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편적 이론체계를 만들어가려는 시도의 예로 대칭성을 배웠습니다. 물리학은 아름다움도 추구하는데 더 보편적인 이론체계라는 것도 아름다움의 범주로 생각할 수 있지요. 특히 자연현상을 해석할 때 대칭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앞에서 얘기했습니다. 자연현상은 기본적으로 물질이라는 실체에 의해 일어난다고 상정했지요. 물질은 그것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있고 그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있어서 여러 가지 자연현상을 일으킨다고 전제합니다. 다양한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구성원들―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을 '기본입자'라고 했습니다. 그런 기본입자에도 놀라운 대칭성이 있고,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에서도 놀라운 대칭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많은 경우에 대칭이 저절로 깨질 수 있습니다. 물질에서 대칭성이 깨지는 것을 "정돈됐다", "질서가 생겼다"고 표현합니다.
대칭성 깨짐(symmetry breaking)의 해석을 예로 들어서 보편적 이론체계를 어떻게 찾아나가는가 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려는 겁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물이 어는 현상이지요. 얼음이 온도가 높아지면 물이 되고 다시 온도가 낮아지면 얼음이 되는데, 물이나 얼음이나 모두 산소원자 하나가 수소원자 두개를 잡고 있는 물(H2O) 분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을 물 분자라고 생각합시다. 이 강의실에 열기가 가득하다면, 곧 온도가 높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모두들 일어나서 왔다 갔다 하겠지요. 그런 상태가 물입니다. 물론 온도가 더 높아지면 마구 뛰어 돌아다니고 난리가 날 겁니다. 그렇게 심하면 수증기가 되는 거지죠. 아무튼 여러분이 일어나서 돌아다닌다면 강의실 어느 곳이나 똑같은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열기가 식어서, 곧 온도가 낮아지고 꽁꽁 얼어붙어서 여러분이 자리에 질서정연하게 줄 맞춰 앉아 있다면 정돈된 상태인 겁니다. 이렇게 정돈된 상태가 얼음입니다.
물은 질서가 없는 것이고, 정돈되어 질서가 생긴 상태가 얼음인데 이를 두고 "대칭성이 깨졌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강의실에서 마구 돌아다닌다면 강의실의 어느 지점을 보아도 차이가 없지요. 그러나 줄을 맞춰 앉아 있으면 앉아 있는 자리와 자리 사이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그 지점(자리와 자리 사이)은 여러분이 앉아 있는 지점과 다릅니다. 그러니까 모든 지점이 똑같지는 않다는 겁니다. '자리옮김의 대칭'이 깨져 있는 거죠. 뿐만 아니라 모든 방향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바로 앞 사람이 앉아 있는 방향과 대각선 방향은 다르고, 따라서 방향도 대칭이 깨져 있습니다. 그래서 얼음이 되면 대칭이 깨졌다고 말합니다. 대칭이 있으면 뭔가 질서정연할 것 같고 대칭이 깨지면 질서가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대칭이 있는 것이 질서가 없는 것이고, 대칭이 깨지면 정돈되어서 질서가 생기는 겁니다. 혼동해서 거꾸로 생각하기 쉽죠.
아무튼 물이 얼음으로 되는 것처럼 이른바 상(phase)이 바뀌는 현상을 상전이(phase transition)라고 부르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물질의 구성원들이 정돈되어 질서가 생기는 현상이며, 수학적으로 대칭의 깨짐에 해당합니다. 이 같은 현상은 액체가 고체로 되는 것, 즉 어는 현상뿐만 아니라 자연에 매우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널리 알려진 예로 자석을 들 수 있지요. 영구자석은 강자성(ferromagnetism)을 보이는데 이를 불에 넣으면 강자성을 잃어버리고 보통의 쇠붙이로 바뀌게 됩니다. 온도가 낮을 때는 자석이었다가 온도가 높아지면 보통의 쇠붙이가 되는데, 보통의 쇠붙이는 질서가 없는 것이고 자석은 질서가 있는 겁니다. 말하자면 철(Fe) 원자 (정확하게 말하면 원자의 스핀spin)들이 질서 있게 정돈되어 있는 것이 자석 상태이고, 그렇지 않은 것이 보통의 쇠붙이 상태인 거죠. 또는 보통의 쇠붙이가 온도가 매우 낮을 때 초전도 상태가 되는 현상이라든지, 우주의 진화 과정에서 은하가 생겨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예로 우리의 두뇌에 정보를 저장해서 기억하거나 못하거나 하는 현상이나 디엔에이(DNA)에서도 상전이, 곧 대칭성 깨짐을 볼 수 있습니다. DNA는 보통 상태에서 이중나선 구조를 지니는데, 때로는 마치 지퍼가 물려 있다가 풀어지듯이 풀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보를 꺼내 단백질을 합성하려면 DNA가 풀려야 하는데 이것을 녹는다고 표현하지요. 이런 DNA 녹음(melting)도 대칭이 깨지는 현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항에 대해서 구성원들이 찬성과 반대 의견을 정할 때에 찬성이나 반대 중 어느 하나로 정해지는 경우도 대칭이 깨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 외에도 예를 얼마든지 더 들 수 있습니다.
다양한 현상들 하나하나를 보면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과학적 사실들, 곧 특정지식이지만 이런 것들을 다 묶어서 하나의 보편지식 체계를 만드는데, 대칭성이 깨진다는 의미에서 '상전이'라는 현상으로 기술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더 보편적인 이론 체계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이런 것들을 추구해가는 과정입니다. 여기에 대칭, 엔트로피와 정보(information), 협동성(cooperativity) 같은 여러 가지 개념이 결부되어 있지요.
직접적인 예로 시각 인지(visual perception)를 한 번 봅시다. 그림 1의 왼쪽은 무엇으로 보이나요? 계단으로 보이나요? 대부분 계단으로 보일 겁니다. 그러면 발상의 전환을 한 번 해봅시다. 혹시 이것이 계단이 아니라 천장으로 보이는 사람 있는지요? 이것이 계단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림의 오른쪽이 우리에게 가까운 쪽이고 왼쪽은 먼 쪽이라고 생각해서인데, 그것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곧 왼쪽이 우리에게 가까운 쪽이고 오른쪽이 먼 쪽이라면 이것은 천장으로 보일 수 있을 겁니다. 혹시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 있나요? 일단 이것을 천장으로 보면 그 후로는 계속 천장으로 보입니다. 이 같이 계단과 천장 중 하나를 선택해서 보면 바로 대칭을 깨는 겁니다. 계단과 천장 두 가지로 대칭이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볼 때는 둘 중의 하나로만 보지요. 시각으로 인지하는 과정에서 대칭을 깨는 겁니다.
왼쪽: 슈뢰더의 계단, M. L. Prueitt, (Dover Publ. Inc., New York, 1975). 오른쪽: 아가씨와 노파, W. E. Hill (1915) |
다음으로 그림 1의 오른쪽은 무엇으로 보여요? 자세히 보는 것과 얼핏 보는 것이 다를 수 있지만, 나이 든 할머니로 보일 수 있습니다. 매부리코에 입이 좀 심술궂게 생기고 턱이 좀 긴데 연세가 많아서인지 눈이 좀 찌푸려져 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마귀할멈 같네요. 그렇게 보이는가 하면, 발상의 전환을 하면 예쁜 아가씨의 옆 뒤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긴 속눈썹과 코가 살짝 보이고 예쁜 턱이 있고 목걸이도 보입니다. 어떻게 보이나요? 아름다운 아가씨로 보이나요, 할머니로 보이나요? 아주 유명한 그림인데, 사실 두 가지가 그리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늙으면 이렇게 노파로 바뀌는 겁니다.
그림 2는 유명한 고흐의 ≪오베르의 교회 L'église d'Auvers-sur-Oise≫입니다. 예배당을 그린 건데, 이 그림에서 어떤 느낌이 들어요? 과연 고흐답다는 느낌이 들어요? 자기 귀도 자르고 이상한 일을 많이 했지요. 그렇지만 사실 고흐는 자기 귀 하나 자른 거니까 눈을 찌른 사람에 비하면 별 것 아니지요. 화가가 그림 그리는 데는 귀가 없어도 큰 문제는 없잖아요?
그런데 자기 눈을 찔러버린 화가도 있습니다. 누군지 모르나요? 최북이라고, 우리나라 조선 시대의 화가입니다. 저와 성(姓)이 같네요, 저의 선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분의 호가 재미있는데, '칠칠(七七)'입니다. 이름 '북'이 북녘 북(北) 자입니다. 오른 쪽에 있는 비수 비(匕)가 일곱 칠(七)과 비슷하죠. 왼쪽에 있는 것도 뒤집어보면 비슷해요. 그래서 '칠칠'이라고 했다는데, 자기 눈을 찔러서 애꾸가 됐습니다. 그 당시 양반들이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대한 저항의 의미로 그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고흐는 알면서 우리나라 사람인 최북은 모른다면 우리 교육에 문제가 좀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무튼 고흐의 이 예배당 그림을 보면 역동적인 느낌이 들지 않아요?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 말예요. 나쁘게 말하면 유령의 집 같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역동적인 느낌이 드는 이유는 바로 앞에 말했던 "아가씨냐, 할머니냐" 또는 "계단이냐, 천장이냐" 하는 문제가 이 그림 곳곳마다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사이에 대칭성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를 선택해서 봤는데, 때로는 하나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를 왔다 갔다 합니다. 두 가지가 왔다 갔다 하니까 당연히 역동적으로 보이죠. 그래서 두 가지 상태를 오가는 '리듬'이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이번 것은 보는 게 아니라 듣는 겁니다. 그림 3은 바흐의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partita≫ 3번의 악보인데, 이 음악은 희한하게 들을 수 있어요. 두 번째, 여섯 번째, 열 번째 마디마다 보면 높은 쪽 음이 있고 낮은 쪽 음이 있는데, 1, 5, 9번 음과 2, 6, 10번 음 중에서 어느 쪽 하나를 선택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청각 인식에서 대칭성이 깨지는 예라고 할 수 있지요.
청각 인식의 재미있는 예로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어떤 두 연인이 있어요. 캠퍼스 커플일지도 모르죠. 예쁜 여학생과 남학생이 있는데, 겨울에 눈이 많이 오니까 여학생이 "스키 타고 싶다. 스키장 가자"고 자꾸 '스키'라는 말을 반복했지요. 그러자 남학생이 잘못 알아듣고 이상한 짓을 하려고 했던 건데, 여러분 '스키'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해 보세요. "스키스키스키스키스키스키" 반복하면 어떻게 들려요? '스키'라고 들을 수도 있지만, 거꾸로 '키스'라고 들릴 수도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은 똑같이 말하고 있지만 어떻게 선택해서 듣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겁니다. 그런 것이 청각 인식에서 대칭성을 깨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림 4를 볼까요. 맨 위의 왼쪽을 보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아저씨의 얼굴이죠. 그런데 오른쪽으로 쭉 가다보면 아저씨의 얼굴이 좀 이상하게 변하더니 갑자기 예쁜 몸매의 아가씨가 됩니다. 대체로 쭉 가다보면 아저씨의 얼굴이 오른쪽 점선 부근에서 아가씨로 바뀌어요. 그런데 거꾸로 오른쪽부터 보세요. 아가씨죠? 왼쪽으로 가보면 아가씨가 왼쪽 점선쯤에서 아저씨로 바뀌지요. 어느 쪽으로 가느냐에 따라서 바뀌는 위치가 달라요. 아가씨냐 아저씨냐 선택을 하니까 대칭이 깨지는데 깨지는 지점은 어디서 출발해서 가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좀 어려운 개념이지만 이러한 현상을 겪음(hysteresis)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아래쪽으로 내려가 보면 그림이 자세히 그려지지 않았네요. 엉성하게 세부를 덜 그리면 아저씨에서 아가씨로 바뀌는 지점 사이의 부분이 작아져버려요. 그리고 아예 세부를 안 그리면 아저씨와 아가씨의 차이가 없어집니다. 대칭이 남아있는 거예요. 대칭이 깨지지 않았으니 질서가 없는 겁니다. 자세히 그린 것은 질서가 있는 것이고 대칭이 깨진 거죠. 아저씨 아니면 아가씨로 선택이 되어있으니까요. 이것은 물이 얼음으로 되는 현상과 같은 틀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보편적인 이론 체계에 담아낼 수 있는 거죠. 물이 어는 현상이나 위와 같이 시각 인지의 변화, 우리가 기억을 하느냐 못하느냐 등, 얼른 보면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 현상들을 결국 하나의 보편적인 이론체계로 묶어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림 5는 네덜란드 태생의 판화가 에셔(Maurice.C. Escher)의 ≪하늘과 물 Sky and Water≫이 있습니다. 아래쪽을 보면 물고기들이 있지요. 그런데 위로 쭉 가다보면 어디선가 물고기가 없어지면서 새로 바뀌네요. 거꾸로 위에서 출발해서 아래로 내려오면 새였다가 물고기로 바뀌는데, 아저씨-아가씨 그림과 마찬가지로, 어느 쪽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물고기에서 새로, 또는 새에서 물고기로 바뀌는 지점이 다릅니다. 에셔는 이런 것들을 참으로 놀랍게 표현했어요. 아무튼 대칭성 깨짐의 예로부터 보편지식이라는 이론의 의미를 이해했으면 합니다.
(매주 화, 목, 금 연재)
* 이 연재기사는 지난 2008년 12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라는 제목의 책으로(책갈피 출판사)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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