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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이반', 그리고 '헨젤과 그레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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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이반', 그리고 '헨젤과 그레텔'

김민웅의 세상읽기 <267> 동화 속에 담긴 비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나 민담, 또는 전설 가운데 그 내용 전개상 이건 좀 적절치 않다고 느껴질 만한 대목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러시아 민담 "바보 이반 이야기"와, 숲 속의 과자집이 나와 어린 아이들이 좋아하는 독일의 민담 "헨젤과 그레텔"이 그렇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내 유산 처리가 시작됐다. 이반의 두 형들은 전 재산을 자기들끼리 나눠 갖고는, 막내 이반에게는 비루먹은 나귀 한 마리만 주고 집에서 내쫓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라고 여기고 멸시했던 것이다. 그래도 이반은 군소리 없이, 그나마 나귀라도 한 마리 얻은 것을 고마워하면서 길을 나섰다.
  
  밤이 이슥해오자 춥고 배가 고팠다. 그런데 저 멀리 숲 속에서 무언가 반짝하고 빛나는 것이 보였다. 이반은 "아, 저게 뭘까?"하고 무척 신기해하면서 나귀를 그리로 몰고 가려했다. 그러자 난데없이 나귀가 입을 열고 말하기를, "주인님, 괜한 일로 어려움을 당하지 마시고 우리 먼저 배나 채웁시다."하는 것 아닌가? 알고 보니 말하는 나귀였던 것이다. 이반은 잠시 놀랐으나 말이 통하는 놈이 하나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 "나귀야, 나를 저 빛나는 물체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다오" 하고 말했다. 나귀는 짐짓 머뭇거리다가 이반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황금 깃털과 이반, 그리고 왕의 욕망
  
  들판을 지나 산 중턱에 오르니, 그건 황금 깃털이었다. 이반은 깃털을 주워들고는 "아, 이런 것은 임금님에게 갖다 드려야 해."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귀는, "그러다가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모르니 그러지 맙시다."고 했지만 이반은 결국 임금님이 사는 궁으로 달려가 머리를 조아리고 이 황금 깃털을 바쳤다. 크게 기뻐한 임금님은 이반에게 상을 내리면서 "이반, 그런데 한 가지 명령을 내리겠네."하는 것이었다. 나귀는 아무도 보이지 않게 얼굴을 찡그렸지만, 이반은 으쓱거리며 귀를 쫑긋거렸다. 임금님에게 직접 명령을 받게 되다니 하고 이반은 자기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이 황금 깃털을 가진 황금 새를 잡아오도록 하게." 임금님의 목소리는 칼처럼 단호했고, 이반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내 심장이 얼어붙는 줄로 알았다. 그건 잡아오지 못하면 목숨이 없다, 하는 식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여차 저차해서 나귀의 도움으로 황금 새를 잡아온 이반에게 임금님은 또 다시 명령하기를, "저 멀리 바다 건너에 있는 섬에, 용이 지키고 있는 탑 꼭대기에 갇혀 있는 공주를 데리고 오너라."라고 하는 것이었다. 갈수록 태산이었지만, 이반은 임금님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다고 여기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여러 가지 변형이 있는 러시아의 민담 "바보 이반" 이야기는 그 결말을 다음과 같이 보여준다. 이반이 구해온 아름다운 공주를 보고 왕은 청혼을 하고, 공주는 왕에게 말하기를 "좋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너무 늙고 뚱뚱해서 싫습니다."라며 자기가 약을 탄 펄펄 끓는 물속에 들어가면 멋진 청년이 되어서 나오게 된다고 역 제의를 한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이반에게 자기보다 먼저 그 끓는 물속에 들어가라고 명령한다. 이반이 실험의 대상이 된 셈이다.
  
  끓는 물속에 들어간 왕과 이반
  
  이반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 했지만 나귀가 이르기를 "주인님, 걱정 마세요. 제가 꼬리를 그 끓는 물에 살짝 담그고 나면 얼른 들어가도록 하세요."라고 안심시켰다. 그 말을 듣고 끓는 물속에 들어간 이반은 어느 새 준수하고 기품 있는 청년이 되어 뜨겁기 짝이 없는 가마솥에서 태연히 나오는 것이 아닌가? 왕은 이 순간, 마음이 너무 급해져서 텀벙 하고 그 속에 들어갔지만, 영영 나오지 못하고 말았다.
  
  그 뒤, 이반과 공주는 결혼해서 그 왕국을 행복하고 평화롭게 잘 다스렸다, 라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이 민담의 뜻을 얼마나 확실하게 알고 성장하게 될까?
  
  이반은 특권층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러시아 민중의 모습이다. 그러고도 여전히 왕에 대한 신민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좋은 것은 우선 군주에게 바쳐야 하는 줄로 알 뿐만 아니라 부당한 요구에도 저항하지 못한다. 그렇게 민중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하지만, 비루먹은 나귀는 민중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면모인 지혜를 상징해주고 있다. 무지하나 역사의 고난을 겪어가면서 민중은 점차 자신의 존엄성을 깨우쳐 간다. 숲 속에서 본 황금 새 깃털과 황금 새를 이반이 찾아나서는 과정은, 왕이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이 사실은 누구의 손에 의해 마련된 것인지 일깨우고 있다.
  
  한편, 용이 지키는 탑에 갇힌 공주는 현실의 힘에 구속당한 자유의 정신이다. 이반이 그녀를 구해오면서 용과 싸우는 과정은 민중이 깨어나는 중요한 의식변화의 절차다. 이 모든 것의 완전한 결말은 그러나 아직 남아 있다. 공주가 약을 타고 펄펄 끓인 물은 새롭게 조성된 혁명적 정세이고 이반은 이 역사의 변혁적 과정에 투신하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고 역사의 주인이 된다. 여기서 나귀는 지혜만이 아니라 용기를 촉구하는 존재가 된다.
  
  과자집의 비밀
  
  탐욕과 권세를 부린 왕이 이 혁명의 뜨거움 속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마무리다. 나귀 한 마리를 가지고 집에서 내 쫓겼던 이반이 새로운 나라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은 모든 억압받는 민중의 꿈이 된다. 이반은 애초에 자기 권리 의식이 없는 "바보"였지만, 점차 가장 현명한 역사의 주역이 된다.
  
  "바보 이반" 이야기 못지않게, 혁명적 불꽃이 솟아오르는 이야기가 "헨젤과 그레텔"이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민담처럼 꾸며졌으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굴하지 않는 역사적 항쟁의 기운이 숨겨져 있다.
  
  헨젤과 그레텔은 빈곤으로 시달리고 있던 게르만 민중의 아들과 딸들이다. 이들은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숲으로 가고, 그 가는 길에 빵 껍질을 떨어뜨려 되돌아갈 길을 표시하지만 새들이 와서 그걸 먹어버리고 만다. 그들보다 더 가난하고 힘겨운 존재들이 있었던 셈이다.
  
  헨젤과 그레텔은 숲속을 방황하던 차에, 과자로 만든 집을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서 평생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게 해줄 것 같은 집 주인을 만난다. 하지만 그 주인은 알고 보니 마녀였고, 그동안 숲에서 하나 둘 실종되었던 아이들이 그 과자 집에서 과자와 파이로 만들어졌다는 비밀도 드러난다. 그레텔이 마녀의 의해 오븐에 구워지려는 찰라, 두 남매는 기지를 발휘해서 도리어 마녀를 불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화덕 속으로 밀어 넣는데 성공한다. 과자와 파이로 변했던 아이들은 다시 자기들 모습으로 되돌아오고, 숲은 평화를 되찾는다.
  
  헨젤과 그레텔의 승리
  
  이건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가난한 민중들에게 빵을 약속하면서 알록달록한 과자 집으로 현혹시키는 권력자들은, 사실은 그 민중들을 희생시켜 자기 배를 채우는 악마라는 것이다.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며 배를 곯던 민중은 처음에야 멋도 모르고 속지만, 마침내 자신을 지켜내는데 성공한다는 의미가 이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에 담겨 있다.
  
  결국, 권력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얼핏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민담처럼 구전되어왔지만 "바보 이반"이나, "헨젤과 그레텔" 모두 기만적인 현실을 맹타하면서 민중들의 주체적인 선택을 부각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현실에서도 우린, 바보처럼 빼앗기고 허허 들판에 내몰려도 권력의 부당한 처사에 제대로 항변하지 못하고, 배고픈 자에게 빵을 주겠다는 선전에 속아 자기를 희생시키는 자들을 권좌에 올려놓는 일을 반복할 수 있다. 그런 어리석음이 되풀이 되는 것을 막고 우리의 존엄과 희망을 지켜내는 힘을 일찍부터 기르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민담을 듣게 되는 아이들은 과연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 우리 어른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숙제가 아닐까?
  
  * <출판저널>에 동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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