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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고란?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3> 과학이란 무엇인가 <하>

과학적 사고

이제 과학적 사고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이미 앞에서 과학적 사고가 가장 핵심적인 것이고 자연과학의 위력은 과학적 사고에서 나온다고 지적했지요. 과학적 사고는 자연과학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자 우리가 가져야 할 소양입니다.

그러면 과학적 사고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과학적 사고를 잘 보여 주는 전형이 갈릴레이(Galileo Galilei)의 유명한 낙하 실험입니다. 갈릴레이가 피사(Pisa)의 사탑에 올라가서 낙하 실험을 했다고 하는데 이는 근거 없는 얘기고 사실이 아닙니다. 피사의 사탑은 기울어져서 올라갈 수도 없습니다. 물론 갈릴레이가 생존해있을 때는 올라갈 수 있었겠지만. 아무튼 피사의 사탑 이야기는 상징적인 것이고 (이런 걸 두고 전설이라고 하나요?) 갈릴레이의 사고는 수많은 시도와 추론을 통해서 얻어낸 결론이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갈릴레이의 업적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갈릴레이를 근대과학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아주 명예로운 호칭이죠. 우리도 나중에 그런 호칭을 들을 수 있으면 참 좋겠네요. 갈릴레이의 획기적인 업적이 무엇이지요?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동시에 떨어뜨리면 무거운 것이 먼저 떨어진다는 것이 당시의 믿음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갈릴레이는 무거운 물체나 가벼운 물체나 동시에 떨어진다고 생각을 바꿨는데 그것이 바로 과학적 사고의 전형입니다.

과학적 사고의 첫째 요소는 기존지식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반성'하는 것입니다. 갈릴레이의 경우에는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보다 먼저 떨어진다는 것이 기존지식인데, 이를 다시 성찰한 것이죠. 특정지식과 달리 보편지식에 대해 의식적으로 반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편지식은 사회에 널리 받아들여져 있고 사물의 보편적 양상으로서 우리 사고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대체로 수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므로 사회 문화 속에 깊이 잠재해 있기도 하지요.

중세에는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보다 먼저 떨어진다고 믿고 있었고 그것이 바로 사물의 보편적 양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였고 사회 문화에 깔려 있었지요. 이는 보편지식이 일종의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일반적으로 어떠한 전통적 권위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갈릴레이의 얘기를 들은 중세 사람들은 갈릴레이의 말을 어떻게 해석했겠어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보다 먼저 떨어진다고 말했는데, 중세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스콜라 철학이 막강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지요. 나는 별로 권위가 없으니까 주장을 펴도 여러분들에게 별로 먹혀들지 않겠지만, 노벨상 수상자(물론 사실 시원찮은 사람도 있죠)가 한 마디 하면 믿지 않기가 어렵지요.

보편적 지식은 그렇게 권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당연한 사실로 보이기도 합니다. 기존지식이 경험적으로 당연해 보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반성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겁니다. 무거운 추와 가벼운 종이 한 장을 같이 떨어뜨리면 실제로 어느 것이 먼저 떨어지나요? 무거운 추가 먼저 떨어집니다. 명백한 사실이죠. 이런 경험 때문에 사람들은 당연히 무거운 것이 먼저 떨어진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경험적으로 당연해 보이며, 권위를 지닌 기존 지식에 대해 의식적으로 반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참 놀라운 거죠. 이것이 과학적 사고의 가장 중요한 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사고의 두 번째 요소는 '지식의 정량화'라고 하겠습니다. 정성적으로 기술하던 지식을 정량적으로 기술하자는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보다 먼저 떨어진다는데, 그렇다면 얼마나 더 빨리 떨어질까요? 두 배인지 아니면 세 배인지 정량적으로 생각하자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중에 무거운 것이 먼저 떨어진다면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을 함께 붙였을 때는 어떨지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을 같이 붙이면 더 무거워지므로 더 빨리 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을 붙여서 떨어뜨리면 무거운 것은 빨리 떨어지고 가벼운 것은 천천히 떨어지니까 아마 두 가지의 중간 정도로 떨어질 겁니다. 그러면 좀 이상하지요. 무거울수록 빨리 떨어진다는 말에 의심이 가게 됩니다. 얼마나 더 빨리 떨어지는지 정량적으로 생각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사실은 갈릴레이가 실제로 떨어뜨려 보고 결론내린 것이 아니라 이런 정량적 고찰을 했던 겁니다. 다시 말해서 과학적 사고를 했던 것이죠.

지식의 정량화를 위해서는 객관성과 더불어 측정(measurement)이라는 개념이 필요합니다. 몇 배 더 빨리 떨어지는지를 말하려면 실제로 재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측정 개념이 필요하지요. 이와 관련해서 '지식의 실증적 검토'가 과학적 사고의 세 번째 요소입니다. 정말로 빨리 떨어지는지 실제로 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지식을 통해서 예측하면 그 예측을 실제를 통해서 확인하라는 겁니다. 보통 이를 '검증'이라고 하며, 이런 확인을 '실험'이라고 부릅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실험을 통해서 확인을 하라는 거지요.

동양이 서양에 비해 과학적 사고가 부족했다는 말도 이런 얘기와 통해 있는 겁니다. 동양이 '의식적인 반성'도 부족했지만 이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지요. 그러나 정밀한 실증적 검토가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동양에서도 실증적 검토를 중시하는 관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혹시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요? 이것은 실증적 검토의 관점을 강조한 말인데, 문제는 동양에서는 관측만 했지 실험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측의 확인은 그 예측이 적용되는 상황에서만 가능하지요. 따라서 적절한 상황을 인위적으로 조정해야 하며,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상황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실험은 관측과는 차이가 있지요.

낙하 실험에서 떨어지는 빠르기의 차이는 공기 저항 때문이지요. 무거운 것은 그 무게 때문이 아니라 공기 저항을 덜 받기 때문에 빨리 떨어진다는 것은 종이를 접어서 떨어뜨려보면 알 수 있습니다. 종이를 접는다고 해서 더 무거워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구겨서 떨어뜨리면 더 빨리 떨어지지요. 이것은 물체가 떨어지는 빠르기가 무게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무거운 것이나 가벼운 것이나 똑같이 떨어지는 것이 새로운 지식의 결론이므로 이 예측을 확인해보기 위해서는 '공기 저항이 없을 때'라는 상황 조성이 필요합니다. 공기 저항을 무시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보니 '예측'이 실제로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또 다른 요소는 '지식의 반증'이지요. 어떤 지식의 예측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면 그 지식을 '참'이라고 결론내리면 될까요? 예측을 확인해 보는 것은 중요하지만 확인해보고 바로 참이라고 믿는 것은 성급한 일입니다. 처음 실험에서는 결과가 예측과 맞아 떨어지지만 다시 한 번 실험해보면 아닐 수도 있거든요.

널리 알려진 예로 이런 게 있습니다: 어떤 칠면조가 '종을 울릴 때마다 밥을 주는 건가?' 하고 의심했는데 1년 내내 주인이 밥을 줄 때마다 종을 울리니까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 밤에 종이 울려서 '밥을 주겠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겁니다. 무슨 말이냐면, 아무리 여러 번 확인해봤자 확인의 회수는 결국 유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확증'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데,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지만 그래도 "해는 언제나 동쪽에서 뜬다"는 확증은 잘못일 수 있습니다. 내일은 서쪽에서 뜰지도 모르니까요. 이런 지식은 무한히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확증할 수는 없습니다. 만 번 확인해봤는데, 9999번 맞지만 한 번이라도 틀리면 그 지식은 참이 아니라 거짓입니다. 아무리 확인을 많이 해도 단 한 번만 틀린 사례가 나오면 그 예측은 끝장이 난 겁니다. 버려야 하는 거죠. 그래서 확증은 할 수 없지만 반증은 한 번에 할 수 있습니다.

지식은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을 지녀야 의미 있는 과학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증 가능성이라는 것은 반증할 수 있는 기회를 항상 열어두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반복적으로 확인해 봤는데도 한 번도 반증이 안됐다면 그것은 그만큼 믿을 만한 지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을 확증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수만 번, 아니 수조 번도 넘을 만큼 무수히 많은 날을 항상 그래 왔으니까 확증하지는 못해도 참일 가능성은 대단히 높은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확증할 수는 없지만 반증의 기회를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반증이 안됐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높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반증주의(falsificationism)'는 포퍼(Karl R. Popper)의 저서를 통해 널리 알려졌지요. 실증주의(positivism), 특히 논리경험주의(logical empiricism)와 관련이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얘기하겠습니다.

과학적 사고의 마지막 요소는, 단편적 지식들을 '하나의 합리적인 체계'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는 겁니다. 특정지식은 개별 과학적 사실(scientific fact)들을 말하는데 이들을 묶어서 보편지식 체계를 만들어내려고 시도합니다. 보편지식을 간단하게 이론(theory)이라고 하지요.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이나 계절이 돌아오고,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것은 하나하나가 과학적 사실이고 특정지식입니다. 그런 것들을 얼핏 보면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하나의 보편적 체계로 묶을 수가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뉴턴의'중력의 법칙'입니다. (이른바 만유인력이라는 용어보다는 중력이라는 용어가 적절합니다.)

과학에서는 이렇게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여러 지식들을 묶어서 하나의 체계로 만들어내려 노력합니다. 이러한 경향이 물리학에서 가장 두드러지며, 이로써 물리학은 다른 자연과학과 구분 되지요. 물리학은 바로 보편지식 체계를 추구하는 학문이고, 다른 자연과학은 대부분 특정지식을 추구하는 학문입니다.

생물학이나 천문학, 지구과학 등 특정지식을 추구하는 자연과학은 현상과학이라고 부르는 반면, 보편지식을 추구하는 물리학은 이론과학이지요. 요즘 생겨난 천체물리(astrophysics), 화학물리(chemical physics), 지구물리(geophysics), 생물물리(biophysics; biological physics) 같은 것들은 각 과학 분야의 특정지식들을 보편적 체계로 이해해보려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매주 화, 목, 금 연재)

* 이 연재는 지난 2008년 12월, '책갈피' 출판사에 의해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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