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8일 조각 명단 발표를 강행하고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정부개편 협상이 난항을 겪음에 따라 방통위원회 설치 논의도 안갯속에 들어가게 됐다.
이명박 당선인이나 통합민주당 모두 방통위원회 설치 문제는 정부조직법 개편 협상에 밀려 후순위로 밀려 있는 상황. 이 당선인은 18일 조각 명단을 발표하면서 초대 방통위원장 등은 발표하지 않았고 최재성 원내부대표는 "큰 부처 관련 협상이 체결되면 방송위원회나 보훈처 등은 고집을 부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 설치 자체의 쟁점과 관계없이 정부조직법 협상 타결 여부에 따라 유야무야 처리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방통위 설치법안을 논의해온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는 지난 1일 전체회의에서 양 당의 입장차를 확인한 이후 '6인 회담'에 협상 권한을 넘기고 열리지 않고 있는 상태다.
방통특위 소속인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정부조직법이 늦어져도 방통위원회 설치법은 그간 방통특위에서 논의해온 것처럼 별도로 논의하면 된다"고 주장했지만 방통위 설치법안이 정부조직법 협상과 별도로 논의될 가능성은 극히 적어 보인다.
이재웅 한나라당 의원 측 관계자는 "정부조직법 방통특위에서 따로 처리할 수는 있어도 본회의에서 정부조직법과 함께 처리해야 방통위를 설립할 수 있다"면서 "정부조직법 처리 일정과 함께 굴러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방통위 설치 법안은 협상이 2월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예정되어 있는 24일을 넘기게 되면 4월 국회나 18대 국회가 구성된 이후인 6월 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법안 발의부터 다시 절차를 거치려면 18대 국회로 넘어가게 되면 방통위 설치 법안이 자동 폐기 되는만큼 10월 국회에나 처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이왕 늦은 거 독소조항 고치고 가라"
이에 따라 한나라당이 제출한 방통위원회 법안의 독소조항을 지적해온 언론·시민단체 등에서는 '6월 국회로 늦춰진다면 방통위원회 설치 논의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언론연대의 추혜선 사무처장은 "그간 방통위 설치를 촉구해왔던 것은 수신료 인상 법안이나 디지털전환법안 등 시청자 주권을 위한 방송현안을 함께 처리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며 "방통위 설치가 정치적 이유로 늦어진다면 그 시간 동안 근본적인 검토를 해야 할 것이며, 이와 별도로 이러한 현안은 시급히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그간 언론·시민단체들은 한나라당이 제출한 방통위 설치 법안에 대해 △방통위원회 대통령 직속기구화 문제 △방통위 위원 5인의 추천 비율 등을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아왔다. 한나라당 안은 방통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고 방통위 위원 5명 가운데 대통령이 2명, 나머지 3명을 국회가 추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언론연대의 양문석 사무총장은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행정 감독권 아래에 들어가는 방통위는 독립성을 상실할 수 있다"며 "대통령제 국가들 가운데 방송과 통신을 대통령 직속으로 둔 나라는 없다"고 비판했다.
언론연대는 △무소속 독립기구 △국회에서 위원 5인 추천 △위원회에서 위원장 호선 △인사·예산의 직무 독립성 보장 등을 요구한 안을 국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또 민주언론운동연합은 논평에서 위원 구성과 관련 "여당이 5인중 4인의 위원을 차지하는 길이 열린 것"이라며 "특정 정당 소속위원을 3인 이하로 두는 방안 등을 비롯해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으로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또 이들은 "위원의 직무수행과 관련 외부의 '부당한' 간섭과 지시를 받지 않는다"는 규정에 대해서도 "외부의 '어떠한' 지시나 간섭도 받지 아니한다고 명확하게 표기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은근 기대' 방송위, "근본적인 이야기부터"
한편 방통위 설치에 따라 통합 대상이 되는 방송위원회 노조에서는 방통위 논의가 4월 총선 이후로 미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한태선 방송위 노동조합위원장은 "그간 방통위원회 설치 논의가 지나치게 급박하게 진행돼 당면한 문제에 대응하기 급급했다"며 "만약 6월 국회에서 처리된다면 노조 쪽에서도 통합 기구의 필요성부터 시작해서 방통위의 독립성과 관련 공무직 전환, 대통령 직속화 등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방송위 노조는 정보통신부와의 통합 비율이나 직급 전환 등의 문제를 두고 방통위 설치로 정보통신부에 일방적으로 흡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해왔다.
행정자치부가 지난 11일 인수위원회에 직제 개편안을 보고하면서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원을 총 483명으로 방송위 출신 164명, 정통부 출신 319명으로 구성했다. 이에 더해 민간인 신분인 방송위 직원을 공무원 신분으로 전환하면서 일괄적으로 2직급 낮추는 방안을 제시해 방송위 노조의 반발을 샀다.
한편 이러한 구성에 대해서는 향후 방통위원회의 '방향성'과 관련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방송-통신정책을 산업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징표가 아니냐는 것. 방송위 관계자는 "결국 통신분야의 인력이 방통위의 고위직을 차지하는 상황으로 나타나지 않겠느냐"며 "방송업무의 고유성과 독립성이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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