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다스리던 성(城)을 지키기 어렵게 된
성주가 있었습니다.
그는 가까운 다른 나라에 사신을 보내
자기가 다스리던 성을 바치고 항복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제안을 받은 가까운 나라의 왕이
신하들을 모아 놓고 의견을 물었습니다.
아무런 명분도 없이 이득을 보면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왕의 신뢰를 받던 귀족 하나가 나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영토를 확장할 기회라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왕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항복한 성을 자기 나라 땅의 일부로 만들었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원래부터 그 성을 노리던 나라에서
대규모의 군대를 보냈고
자연히 큰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 전투에서
쉽게 성을 차지하려던 나라의 군대는 크게 패해서
40만이나 되는 군사를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중국의 전국(戰國)시대 때
진(秦)나라가 한(韓)나라를 공격하자
한나라의 상당성(上黨城)을 지키고 있던
풍정(馮亭)이라는 성주가
이웃한 조(趙)나라에 항복하면서 생긴 이야기입니다.
이 때 조나라에서
아무 대가도 없이 넓은 땅을 얻을 기회라며
왕을 설득했던 사람은
전국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뛰어난 네 사람(전국사군) 중 하나였던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이었습니다.
결국 조승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조나라는 장평(長平)에서 진나라와 싸우게 되었고
그 싸움에 져서
40만 대군이 생매장 당하고 나라까지 위태로워지는
치욕을 겪게 되는데요.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이 일을 평하면서
'이익이 평원군의 지혜를 어둡게 했다', 즉
'이령지혼(利令智昏)'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마천이 아직 살아 있다면 아마도
'이익이 모든 사람들의 지혜를 눈멀게 했다.'고
말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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