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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학과 과학혁명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6> 과학적 지식 <하>

과학 활동의 성격

그러면 이제 주제를 바꾸어서 '과학 활동'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과학 활동의 주체는 당연히 인간입니다. 이는 의심의 여지없이 명백하지요. 그런데 인간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사는 게 아니라 현실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겁니다. 따라서 과학 활동은 현실 사회 속에서 일어납니다. 과학 활동을 하는 사람은 그가 속해 있는 사회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지요. 당연히 사회적·심리적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과학 활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과학자가 속해 있는 사회를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네요. 먼저 과학자들의 집단이 있습니다. 물리학자를 예로 들면 한국 물리학회와 같은 학회가 이에 해당하지요. 과학자들은 이런 '학문 사회'―일반적 '사회'와는 좀 다른 의미지만―의 지배적 관념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이를 처음으로 지적한 사람이 쿤(Thomas S. Kuhn)인데, 이런 과학자 사회의 지배적 관념 체계를 규범, 영어로는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합니다. 그 후에 패러다임이라는 말 자체가 유행어처럼 됐지요. 보통 패러다임은 "과학자 사회에서 공통으로 인정되고 신뢰받는 탐구의 전형"이라고 표현합니다만 사실 어려운 말입니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라는 책에서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썼는데 그 책에만도 패러다임이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혼동을 가져오고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지금도 경우에 따라 다른 뜻으로 쓰입니다.

그런데 과학자는 학문사회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당연히 전체 사회에도 속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물리학자들이 물리학회에만 속해 있는 것은 아니지요. 따라서 전체 사회의 관념 체계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이러한 전체 사회의 관념 체계를 '시대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물론 시대정신으로부터 영향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주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과학자 사회의 과학 활동에 의해서 시대정신이 변하기도 하고, 또한 시대정신에 의해 과학 활동이 영향을 받으면서 서로 주고받는 거지요.

쿤은 과학 활동의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의 견해를 간단히 소개하지요. 그는 과학 활동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습니다. 정상과학(normal science)과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이지요. 정상과학은 패러다임, 즉 규범이 주어져 있을 때 그 안에서 활동하는 겁니다. 반면에, 과학혁명은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거지요.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보통의 경우 자연과학을 주어진 규범에 따라 탐구하는데 그 규범 내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보았다고 합시다. 그런 것을 변칙(anomaly)이라고 부릅니다. 예컨대 관측을 통해서 실제 경험과 연결했더니 기존의 패러다임, 기존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얻어졌다고 합시다. 이러한 경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바로 "기존의 것이 틀렸으니 바꾸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보수성이 있기 때문에 기존의 것을 바로 버리지는 않고, "이것은 뭔가 비정상적이다"고 치부해 버립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변칙 또는 비정상성이 계속 축적되다 보면―더는 '예외적이고 잘못된 것'으로 치부해버릴 수 없게 됩니다. 기존의 패러다임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러면 패러다임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과학혁명이 일어납니다. 이 때 전환기, 곧 혁명기를 생각하면 과학의 발전은 연속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정상과학의 시기를 지나서 과학혁명이 일어나고, 다시 정상과학이 유지되는 등 단속적으로 이뤄집니다.

과학혁명을 통해 패러다임이 바뀌는 경우 전환기에는 두 가지 패러다임이 공존할 수 있습니다. 앞서 '할머니와 아가씨' 그림을 보면 두 가지(할머니, 아가씨) 관점이 모두 가능합니다. 이는 두 가지 패러다임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하나의 비유로 보여 주는 거지요. 할머니로 보는 관점이 옳고 아가씨로 보는 관점은 틀린다든가, 아니면 그 반대라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합니다.

전환기에서 공존할 수 있는 두 가지 패러다임은 모두 여러 현상을 그런대로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패러다임에서 변칙성이 많이 쌓이게 되면 그 패러다임은 타당하지 않다고 여겨지고, 따라서 버리고 다른 패러다임으로 바꾸게 되는 거지요. 이것이 과학 혁명이 일어나는 과정인데, 역사적으로 뉴턴의 고전역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라든가 또는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으로 교체되는 과정이 바로 전형적인 과학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주 화, 목, 금 연재)

* 이 연재기사는 지난 2008년 12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라는 제목의 책으로(책갈피 출판사)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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