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무리 디스커션을 많이 해도 풀리 어그리(fully agree) 하지 못하면, 어떤 솔류션을 추즈(choose)할 건지가 에브리바디한테 클리어하지 못하게 되요. 오브 코스!, 시츄에이션을 심플하게 봐도 프라블럼이 투 머취(too much)이죠.
이게 컨트로버셜(controvertial)한 이슈이긴 하지만, 팩트를 먼저 리뷰해 보자구. 노우 매러 왓(No matter what), 우선 프라이어리티(priority)를 정하면 파이널 디시젼(final decision)이 훨씬 이지(easy)해지지 않을까요?
자꾸 열 내고 아규(argue)만 하지 말고 캄 다운(calm down)해서 포인트를 잘 섬머리 하면 모두 해피해지지 않겠어요?"
풀리 어그리 하지 못하면 파이널 디시젼이 어쩌구 저쩌꾸
혹 과장이 아닐까 하겠지만, 영어가 일상의 환경이 되어 있는 미국 동포 사회에서 흔히 듣게 되는 말투를 하나의 문단으로 모아본 것이다. 그 뜻이야 어렵지 않다.
"아무리 토론을 많이 해도 충분히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어떤 해결책을 선택할 것인지 모두에게 분명해지지 않는다. 물론 상황을 단순하게 봐도 문제가 많다.
이 문제가 논란거리이긴 하지만 사실관계를 먼저 점검해보자. 무슨 일이 있든, 먼저 우선순위를 정하면 최종 결정이 아주 쉬워질 것이다.
모두 감정적인 논쟁만 하지 말고 차분히 핵심을 잘 정리하면 웃는 낯으로 오늘의 회의를 잘 끝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영어가 한국어 문장을 점령해버릴 때, 한국어는 하나의 체계적인 말로서는 그 질서와 기능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렇다고 영어가 또 반듯하게 자기 구실을 하는 것도 아니다.
키케로와 라틴어
최근, 전 과목 영어 수업 논란이 불거졌다가 일단 예의주시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문가들이 영어교수방식을 지속적으로 개선해서 될 일이지, 자기 말로 하는 교육까지 전면적으로 포기하고 나설 일은 결코 아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서 영혼과 몸으로 배운 말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와 보다 깊고 넓게 만나도록 하는 일이 교육에서 방법론적 핵심이다. 외국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감정과 사고의 표현, 그 폭과 깊이는 좁고 얕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곳에서 무슨 진정한 지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리스어가 세계어의 위치를 차지하고 헬레니즘이 지배했던 기원전 1세기, 당대의 변론가요 문장가였던 로마의 키케로가 쓴 말과 글은 그리스어가 아니라 로마의 언어 라틴어였다. 모국어로 사고의 힘을 기르지 않는 곳에서 문명은 자기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자기 말을 푸대접하는 나라에서 교육의 수준은 언제나 갈팡질팡하다 말지 않을까?
* <메트로 서울>에 동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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