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불공정근절 연석회의 출범식에 참석한 박연숙(여) 씨가 말했다. 박 씨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CU는 '전문가 말을 믿어라. 평균 일매출이 190만 원이다'라고 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박 씨는 현재 600만 원이 없어 가게를 접지도 못한 채 울며 겨자 먹기로 운영 중이다.
박 씨처럼 대기업과 계약을 맺고 있는 자영업자(가맹점사업자, 중소기업주, 유통대기업 입점상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기업불공정근절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가 발족했다. 연석회의는 1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앞에서 공식 출범을 선언했다.
연석회의 측은 △허위·과장정보 제공 법적 규제 강화 △가맹점 근접 출점 금지·영업지역 보장 △영업시간 강제 규정 무효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매출목표 강제부과 금지 △판매수수료율 인하 △불합리한 판촉 행사 및 리뉴얼 강제 금지 등을 요구했다.
▲ 대기업불공정근절 연석회의 출범식에 참가한 사람들. '나는 세븐일레븐과 계약한 것을 후회합니다', 'CU는 서민 착취하는 불공정 기업' 이라고 쓰인 펼침막이 눈에 띈다. ⓒ프레시안(남빛나라) |
"일매출 100만 원 넘는다더니 마이너스"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운영하고 있는 김금옥(여) 씨는 "아르바이트비와 집세를 빼도 월 20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개발팀 직원의 말에 개점을 결심했다. 대기업 롯데의 계열사 ㈜코리아세븐이 가맹본부라 더 믿음이 갔다고 김 씨는 말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월세에 아르바이트비를 제외하면 오히려 적자였다. 김 씨 역시 위의 박 씨처럼 위약금이 무서워 문을 닫을 수 없었다. 김 씨는 "공정위에 허위·과장 광고 혐의로 신고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됐다"고 밝혔다.
연석회의 측은 "본사직원은 일단 가맹점을 개설하도록 유도하는 사례가 많다"며 "가맹점주들은 본사 담당직원이 그와 같은 과장 광고를 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방법이 없어 사후적 법적 보호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현행 가맹사업법은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계약 체결 이전에 가맹본사가 가맹사업의 중요 내용을 담은 정보공개서를 가맹희망자에게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가맹본부가 정보공개서를 제시하지도 않은 채 가맹점주가 정보공개서를 확인·열람했다는 확인서만 받아가는 일도 있다"고 연석회의 측은 비판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부겸 민주통합당 선대본부장이 참석했다. 김 본부장은 "정말 사람이 죽어간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결국 이렇게 하다가 덩치 큰 재벌 빼고 다 죽게 생겼으니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라며 "가맹점업체를 호구로 삼는 이런 행위를 막기 위해 (문재인 후보가) 정확하게 해내겠다"고 밝혔다.
한편 참여연대는 BGF리테일(CU 운영)과 코리아세븐을 각각 10월 23일, 12월 4일에 가맹사업법 위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한 바 있다.
동일 브랜드 판매자끼리 무한경쟁…"영업지역 보호하라"
대기업의 무분별한 프랜차이즈 확장 때문에 동일 브랜드의 가맹점들이 지나치게 근접해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지난 7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체 프랜차이즈 가맹점(30개 이상의 가맹점을 보유한 브랜드)의 77.9%가 영업지역을 보호하고 있지 않았다.
특히 프랜차이즈 카페의 난립이 심각했다. 프랜차이즈 카페의 경우 엔제리너스 매장의 30.7%가 500미터 내의 인근에 가맹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카페베네는 28.8%, 투썸플레이스가 22.3%, 탐앤탐스는 20.5%가 이에 해당됐다.
이에 따라 지난 1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존 가맹점에서 반경 500미터 이내에는 커피프랜차이즈 신규점포 출점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점포 간 거리의 근접함뿐 아니라, 가맹사업자들이 동일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대기업 유통망과 경쟁해야 하는 것도 문제로 떠올랐다.
이규현 정관장 가맹점협의회 회장은 "가맹사업자들에게 공급하는 제품을 백화점, 대형마트, 홈쇼핑, 방문판매, 편의점, 인터넷 쇼핑 등 다양한 유통 방법으로 똑같이 공급하고 있다"며 "가맹사업을 한다고 (점주를) 모집해놓고 온갖 유통망에 물건을 공급하는 부도덕한 기업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비판했다.
정관장은 심지어 프랜차이즈 본사까지 나서 가맹점들과 가격경쟁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정관장은 한국인삼공사가 운영한다. 최근 한국인삼공사가 본사 제품을 직접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며, 가맹점의 판매가보다 더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고 나선 것. 이에 새로운 유형의 '영업지역 침해'라는 논란이 일어났다.
연석회의 측은 "(영업지역 비보호는) 근접출점 때문에 매출이 확연하게 줄어들게 되는 종전 가맹점의 손해를 강요하는 것이므로 불공정 거래행위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 대기업불공정근절 연석회의 출범식 모습. 이날 행사에 참석한 민병두·김부겸 민주통합당 의원(왼쪽부터)이 민주당의 노란 잠바를 입고 앉아있다. ⓒ프레시안(남빛나라) |
24시간 주7일 가게 운영…"24시간 영업 강제 금지하라"
명절을 제외하고는 쉬지 못하고 늘 24시간 동안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 점주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정관장을 운영 중인 박 모(남) 씨는 가맹본부가 툭하면 보내는 '최고장'이 두려워 일요일에 쉬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다.
박 씨는 "복불복이라, 일요일에 쉰다고 무조건 최고장이 오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재수 없는 사람은 일요일 딱 하루 가게 문을 닫자마자 본부가 보낸 최고장을 받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에서 CU를 운영하다 경영난으로 폐점한 김영현(남) 씨는 "24시간 영업을 하지 않으면 위약사유였다. 위약금은 1년 점포매출 이익의 35%나 됐다"고 밝혔다. 김 씨는 위약금을 낼 수 없는 처지라 심야영업을 감수했지만 손님은 거의 없었다.
연석회의 측의 말에 따르면, (구)훼미리마트의 경우 "을의 영업시간은 매일 24시간으로 하기로 하고, 영업시간의 단축은 갑에게 문서로 요청하여 사전에 승인을 득한 경우에 한합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경영주는 7-ELEVEN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본 계약이 존속하는 기간 동안 연중무휴, 1일 24시간 영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요구했다.
연석회의 측은 "새벽 1시부터 6시까지의 시간대에는 매출이 거의 없는 편의점들이 대부분이라 야간 편의점 운영을 위해 채용하는 야간 아르바이트생의 급여도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과도한 해지위약금이나 24시간 영업 강제 등을 금지해야 한다. 특히 가맹본사가 실제로 입게 될 손해추정액을 넘는 해지위약금은 금지해야 하며 24시간 영업을 가맹점주의 선택에 따라 할 수 있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와 관련, 연석회의 측은 "재벌 대기업들이 불공정거래를 하면 공정위만이 검찰에 고발할 수 있게 돼 있다. 피해 가맹점사업자나 중소기업 등도 가해자인 재벌 대기업을 상대로 법적대응을 직접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연석회의 측은 "앞으로 불공정 대기업에 맞서 전면 대응을 펼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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