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던 지난달 17일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한국 전문가 부르스 클링너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클링너의 예측이 적중한 것일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8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한미간에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그토록 한미동맹 강조하는 한나라당이 미국의 발목을 잡는다?
인수위의 재검토 입장에 대해 미국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방부가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전작권 이양은 합의한 대로 진행하자는 게 미국의 입장"이라고 전한 것으로 볼 때 전작권 재검토는 미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올 것이 자명하다.
미 행정부는 대선 당시 국방부 등에 소속된 주요 인사들을 한국에 보내 한나라당 측에 전작권 재협상 얘기를 절대 하지 말아 달라고 로비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 역시 공식·비공식적으로 "재협의 불가"를 강조해왔다.
미국이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인수위의 재검토 방침이 표면화될 경우 한미간의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미동맹 복원'을 강조하는 보수정부가 미국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건드리게 된 셈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역시 전작권 재검토에 대해 부정적이며, 미국이 받아들일 가능성도 낮게 보고 있다.
김장수 국방장관의 정책보좌관을 지낸 외교·국방 전문지 <디앤디 포커스>의 김종대 편집장은 "전작권 전환 시기를 가령 1~2년 늦추려 한다면 군사 변환을 추구하고 있는 미국의 전략을 크게 흔들어 놓을 것"이라며 "미국은 불쾌한 수준을 넘어 한국을 미국의 자원을 빨아먹는 빨대로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 편집장은 이어 "한나라당은 미국의 역대 군 사령관들을 인용해 재협상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사령관들은 군사 혁신파가 장악한 미국의 최신 흐름을 모른다"라며 "전작권 재협상은 미국의 발목을 잡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의 협상을 완전히 부인하자는 건 아니고 시기를 탄력적으로 조정하자는 게 인수위 입장"이라면서도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는 한 미국이 재검토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현재로선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인수위 "전환 시기 재조정일 뿐" 물러나
미국의 입장을 잘 알고 있는 국방부의 어조는 강했다. 김형기 국방부 홍보관리관은 9일 브리핑에서 "국방부와 합참은 합의한 일정대로 추진한다는 확고한 입장"이라며 "현재 미국과 전환시기를 협의할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재검토 또는 수정 같은 표현으로 언론에 기사화됐는데 이는 국방부 입장과 차이가 있다"고도 설명했다. 그러나 전날 인수위는 분명 "재검토가 필요하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이날 "국가간의 협정이기 때문에 재협상은 있을 수 없다. 다만 시기를 탄력성 있게 재조정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이 대변인은 "상황이 변하면 입장도 바뀔 수 있다"며 "2009년에 가서 상황을 전부 점검해 검토해 주자는 뜻으로 이해해 달라"며 재검토 방침이 철회되지는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이 대변인의 8~9일 브리핑 내용을 종합해 볼 때 △한반도 안보 상황과 국방능력을 종합 고려해 재검토해야 하며 △재협상은 없지만 시기 조정은 가능하다는 게 인수위의 입장인 것으로 정리된다.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은 "전작권 전환 시점인 2012년 4월 17일까지 안보 여건과 군사적 준비를 점검해 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게 인수위의 기본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백 팀장은 이어 "윤광웅 국방장관과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합의한 전환 시점도 김장수 장관에 의해 서너 달 미뤄졌다"라며 "양국 대통령들이 필요하다면 재검토를 논의할 수 있고 국방장관들은 그 지시를 받아 미룰 수 있다"고 말했다.
몇 달 미뤄서 '재협상 성공했다'고 하려고?
하지만 김장수 장관이 '서너 달' 미뤘던 것처럼 이명박 정부가 미국에 요구해 몇 달 미루는 게 무슨 의미냐는 반론도 만만찮다.
김종대 편집장은 "평택 미군기지가 2012년까지 완공될 수 없기 때문에 전작권 전환도 어차피 미룰 수밖에 없다"라며 "평택기지가 완공될 때까지 미국도 편의상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허탕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몇 개월 미뤄서 전작권 전환 재조정 했다고 생색내고 체면을 세울 수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요컨대 기지 공사 때문에 현실적으로 약간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을 활용해 '미국과의 협상으로 잘못된 전작권 전환을 바로잡았다'고 선전하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작권 환수를 그토록 비판하고 재검토를 약속했던 이명박 당선인 측이 추진하는 '재협상 아닌 재검토'의 진실은 거기에 있었다. 전작권 환수의 본질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진정 한미동맹의 '회복'을 원한다면 변화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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