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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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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7> 과학의 발전과 시대정신 <상>

3강 과학의 발전과 시대정신

지난 강의에서는 과학 활동이 시대정신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루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에는 고전물리학에서 현대물리학에 걸쳐 과학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시대정신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여러 물리학 이론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고전물리: 운동과 빛

고전물리학이란 간단히 말하면 뉴턴의 고전역학과 맥스웰(James C. Maxwell)의 전자기 이론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고전물리학의 두 축 중 하나는 역학, 곧 운동의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전자기 현상 및 빛의 이론이지요.

운동의 기술은 17세기에 뉴턴이 운동 법칙을 제안하면서 확립되었습니다. 식으로 나타내어 a = F/m의 관계는 힘이라는 원인에 의한 결과로서 운동이 변화한다는 인과관계가 명확합니다. 이는 17세기와 18세기에 유럽 사회의 이성주의 또는 합리론(rationalism)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을 듯합니다. 운동의 법칙을 에너지의 관점에서는 역학적 에너지 보존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에너지 보존 법칙을 확장하면서 에너지는 다양하게 형태를 바꾸는 신비로운 존재로 인식됩니다.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친 낭만주의(romanticism)와 나란히 간다고 여겨지네요.
▲ 뉴턴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은 19세기 중후반에 완성됐는데, 그 때 유럽이라면 무엇이 생각나나요? 19세기 후반 유럽은 주로 절대왕정 시대이었던가요? 이와 관련해서 앙시앙레짐(ancien regime)이라는 표현을 쓰죠.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시민 혁명, 부르주아 혁명이 있었고, 그 반동으로 이어진 절대왕정의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것은 결정론적인 사고에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고전물리학이 완성되었다는 말은 운동과 전기, 자기 현상 및 빛의 정체를 완전히 밝혔다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자연을 완벽하게 해석했다고 믿은 거죠. 그래서 그 당시 물리학자들은 "우리는 더는 할 일이 없다. 물리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얼 하면서 살아야 하나?"하는 걱정도 생겼겠지요.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정해집니다. 내가 공을 던지면 어디에 떨어질지 결정돼 있습니다. 처음에 어떤 속도로 어느 지점에서 던질 것인가만 정하면 어디에 떨어질지 완전히 결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공을 던지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일들이 원인이 주어지면 결과가 결정돼 있다는, 이른바 결정론(determinism)은 자연과학, 곧 물리학에서 출발했지만 궁극적으로 역사나 사회, 인간의 행동 자체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자연현상만 결정론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다양한 현상의 해석에도 결정론이 영향을 미친 거죠.

이런 전통에 입각한 경우로 널리 알려진 예가 마르크스(Karl Marx)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Marxism) 철학을 보면 놀랄 만큼 자연과학을 따르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자연과학적인 사고에서 출발한 거지요. 다음으로, 인간의 행동을 연구한 선구적인 사람으로 프로이드(Sigmund Freud)를 들 수 있습니다. 유명한 저서로 ≪꿈의 해석≫이 있지요. 프로이드는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를 연구했는데, 우리 의식과 관계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범주라고 생각했던 것까지도 자연과학적인 전제, 결정론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인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을 꼽으라면 거의 언제나 들어가는 사람이 마르크스와 프로이드, 그리고 아인슈타인을 들 수 있습니다. <타임(Time)> 잡지에서 20세기 100 년 동안 가장 중요한 사람을 뽑는데 아인슈타인이 선정됐죠. 정치가가 아닌 물리학자가 뽑혔다는 것은 참 인상적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마르크스와 프로이드도 자연과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르크스나 프로이드의 이론을 과학 이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물론 자연을 인문, 사회와 구분하여 한정시키면 이들은 자연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므로 자연과학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했던 과학적 사고라든가 과학적 구조라든가 하는 것들은 자연과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과학이 과학의 전형으로 대표적이기는 하지만 자연과학의 정의에서 '자연'을 '사회'로 바꾸면 사회과학(social science)이 되겠고, 따라서 사회현상을 탐구하는 학문도 '과학(science)'이라고 지칭하지요. 그러면 우리가 논의했던 과학의 여러 가지 성격에 비추어 볼 때, 마르크스나 프로이드의 이론을 과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마르크스주의를 강조하기 위해서 '역사과학'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들어봤어요? 북한에서는 머릿소리 되기(두음법칙)를 쓰지 않으니 '력사과학'이라고 부르죠. 아무튼 이러한 이론 체계들을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포퍼는 이에 대해 부정적이고 유사과학의 범주에 넣었지만 사실 판단 기준에 따라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현대물리: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이제 20세기로 들어가 볼까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고전물리학은 붕괴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정확하게 얘기하겠지만 붕괴했다는 말의 의미를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고전물리학이 붕괴한 이유는 자체 모순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전물리학이 붕괴하면서 새로운 물리학, 이른바 현대물리학이 등장했습니다. 고전물리학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옛 질서라고 할 부르주아 혁명, 앙시앙레짐 같은 것들이 함께 무너진 것입니다.

고전물리학이 붕괴하면서 새로운 과학 이론 체계가 생겨났는데 그 첫 번째가 상대성이론입니다. 여러분 지난 2005년이 무슨 해인지 알아요? 국제연합(UN)이 정한 '물리의 해'입니다. 왜 하필이면 물리의 해일까요? 이는 아인슈타인 100 주년 기념으로 정해졌습니다. 그런데 탄생 100 주년이 아니고, 논문 발표 100 주년 기념이죠. 1905년에 아인슈타인이 기념비적인 논문 세 편을 발표하였습니다. 유명한 상대성이론 뿐 아니라 쇠붙이에 빛을 쬐어서 전자를 내는 빛전자 효과(photoelectric effect), 물 같은 흐름체(fluid) 속에서 꽃가루 같은 알갱이가 보이는 브라운 운동(Brownian motion)에 대한 연구결과인데 이는 양자역학과 통계역학(statistical mechanics)도 포함해서 현대물리학의 지평을 연 매우 중요한 논문들입니다. 사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이 아니라 빛전자 효과 논문으로 노벨상을 받았지요. 어쨌거나 이러한 세 편의 논문을 모두 한 해에 발표했다니 너무 놀랍다고 하지 않을 수 없네요.
▲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은 시간이나 공간이라는 근본 개념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오류가 있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전통적인 사고에는 시간과 공간에 절대성이 부여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절대시간, 절대공간 등의 개념이 뉴턴의 고전역학 체계에 전제되어 있지요. 이에 반해서 상대성이론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서 상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핵무기와 핵발전을 비롯한 핵에너지는 바로 상대성이론에 의해 알게 되었지요. 핵폭탄 등을 둘러싼 문제들이나 우리가 쓰는 전기의 40퍼센트 정도가 핵발전에 의한 것임을 생각하면 상대성이론은 우리 일상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성이론이 현대 사상, 철학과 예술에 미친 지대한 영향이지요. 이에 따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아인슈타인이 선정되었지요.

여러분이 21세기에 살고 있고, 현대 사상과 삶에 대한 성찰에 진지하다면 상대성이론을 비롯한 현대 과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문·사회 계열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네요. 흔히 스스로 교양 있다고 뽐내는 사람들을 보면 철학이나 문학과 예술 등에 조예가 깊어 보입니다. 이를테면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와 괴테(Johann W. von Goethe), 플라톤(Plato)과 칸트(Immanuel Kant), 바흐와 베토벤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프로이드에 대한 얘기도 하지요. 대체로 마르크스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연과학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심지어 아는 것이 창피한 듯,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하거든요. 이상한 현상이지요. 인류의 삶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뉴턴과 맥스웰, 볼츠만(Ludwig Boltzmann)이 셰익스피어, 칸트, 베토벤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도스토예프스키(Feodor M. Dostoevski)나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피카소를 얘기한다면 아인슈타인이나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도 얘기해야 할 텐데 '고상한' 사람들을 보면 이에 대해 알기는커녕 아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앞서 소개한 스노우의 지적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더 나아가 '고상 절차'에서 인문학조차 없어졌고 사치와 천박함만 남은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얼마나 잘못돼 있는지 보여주는 겁니다.

물론 여러 이유로 자연과학이 다른 분야보다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에는 적어도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들은 과학에 대한 이해가 놀랄 만큼 깊습니다. 미국의 예를 들어 보지요. 미국이 일반적 교양의 수준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결코 낫다고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과학 지면에 나오는 과학 관련 기사를 보면 제가 봐도 놀랄 만큼 수준이 높습니다.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이 일간지 과학 기사로 나와요.

우리나라는 꿈도 꾸기 어렵죠. 우리나라 신문사를 보면 대부분 '과학부'는 따로 없는데, 전에는 '생활과학부'라고 하다가 요새는 'IT', '정보과학부'라고 하고 같이 끼워 놓았습니다. 아무리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사들을 봐도 과학을 정말로 전공한 전문기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신문에서 과학 관련 기사가 나온 것을 보면 대부분 과장과 왜곡, 때로는 허위로 차 있습니다. 몇 해 전에 떠들썩했던 줄기세포 보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사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다른 기사들도 얼마나 엉터리일지 짐작이 갑니다. 아무튼 외국과 비교해서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과학이 매우 잘못 인식되어 있는 듯하여 걱정스럽습니다.

다른 얘기가 좀 길어졌네요. 상대성이론과 함께 현대 과학의 주된 토대가 양자역학인데, 당연히 이 두 가지 이론체계가 무엇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세부적인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하는 정신이 무엇인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양자역학의 중요한 전갈은 이런 겁니다. '측정'이 과학에서 중요하다는 얘기를 했었죠. 이론체계는 인간이 만든 것이고 우리 머릿속에만 있습니다. 순전히 인간의 창작물에 불과하지요. 이는 예술품을 만드는 것과 똑같은 것인데 과학으로 기능하려면 우리의 감각 경험에 의한 현실세계와 연결이 되어야 하지요. 현실세계와 연결하는 것을 뭐라고 했었죠? 운동의 법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그것을 자연에 내재하는 법칙으로 인식합니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론의 실재성은 없지만,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다른 의미의 실재성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강조했듯이 관측을 통해 연결되기 때문이지요. 자연현상을 해석할 때, 우리가 구성한 이론체계에 실재성을 부여하는 것은 순전히 관측에 의한 것이므로 측정이 매우 핵심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고전적인 생각, 고전물리학에 비해서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이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기본 전제 자체를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이론 구조에 대해 배운 기억이 나나요? 개념이 있고 진술이 있지요. 개념은 이론의 출발점인데 상대성이론은 시간, 공간 등 개념 자체의 의미를 바꾸어 버렸습니다.

한편 양자역학의 경우는 어떨까요? 이론이 있고 현실세계가 있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 측정이라고 단순히 말했지만, 측정이 현실세계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핵심 내용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식하려 할 때 그 대상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식하려 한다는 것은 측정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필연적으로 대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본질적으로 피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인간의 능력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자연의 본성 때문에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기본 사고이지요. 그러니까 결국 대상이라는 것이 우리의 인식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겁니다.

비유하자면 분필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는 내가 분필을 유심히 관찰하느냐 그러지 않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겁니다. 아인슈타인은 스스로 양자역학의 정립에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지만, 아무튼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두 가지가 현대물리학의 핵심적인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 두 가지는 현대인의 삶에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을 응용해서 얻은 이른바 첨단기술―우스운 용어지만―의 핵심은 대부분 이 둘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즐겨 쓰는 휴대전화, 컴퓨터 등 전자기술도 양자역학에서 출발했고, 떠들썩했던 배아복제, 유전자 조작 식품 등 유전공학 기술도 양자역학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상당 부분, 그리고 북한에서 성공했는지 아닌지 떠들던 핵폭탄은 모두 핵분열 반응을 이용한 것인데 결국 상대성이론에서 나온 것이지요.

(매주 화, 목, 금 연재)

* 이 연재기사는 지난 2008년 12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라는 제목의 책으로(책갈피 출판사)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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