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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그 어떤 '몸짓'도 하지 않았다

[중동 르포] 부시 방문 후 거세진 이스라엘의 공습

팔레스타인 국제문제연구소장 마흐디 압둘 하디(PASSIA, Mahdi Abdul Hadi) 박사가 필자에게 '지난 9~10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방문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한국 대중들에게 알려 달라'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19일 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마흐디 소장은 매우 화가 나있었다. 16일부터 19일까지 4일 동안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가자 지역에서 37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살해되고 120명 이상이 부상을 당한 탓이었다.
▲ 팔레스타인 지역인 라말라에 간 부시 대통령 ⓒ로이터=뉴시스

현재 라말라에 체류하고 있는 소설가 오수연 씨도 20일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내왔다.

"저희는 며칠 전에 나블루스에 갔다 왔는데 라말라에 돌아오는 날 가자 사태가 터져 4번이나 검문소를 만났어요. 그리고 다음날 애도의 뜻으로 라말라의 모든 상점이 휴업을 했어요. 저희도 들렀다 온 발라타 난민촌에서도 한 명이 죽었다고 하고요. 지금도 연일 몇 명씩 사망자 숫자가 늘어나고 있어요. 부시가 가자마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 엿 먹으라는 명백한 신호죠. 힘만이 판치는 세상이에요. 신이 계시다면 제발 멈춰달라고 진심으로 기도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공격은 부시의 이번 중동 방문과도 관련되어 있다. 부시가 팔레스타인을 방문하기 직전 시인인 무함마드 자카리야(Muhamad Zakaria)를 포함한 팔레스타인인들 대부분은 "부시가 최소한 아마도 보잘 것 없는 소규모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철거하면서 평화를 추구한다는 선언적인 정도의 몸짓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조차도 헛된 희망이었다. 부시가 팔레스타인을 떠난 이후 12일에 라말라에서 다시 만난 무함마드 자카리야와 필자는 허탈하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부시는 평화를 위한 어떤 '몸짓'도 하지 않았다. 부시는 그저 2003년 만든 '로드맵'을 지지한다고 밝혔을 뿐이다.

팔레스타인 선도당 부총재인 칼리드 사이피(Khaled Safieh)는 "2003년 '로드맵'은 무엇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인 마흐무드 압바스에게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를 해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압바스 수반이 무장단체들을 해체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은 없다는 게 로드맵의 핵심이다. 그러나 무장단체 해체는 압바스 수반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는 결코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압바스 수반은 이스라엘이 테러리스트로 지목한 하마스를 비롯한 주요 무장단체들을 제압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기반인 파타조차도 일부 세력만을 장악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 부시의 방문은 하마스와 파타 사이에서 벌어지는 팔레스타인 내분을 격화시켰고, 이스라엘을 부추겨 하마스가 통제하는 가자 지역에 대한 공격을 강화시켰을 뿐이다. 내우외환에 직면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대내외적으로 평화에 대한 희망은 현재로서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고통받는 가자지구의 어린이 ⓒ로이터=뉴시스

익명을 요구한 라말라의 한 팔레스타인 정치인은 14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스라엘 점령지 서안과 가자에 대한 미국의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서안 깊숙이 건설된 이스라엘 정착촌과 요르단 계곡을 이스라엘 영토로 합병하고, 동시에 현재 분리장벽을 기준으로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경계를 획정해서 분리 장벽 동쪽의 서안을 요르단에게 넘겨주고, 가자는 이집트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레바논 거주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서안으로 귀환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2-3년 안에 실현될 것이다. 단지 부시의 세 번의 전화 통화로 요르단 국왕 압둘라는 이 안을 이미 승인했다."

이러한 주장은 라말라에서 만난 다른 팔레스타인인들에게서도 확인되었다.

1949년부터 1967년 전쟁 이전까지 가자는 이집트 통치하에 있었고,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은 요르단의 통치하에 있었다. 그러나 1979년 이스라엘-이집트 국경획정 협정을 통해 이집트는 가자를 이스라엘 영토로 승인했고, 1994년 이스라엘-요르단 국경획정 협정을 통해 요르단은 서안을 이미 이스라엘의 영토로 승인한 상태다.

1990년대에 조인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협정들에서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협상의 최종단계에서 '서안과 가자의 최종 지위'에 대하여 협상한다는 단서만 있을 뿐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스라엘의 기본 방침은 서안과 가자 영토를 합병하면서, 그 영토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추방시키는 것이다.
▲ 발라타 난민촌에서 필자 ⓒ홍미정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의 프로그램(2003년 로드맵)은 분할지배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다. 먼저 이 프로그램은 하마스와 파타간의 내전을 유발시킴으로써 19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 점령한 지역을 파타가 우세한 서안, 하마스가 우세한 가자 그리고 이스라엘이 통치하는 동예루살렘으로 명백히 분리시키는 것이다. 현재 이 단계는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있다.

다음으로 이 프로그램은 서안과 가자 영역을 모두 이스라엘의 주권아래 둔 채로 가자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이집트로, 서안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요르단으로 귀속시키는 방식으로 작동될 것 같다.

이스라엘이 서안과 가자 영역에 대한 지리적인 주권을 요르단과 이집트에게 완전히 넘겨주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완전히 실행된다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제한된 공간에 완전히 갇혀 생활하면서 지금까지 경험한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엄청난 재앙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홍미정 교수의 중동르포>

1. 누가 요르단을 민주화할 것인가? (1월 8일)
2. 부시, 트레일러 정착촌서 사진이나 한 컷?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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