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과학의 성격
과학은 인간의 활동이기 때문에, 과학자가 속한 과학자 사회의 영향도 받지만 일반 사회, 곧 일반인이 속한 전체 사회의 지배적 관념체계의 영향도 서로 주고받습니다. 이것을 시대정신이라고 표현하는데, 과학 활동이 시대정신과 서로 작용한다는 것을 지난 시간에 지적하였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17세기부터 21세기까지 어떻게 전개돼 왔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과학은 결국 인간의 활동입니다. 인간의 활동이니까 사회와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과학과 가치
이에 대해 이른바 가치(value)의 문제가 과학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생각해 봅시다. 두 가지 관점을 생각해 보지요. 먼저 과학의 목적이 자연을 이해하려는 것임을 고려합시다. 과학 활동이 자연현상의 객관적 탐구라면 당연히 보통 의미로 가치라는 것이 개입될 수 없을 겁니다. 따라서 적어도 제대로 된 과학 활동은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실제로 '자연현상을 객관적으로 탐구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가치도 여기에 개입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관점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자연과학은 인간이 자연을 해석하는 활동이라는 사실에서 봅니다. 해석하는 과정의 보편적 체계로서 이론은 결국 과학자가 만들어낸 창작물이고, 말하자면 우리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지 실재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자연 현상에 정말 어떤 이론이 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건 아니지요. 다시 말해서 이론은 인위적 구조물입니다. 이는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이고, 그것은 당연히 기존의 가치 체계, 가치 관념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요. 가치 관념 체계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자연 해석이 가치중립이 아니고 가치의존적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두 가지 견해가 다 존재할 수 있겠네요, 자연과학이 과연 가치중립이냐, 가치의존이냐에 대해서. 여러분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자연과학이 가치의존일 것 같아요, 가치중립일 것 같아요? 가치 의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 다음에 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있어요? 왜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손든 세 사람?
학생: 기술을 탐구하는 거니까요.
아, 기술을 탐구하는 거고, 거기에는 가치가 개입될 수 없다. 그럼 가치 의존적이라고 말한 학생 얘기해 봐요. 왜 가치의존적인가요?
학생: 제가 다른 과학 수업을 듣는데 그때 요즘엔 과학이 기술하고 연관을 가지고, 기술을 개발하는 건 기업이나 어떤 상업적인 힘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요즘의 과학은 뭐라 그럴까 뭔가 의도에 의해서 연구가 이뤄지기 때문에……
과학과 기술의 관련성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그런 면이 현대사회에서 두드러지니까? 그렇다면 만일 기술과의 관련이 없다면 과학 자체로서는 가치중립일 거라고 생각하나요?
학생: 중립이다 아니면 가치 의존이다 할 수 없지만 지금은 거의 가치 의존적일 거 같아요.
자연과학이 과연 가치중립인지 가치의존인지 하는 문제를, 다른 분야와 비교해 봅시다. 사회과학이나 예술, 인문학 등과 비교해 볼까요. 아마도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등을 가치중립이라고 말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누가 봐도 가치의존으로 보이지요. 그런데 자연과학은 적어도 그것보다는 가치중립적 요소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자연과학과 가치는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요. 브로노브스키(Jacob Bronowski)라는 과학사상가가 ≪과학과 인간 가치(Science and Human Values)≫라는 책에서 과학과 가치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했습니다. 그의 견해를 모두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관심 있는 학생은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번역도 되어 있지요. 과학과 가치에 대해 관련된 과학사적 문제가 많지만 교양강의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니 생략하고, 과학의 성격에 대한 것만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매주 화, 목, 금 연재)
* 이 연재기사는 지난 2008년 12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라는 제목의 책으로(책갈피 출판사)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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