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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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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317>

소상팔경(瀟湘八景)

자정 넘은 귀가 길, 동작대교를 지나다 보니 강 너머 서쪽으로 기우는 반쪽 달이 여간 창백하지 않았다.
  
  오늘은 음양(陰陽)에 관한 글을 다음 회로 미루고, 소상팔경(瀟湘八景)에 관한 얘기를 들려드릴까 한다. 시린 달빛에 취한 탓이라 여겨주시길.
  
  문득 소상팔경을 꺼내든 까닭은 그것이 우리의 소중한 문화 자산이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하면 우리 문화의 핵심 컨텐츠(contents)라 하겠다.
  
  문화(文化)란 사람들이 함께 지닌 그 무엇이다. 누군가 '내 마땅히 삼고초려(三顧草廬) 하리라'는 말을 하면 우리들은 금방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린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가 우리 사회에서는 보편화된 문화 컨텐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말을 익힌 서양인이 있다 해도 삼국지연의를 읽지 않았거나 그 얘기를 듣지 않았다면, 그 서양인은 한국말로 통신은 가능하나 우리의 문화를 공유하지는 못한다.
  
  소상팔경이란 말은 오늘날에 와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거나 들어서 생경한 어휘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우리의 과거와 소통하고 그를 통해 과거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하는 내용의 것이라 여긴다.
  
  소상팔경은 우리의 고전이나 문학을 읽어나가다 보면 정말이지 무수히 만나게 된다. 어려운 한시(漢詩)는 제외하더라도 시조와 가사, 그리고 구운몽과 같은 소설과 춘향전이나 심청전 등의 판소리, 민요 등등에 광범위하게 등장한다.
  
  또 그림의 주제, 즉 화제(畵題)로도 무수히 그려졌다. 조선 초기의 명인 안견과 이징, 김명국, 정선과 심사정 등의 명인들이 즐겨 그린 보편화된 장르였다.
  
  그러니 소상팔경에 대해 모르면 고전문학과 그림을 대해도 그 맛을 알 수 없을 것이니 안타까운 노릇이 아니겠는가!
  
  이에 소상팔경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소상팔경의 뜻부터 알아본다.
  
  소상이란 중국 양자강 중류 근처에 있는 큰 호수인 동정호(洞庭湖)의 남쪽에 있는 두 개의 물줄기 소수(瀟水)와 상수(湘水)를 말한다. 따라서 소상이란 동정호의 남쪽 일대를 일컫는다.
  
  팔경(八景)이란 여덟 개의 빼어난 경관이다. 관동팔경이나 온양팔경 등, 이런 식으로 지방곳곳에는 명승지로서 '팔경(八景)'이 많은데 이는 소상팔경에서 따온 것이다.
  
  명승지를 여덟 개로 한정하는 것은 숫자 팔(八)이 주역의 팔괘(八卦)와도 연관되며 중국에서 팔(八)은 땅을 대변하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춘하추동의 네 계절에 명승지를 음양(陰陽)으로 해서 둘 씩 배정하기 좋은 까닭도 있다.
  
  소상팔경은 10세기 중반 중국에서 그림으로 그려지다가 11세기 송(宋)나라 때의 미불(米芾)이라는 뛰어난 서화가에 의해 널리 소개되었다.
  
  그림으로 그려지고 시로 읊어진 여덟 개의 경관은 다음과 같다.
  
  제 1. 산시청람(山市靑嵐)은 산마을과 그를 둘러싼 산의 짙푸른 기운.
  
  제 2. 연사만종(煙寺晩鐘)은 안개 낀 산속 절에서 들리는 저녁 종소리.
  
  제 3. 소상야우(瀟湘夜雨)는 소상강에 내리는 거센 밤비.
  
  제 4. 원포귀범(遠浦歸帆)은 저 멀리 포구로 돌아가는 배.
  
  제 5. 평사낙안(平沙落雁)은 강변 모래사장에 내려앉는 기러기.
  
  제 6. 동정추월(洞庭秋月)은 동정 호반에 뜬 가을 달.
  
  제 7. 어촌낙조(漁村落照)는 한가한 어촌 마을에 내리는 저녁 놀.
  
  제 8. 강천모설(江天暮雪)은 겨울 강위로 내리는 저녁 눈.
  
  이와 같은 소상팔경은 중국 동정호 남쪽의 경관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곳의 경치가 엄청나게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중국에서 시작하여 한국과 일본의 문인들과 화가들의 마음속에 하나의 문화적 경관으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소상팔경은 그리하여 실제 경치보다는 그 상징을 빌려 높은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하나의 관념산수(觀念山水)로 다듬어졌으며 시대에 따라 미의식(美意識)의 변화를 반영하면서 끊임없이 재창작되었다.
  
  이에 소상팔경의 여덟 개 제목에 담긴 대략의 정취를 얘기하겠다.
  
  먼저 산시청람(山市靑嵐)은 산 속에 열리는 시장이란 뜻인데 산(山)은 성(聖)이고 시장은 속(俗)이니 인생이란 성속(聖俗)을 넘나드는 그 가운데 있음을 말한다.
  
  다음으로 연사만종(煙寺晩鐘)에서 절이란 구도자(求道者)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인 바, 안개 낀 삶의 길 위에서 저녁 종소리를 길안내로 목표를 찾아가는 마음이다.
  
  소상야우(瀟湘夜雨)는 소상강에 휘몰아치는 거센 밤비로서, 삶의 도중에서 만날 수 있는 뜻하지 않은 시련과 다 풀어내지 못한 한(恨)의 정서를 의미한다.
  
  원포귀범(遠浦歸帆)은 부귀와 공명을 얻기 위해 세상에 나갔다가 더러는 뜻을 이루기도 하고 더러는 실의의 낙향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원 자리로 돌아오는 마음을 의미한다.
  
  평사낙안(平沙落雁)은 강변 모래사장에 내려앉는 기러기 무리인데, 기러기 역시 자유롭게 하늘만을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모래사장에 내려와 먹을 것을 찾아야 하니 이상과 현실의 갈등 또는 조화를 의미한다.
  
  동정추월(洞庭秋月)은 동정 호반에 뜬 넉넉한 가을 달이니 어느 정도 삶의 성취를 이룬 후에 맞이하는 한가로운 한 때를 뜻한다.
  
  어촌낙조(漁村落照)는 한가로운 어촌에 내리는 저녁노을인 바, 어촌은 한가로운 생활이고 저녁노을은 인생의 만년이니 이제 인생을 어느 정도 관조(觀照)할 수 있는 마음의 경지를 뜻한다.
  
  강천모설(江天暮雪)은 겨울 강위로 내리는 저녁 눈이니, 나이 들어 모든 것을 초월한 경지에서 겨울 강위에 배를 띄워놓고 내리는 눈을 보며 즐기는 경지를 말한다.
  
  소상팔경의 문화적 뜻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는데, 이렇듯 소상강의 여덟 경관은 그냥 경치가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기 마련인 여덟 개의 경지를 단계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여러 왕들은 소상팔경을 시제로 하여 신하들에게 시작(詩作)을 명한 적도 많았다고 했는데, 특히 중종 임금이 그랬었다.
  
  중종 임금은 외유(外遊)를 나갔을 때 '동정추월(洞庭秋月)'을 시제로 내릴 적에는 임금의 마음이 평안하다는 것, '원포귀범(遠浦歸帆)'을 내리면 임금 스스로가 이제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는 다짐을 간접적으로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옛 문인들 역시 벼슬길에서 불우한 일을 당하거나 또 어려운 처지를 당한 친구에게 소상야우에 비겨 심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역시 삶의 어려운 경지를 맞이한 선비의 강직한 기개를 그처럼 간결한 필법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세한(歲寒)'의 의미와 그에 얽힌 여러 고사(故事)들을 모른다면, 종이 위에 그려진 몇 가닥 선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우리의 과거와 소통하려면 과거 사람들의 정서를 알아야 할 것이니 혹시 이 글을 읽고 스스로 공부하고 마음이 있다면 그 공부 방법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먼저 당시(唐詩)부터 읽어나가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다. 그러다보면 절로 그 이전의 글을 찾아 읽게 되고 또 그 이후의 문학들을 접하게 된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 어느덧 전체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소상팔경 중의 하나인 평사낙안(平沙落雁)의 원래 정조(情調)가 시작되는 시성(詩聖) 두보의 '여야서회(旅夜書懷)'를 감상하는 것으로 글을 맺는다. 일자리를 잃고 배 한척에 가족을 싣고 유랑 길에 오른 두보의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세초미풍안(細草微風岸)
  선들 바람에 봄풀 나부끼는 강 언덕에
  위장독야주(危檣獨夜舟)
  밤을 지새는 돛대 기우뚱한 배,
  성수평야활(星垂平野闊)
  별빛 드리운 들판은 더욱 광활하고
  월용대강류(月溶大江流)
  달빛은 큰 강에 섞여 흐르네,
  명개문장저(名豈文章著)
  어찌 문장으로 이름을 얻으랴
  관인노병휴(官因老病休)
  생계를 잇던 벼슬도 늙고 병들어 그만두어야 했으니,
  표표하소사(飄飄何所似)
  떠도는 이 신세를 무엇에 비길까?
  천지일사구(天地一沙鷗)
  하늘 땅 사이의 외로운 한 마리 저 갈매기.
  
  (전화:02-534-7250, E-mail :1tgkim@hanmail.net)
  김태규의 명리학 카페 : cafe.daum.net/8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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