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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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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려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한반도브리핑 <80> '핵폐기 이후' 아닌 '핵폐기 자체'에 관심 가져라

이명박 정부 출범을 위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이 중반을 넘어섰다. 정부조직 개편을 비롯해 인수위가 쏟아내는 다양한 정책들을 지켜보면서 향후 이명박 정부의 기조와 방향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바, 그간의 인수위 활동과 이명박 당선인의 발언 및 행보는 애초의 기대와 달리 적지 않은 불안감과 우려를 낳고 있다.

무엇보다 이명박 당선인의 리더십이 지나치게 결과와 효율성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 차기 정부 국정운영에 불안감을 갖게 한다. 인수위가 고생해 만든 보고서를 한 두 시간이면 쓸 수 있는 거라며 질책하는 이명박 당선인의 모습은 단기적 이윤을 추구하는 효율성 위주의 기업 CEO에게 적합할 수는 있어도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질 대통령으로서는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공무원이 시대의 걸림돌이라는 당선인의 발언은 자신의 국정운영의 동반자인 공무원도 민간기업의 회사원으로 착각하고 있는 데서 연유한다.

정부조직 개편안을 직접 주도한 이명박 당선인의 머리 속에는 지금 당장 효율성이 없어 보이는 부처는 과감히 폐지하거나 통폐합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통일부의 폐지는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쓸데없어 보이기 때문에 나온 결정이다.
▲ 지난해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 시절 판문점을 방문했던 이명박 당선인 ⓒ연합뉴스

폐지하기로 한 여성가족부와 해양수산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등도 국가적 관점에서 지금의 성과보다는 먼 미래를 위한 장기적 투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당장의 결과와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건설회사 CEO에게 미래를 보고 준비하고 투자하는 정부 부처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한 것이다.

또한 21세기 인류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가치가 평화와 복지, 환경임에 대부분 동의할진대 유독 이명박 당선인의 머리 속엔 이와 정반대의 가치가 자리 잡고 있다. 평화 대신에 안보를 내세운 동맹 강조가 앞서고 있고, 시장에서의 열패자들을 위한 복지보다는 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이 우선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생태와 환경보다는 오히려 토목공사 중심의 건설과 개발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21세기의 새로운 국제 정치경제 환경에서 한국이 생존하고 번영하는 데 과거지향적인 건설회사 리더십, 현장감독 리더십은 분명 퇴행적이다.

국가의 미래 외면하는 이명박 당선인

당장의 결과와 효율성 그리고 개발 중심의 경제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는 이명박 당선인에게 외교·안보·대북 정책은 그래서 별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다. 외교·안보·대북 정책은 상대적으로 장기적인 결과를 겨냥하고 국가의 미래 가치를 지향하며 민족의 비전을 구상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심도 없고 정책에서도 후순위로 밀려 있는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대북 정책의 방향을 굳이 찾아보자면 과거 야당 시절부터 익숙한 원칙들이 대부분이다. 한미동맹을 우선하고 북핵 폐기를 우선하며 상호주의를 강화한다는 구호성 원칙들에는 이명박 당선인의 확고한 의지가 있어 보인다. 대북 포용정책을 실패한 정책으로 규정하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정치적 반사이익을 챙겼던 한나라당의 야당 시절 주장과 구호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야당 시절의 주장을 대북 정책의 방향으로 삼을 경우 구호와 슬로건은 있을지언정 현실적 해법은 존재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야당시절 반복해 외쳤던 주장과 구호에 익숙한 채 구체적 해법과 접근방식 없이 정치적 입장을 내세워 남북관계를 대할 경우 긴장과 대결만 확대재생산 할 가능성이 높다.

한미동맹을 우선하고 북핵폐기를 상호주의 관점에서 남북관계와 연계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당장 남북관계는 소모적인 기싸움에 밀려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경색될 것이다.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 영역에서도 북한과의 주고받는 협상 없이 선(先)핵폐기 입장에 경도될 경우 오히려 북핵 문제는 진전이 아니라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주장과 원칙만 남을 뿐 실제적인 해결은 난망한 것이다.

비핵화가 목적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이명박 정부의 거의 유일한 대북정책인 '비핵·개방 3000'은 북한의 비핵화와 개방을 전제로 10년 내에 북한의 일인당 국민소득을 3000불로 만들어 주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경제중심의 결과우선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정책이 실제로 성공하려면 적지 않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대북정책의 목표로 동의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나그네에게 햇볕을 쬐어 옷을 벗게 하는 방식으로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의 북핵 정책이 북한의 비핵화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음도 잘 알려져 있다.

북한의 개방과 비핵화를 목표로 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북한을 비핵화시키고 개방으로 이끌 것인지에 관한 현실적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인의 비핵·개방 3000 구상에는 누구나 동의하는 목표만 있을 뿐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접근법과 해법이 빠져 있다.

비핵·개방 3000 구상은 실제 실현하기 힘든 목표를 내세워 놓고 이를 전제로 대북 지원과 경협을 연계시켜 놓음으로써 오히려 대북 화해협력을 뒤로 미뤄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의 정체 혹은 퇴보를 우려하게 한다. 핵폐기 단계에 따라 대북경협의 과정을 맞춰 놓았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북한의 핵폐기가 완료되지 않거나 북핵 문제에 진전이 없을 경우 비핵·개방 3000은 자동으로 남북관계의 속도조절을 하게 되어 있다.

최근 당선인이 밝힌 대북경협 4원칙의 맨 앞에 북핵 진전을 꼽고 있음은 만약 불능화와 핵신고 등 북핵문제에 진전이 없을 경우 남북경협은 중단되거나 보류되고 남북관계는 불가불 정체될 수밖에 없음을 확인해 준다.

'핵폐기 이후'가 아니라 '핵폐기를 위한' 남북관계가 되어야

이명박 당선인의 실용주의가 북한의 핵폐기 '이후' 대북 지원에서의 실용주의라면 그것은 사실상 임기 내에 실제 시작도 못 해보고 끝날 가능성이 많다. 오히려 그의 실용주의가 성과를 내려면 핵폐기 이후가 아니라 북한의 핵폐기를 '위한' 실용주의적 접근이어야 한다. 핵폐기를 전제조건으로 걸어 놓고 그 다음에 대대적인 대북 지원을 추진할 것이라는 실용이 아니라, 북한이 핵폐기에 나설 수 있도록 완고하고 강경한 입장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과 현실적 접근을 통해 노력한다는 실용이어야 하는 것이다.
▲ 지난달 31일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판문점 방문 모습 ⓒ연합뉴스

비핵·개방 3000 외에도 북한 인권을 대북 지원과 연계해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라는 주장이나 10.4정상선언의 합의사항을 범주화해 뒤로 미루거나 타당성 여부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 등은 향후 남북관계에서 대북 포용의 원칙 대신 엄격한 상호주의를 내세울 것임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서 상호주의가 관철되어 북한을 굴복시키기보다는 상호주의로 인해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부작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개성공단 확대는 뒤로 미루는 대신 한강 하구에 나들섬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은 이미 상당한 인프라를 구축해놓은 개성을 버리고 엄청난 초기 투자비용을 감수하면서 이명박 브랜드를 새로 만들어보겠다는 정치적 의도에 다름 아니다.

통일부를 폐지하기로 한 결정은 한미동맹 우선, 남북관계 경시라는 이명박 당선인의 대북정책 기조를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국제규범과 한미동맹을 우선하는 외교부에게 통일부 업무를 합치는 것은 남북관계의 독자적 영역을 무시하고 북한이라는 존재의 특수성과 복잡성을 배제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남북관계를 한미관계의 관점에서, 민족 문제를 동맹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분단국가가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별도의 전담부서를 두고 전략과 정책을 준비해야 함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명박 정부가 통일부를 폐지하려는 것은 사실상 헌법적 가치에 반한다는 점에서도 정당성이 없다.

국제사회와 거꾸로 가는 한국

통일부 폐지를 결정한 이명박 당선인의 대북정책 방향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북핵 문제 해결에서도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정부는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과 의미있는 협상 진전을 이루도록 설득하고 요구하는 한편, 남북관계를 통해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과의 협상에 적극 나서도록 설득하고 압박해야 한다.

남북관계라는 우리의 독자적 지렛대가 존재해야만 북미간 첨예한 대결 국면에서 한국의 역할 공간이 생기고 우리의 발언권이 행사되는 것이다. 2005년 북핵문제의 장기 교착 상태에서 우리가 6.17 면담을 통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6자회담 장으로 끌어낸 것은 남북관계의 독자성이 북핵 해결에 긍정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만약 외교부로 흡수통합되어 남북관계의 독자 영역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한미동맹 우선 원칙이 자리잡게 되면 향후 북핵 문제에서 우리는 미국만을 좇는 제한적인 역할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렇잖아도 지금 북핵문제는 불안한 우려와 함께 가변적 상황을 맞고 있다. 불능화와 핵 신고를 두고 아직도 북한과 미국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시 교착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북미를 비롯한 관련국들이 2.13합의의 판을 깨지 않은 채 사태 진전을 위해 적극적 의지를 보이고 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연두교서에서 북한에 대한 공세적 비난이나 핵문제에 대한 강력한 주문을 생략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2.13 프로세스에 대한 기대를 아직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제이 레프코위츠 북한인권 특사 등 네오콘 중심의 대북 강경론자들의 일부 언론플레이에도 불구하고 힐 차관보는 최근 한 강연에서 농축우라늄 문제 해결과 플루토늄 추출량 문제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여전히 북미간 신뢰에 기초한 사태 진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중국 역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부여받은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이 북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재자 역할에 나서고 전격적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한 점은 남북관계 진전과 북핵문제 해결이 동전의 앞뒤와 같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행보이다. 왕자루이 부장을 만난 김정일 위원장이 6자회담의 추진을 일관되게 지지하고 합의사항 이행에 변함이 없다고 밝힌 점 역시 지금의 교착 상황을 긍정적으로 타개하기 위한 북의 적극적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미국과 북한과 중국 모두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나름의 적극적 의지를 가지고 긍정적 역할을 모색하고 있는데 유독 한국만이 거꾸로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동안 북핵 문제에서 한국 정부는 어려운 때일수록 워싱턴과 평양과 북경을 오가며 사태진전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그런데 지금은 북핵 2단계에서 상황이 다소 꼬이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미국과 북한과 중국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데도 이명박 당선인과 차기 정부는 오히려 한미동맹을 우선으로 내세워 북핵 폐기를 위한 대북 압박에만 관심이 있다.

남북관계의 독자 영역을 존치시키고 이를 통해 북미간 우리의 역할과 발언권을 확보함으로써 북핵폐기를 위한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개입력을 확보해야 함에도 이명박 정부는 오래전에 용도 폐기된 선핵폐기에 매달려 한미동맹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도 간절히 북핵 해결을 원한다면 야당 시절의 구태의연한 입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10년만의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강박에서 비롯된 대북 포용 반대에 지나치게 집착해서도 안 된다. 남북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이명박 정부가 희망하는 북핵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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