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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르토, 최대 1백만명 학살, 40조원 횡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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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르토, 최대 1백만명 학살, 40조원 횡령"

[초점]청산 거부하는 수하르토의 유산, 무책임과 부패

인도네시아의 독재자 수하르토 전 대통령은 죽었어도 그가 남긴 참담한 유산마저 청산되려면 아직 멀었다(☞관련 기사: '인도네시아 32년 철권통치' 수하르토 사망). 미국의 <AP> 통신은 27일(현지시간) '살인마' 수하르토의 과거를 폭로하는 증언들을 생생하게 전했다.

공산주의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처형될 뻔하다가 간신히 탈출한 마르쿠스 탈람(68)은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1968년 울창하고 습한 정글 속에 숨어서 인도네시아 군인들이 수갑을 찬 포로들을 트럭에서 끌어내 자동소총을 갈겨 죽여버리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탈람은 "타탓- 타탓, 타탓- 타탓, 타탓-타탓...지금도 그 총소리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면서 "이렇게 살해된 사람들은 다른 포로들이 파놓은 거대한 웅덩이에 쓸어 넣어졌다"고 몸서리를 쳤다.
▲ 인도네시아 군인들이 28일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로이터=뉴시스

"수하르토, 대통령 취임 후 2년만에 50만 명 살해"

국제인권단체들에 따르면 수하르토가 1966년 대통령에 취임한 뒤 불과 2년 동안 이처럼 죽어간 사람들이 최소한 5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산주의 숙청이라는 명분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역사에 대해 여러 권의 저서를 낸 미국의 역사학자 바바라 하프, 테드 로버트 거 등은 그가 군부를 장악한 1965년부터 68년까지 100만 명이 살해됐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가 지금까지 인정하고 있는 숫자는 7만 8000명에 불과하다. 이러한 수치의 차이는 통계의 오차라기보다는 이 기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입도 뻥긋 못하게 하는 철저한 억압이 지금도 인도네시아 사회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집단 살해 장소로 쓰인 한 바닷가에 살아온 수리엔(70)이라는 한 여인은 "군인들이 시체들을 이곳에 버려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기 때문에 주민들은 이곳을 '악취가 나는 시체의 해변'이라고 불렀다"고 전했다.

동티모르 등 지역 탄압으로도 수십만 명 죽어나가

수하르토의 '살인행각'은 공산주의 숙청을 빌미로 이뤄진 것에 그치지 않는다. 독립을 요구하는 지역들에 대해 가혹하게 탄압한 것이다. 유엔의 조사에 따르면 1975~1999년 동티모르를 점령한 동안 18만 3000명이 살해, 실종,기아, 질병 등으로 죽어갔다. 인권단체들에서는 35만 명 이상이 죽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파푸아에서는 비슷한 사유로 10만 명이 죽어나갔다. 아체 주에서도 1만 5000명이 죽었다.

탈람은 증언 도중 중대한 질문을 던졌다. "왜 아무도 법정에 기소가 되지 않았나요?" 이에 대해 <AP> 통신은 "그 어두운 시대는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면서 "1998년 수하르토는 반정부 민주화 시위에 밀려 축출됐지만,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어지는 자들은 지금도 정계와 법조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공산주의 숙청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교과서에 실릴 수 없고, 군부는 희생자 친척들이 집단 매장 장소를 찾으려는 노력을 봉쇄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위협을 분쇄한 공적을 기념하는 박물관이나 기념물들은 곳곳에 세워졌지만, 탈람이 직접 목격했던 집단 살해 사건도 공식 기록에는 없으며 공산당은 지금도 인도네시아에서는 창당 자체가 금지돼 있다.

대학살에 대해 책임지는 사례 없어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아시아 지부장 브래드 애덤스는 "수하르토 정권이 남긴 끈질긴 유산의 하나는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하르토와 그의 추종자들이 대규모 학살을 저질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종교와 미국의 비호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P> 통신은 "수하르토 정권은 무슬림과 무신론자인 공산주의자들과의 갈등을 이용해 인도네시아의 강력한 이슬람 조직들을 공산주의자 숙청에 나서도록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수니파 이스람 청년단에서 활동했던 하심 아시하리(67)는 "내가 속한 청년단은 당시 공산주의자들을 적발해 죽이라는 군부의 명령을 받았다"면서 "공산주의에 지배당할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고 공산주의 동조자들을 독실한 무슬림으로 개종하도록 돕는 일을 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농기구, 단검, 몽둥이 등을 사용해 포로들을 죽였다"면서 "정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AP> 통신은 "공산주의자 숙청에는 냉전에 따른 긴장이 고조됐던 당시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면서 "동남아시아 근대역사에서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 정권이 저지른 '킬링필드' 다음 가는 최악의 대학살"이라고 지적했다.

수하르토의 끈질긴 유산, 부패

대학살과 함께 수하르토가 남긴 유산은 부패다. 그는 집권하는 동안 국고에서 최대 4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재산을 빼돌렸다. 지난 2004년 국제투명성기구(TI)는 수하르토를 세계 최악의 부패 지도자로 꼽고, 재임기간 동안 그가 350억달러를 챙긴 것으로 추정했다. 그의 부인은 규모가 큰 국내 기업간 거래에 개입해 무조건 10%의 수수료를 받아 '10% 부인'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대부분의 재산은 개인적으로 설립한 재단으로 들어가서 추종자들과 비판자들을 구어삶는 뇌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는 국제투명성기구 조사에서 늘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부패 만연 국가로 선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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