 보통의 응집물질은 103 부근에 있습니다. 109 이라면 엄청난 거죠. 불과 1 m3 의 부피가 109 kg 에 해당하니 손톱만큼의 양이 1 톤 정도로 무거워서 들 수 없습니다. 이는 하양잔별(white dwarf)에 해당합니다. 한자어로는 백색왜성이라고 부르지요. 밀도가 더 커서 1016 이나 그 이상에 있는 게 이른바 중성자별(neutron star)이라 부르는 거예요. 엄청나게 밀도가 큽니다. 손톱만큼의 양이 1천만 톤이 되기도 합니다. 상상하지 못할 만큼 엄청나지요. 그런가 하면, 1018 이상에는 이른바 검정구멍(black hole)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물리학은 범위가 실로 넓습니다. 여러 가지 눈금에서 가장 작은 것, 이른바 극소부터 가장 큰 것, 극대까지 모두 다룹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탐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주 화, 목, 금 연재)

* 이 연재기사는 지난 2008년 12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라는 제목의 책으로(책갈피 출판사)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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