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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몰입 교육, 버마 군정의 실패 따라가나"

[버마이야기] ⑩ '몰입' 시켰더니 버마말도 못하더라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살고 있는 버마의 공식 언어는 인구가 가장 많은 버마족의 언어인 버마어이고, 제2의 언어는 영어다. 그 외의 다른 민족들은 자신의 민족 언어를 집에서 배울 수밖에 없다. 영어는 원래 중학교 때부터 가르치다가 1982년 이후에는 초등학교에서부터 가르치게 되었다.

또 86년부터는 고등학교에서 버마어, 역사, 지리학을 제외한 과목들을 영어로 가르치게 됐는데, 87년 이후 대학에서도 영어로 가르치게 되었다. 국제 교육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버마 군부는 말한다.

학자들의 비판에 따르면 그렇게 교육제도를 바꾼 후부터 학생들의 영어 수준은 더 떨어지게 되었다. 지나치게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서, 갑작스럽게 생긴 교육제도에 대한 교수와 교사들이 경험 부족, 그리고 학년 안에 교과서에 있는 많은 내용 모두를 가르쳐야하는 의무 등으로 교사와 학생들의 목표는 교과서를 끝까지 나가는 것이 되어버렸다.

대다수의 과목을 영어로 배우는 데다가 공부할 것이 많다 보니 버마 학생들은 국어인 버마어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학생들이 영어를 못할 뿐만 아니라 버마어 수준 또한 떨어지게 되었다.
▲ 버마 난민 캠프에서의 수업 장면 ⓒhttp://www.childsdream.org

학교를 군대로 만들고자 했던 군부

1988년 학생들이 주도한 버마의 8888민중항쟁 이후 군부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조직적으로 파괴했다. 버마 군부는 학교들의 교칙까지 간섭했으며 해방운동의 지도자이자, 아웅산 수지 여사의 아버지인 아웅산 같은 사람들과 관련되 역사를 배우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1992년부터 교수들을 위해 매년 1개월씩 연수 프로그램을 해왔는데, 그 내용은 친(親)군부 교육과 군대 훈련, 또 학생들의 활동을 감시하는 방법 등으로 채워져 있다.

초중고 교사들에게는 92년 이전부터 그 같은 연수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 때문을 받아들일 수 없어 학교를 떠난 교사들도 많았다. 그리고 많은 교사들은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눈과 입을 닫고 하나의 로봇처럼 살아오고 있다.

제일 큰 문제는 학생들이 교육제도를 비판하거나 학생 권리를 이야기를 하거나, 민주화를 요구하면 그때마다 군부가 해결하는 방법은 체포와 처형, 그리고 휴교라는 것이었다. 1988년 6월부터 2000년 7월까지 버마의 대학교들은 휴교와 개교를 반복했고 그러다 보니 실질적인 교육 기간은 매우 짧았다.

88년 6월~91년 4월 동안 대학교들은 폐쇄되었고, 91년 5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또 96년 12월부터 2000년 7월까지 다시 폐쇄되었다. 13년 동안 대학교가 문을 연 기간은 36개월에 불과하다. 폐쇄 당한 대학교 중 군부와 관계된 학교들은 없다.

2000년 7월에 대학교들은 다시 문을 열었는데, 시내에 있는 대부분의 대학교를 시골로 강제 이주시켰다. 91년 이후부터 교사들의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12시 정도 되고 있다. 교사들은 수업, 제출한 보고서를 검사 하는 것 외에도 학교 보안을 위해 경비까지 해줘야한다. 또한 대학 교칙을 군대식으로 만들어 상명하복으로 통치하는 후견인 제도를 시행하라는 요구까지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 교사는 20~50명의 학생을 관리해야한다.

이는 달리 말해 학생들이 자유와 인권, 민주화에 대해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하게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학생의 활동에 대해 제대로 보고하지 못한 경력이 있으면 그 교사도 자유와 인권, 민주화 활동을 한 학생과 마찬가지로 반국가사범으로 취급당한다. 또 학교에 대해 학생들이 말하는 애로사항이나 요청, 학생 권리에 대해 교사들이 학교 측에 보고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교사와 학생 사이에 오해들이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교과서 안에서만 높아지고 있는 교육 수준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힘을 쏟고,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교사들은 자신과 관계가 없는 곳에 시간과 힘을 많이 쓰게 되고 있다. 제자들에게 수학, 생물학을 영어로 가르치는 교사들은 연구할 기회가 거의 없고 교육 자재를 제대로 제공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교사들은 제자들이 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지 못해 제자들의 무시를 받고 있다. 수업을 같이 하고 있기는 하지만 학생과 교사 양쪽 모두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찾기 힘들다.

수업시간이라면 학생들과 교사가 해왔던 연구에 대한 토론을 통해 지식을 나눠야하는데, 아직도 버마의 대학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버마에서는 교사가 칠판에 분필로 쓰면서 하는 말을 조용히 듣고 따라서 메모하는 것이 유일한 공부방식이다. 연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도서관에 갈 일이 거의 없고, 도서관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도서관이 없다. 그나마 있는 도서관에는 책이 별로 없고 학교 도서관에서 학생이 책을 빌리는 문제도 만만치 않다.

버마 군부는 2005년 아동의 진학률이 97.58%라고 발표하지만, 유네스코의 2004년 버마 교육보고서에 따르면 아동의 45%는 초등학교 기초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버마에서는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제도가 있는데, 유니세프의 2000년 보고서에 따르면 군부의 교육에 대한 예산이 1.2%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동 한 명 당 예산이 28센트에 불과하다.

나라를 장기간동안 통치해온 버마 군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통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학자들이 비판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과서들의 내용 수준을 높게 올리는데, 교육 자제를 제대로 제공해 주지 않고, 연구할 수 있는 기회와 지원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버마의 교육 수준은 교과서 안에서만 높아지고 있다. 버마 군부는 자신들의 목표가 성공한 것으로 봤다.

학생과 교사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바쁘게 지냈으며, 인권과 평화의 가치에 관심을 둘 틈이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버마 학생들은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배우고 지키고 있다. 버마의 88년 8888민중항쟁, 96년 항쟁 등의 대표적인 집단은 학생이었다. 버마의 스님들이 이끈 2007년 9월 시위의 제2의 지도자들 역시 학생들이었다.

이 학생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국가의 미래와 사회의 평화가 밝혀진다. 버마 시민들은 아이들이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하고 있다.

* 필자 마웅저(Maung Zaw) 씨는 버마 8888 항쟁 당시 고등학생으로 시위에 참가한 후 버마 민주화 운동에 투신해왔다. 1994년 군부의 탄압을 피해 버마를 탈출, 한국에 왔고 2000년 이후 현재까지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중이다.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결성에 참여했고, 현재는 한국 시민운동에 관심을 갖고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인턴으로 활동 중이다. 블로그 <마웅저와 함께(http://withzaw.net)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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