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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햇볕정책, 아날로그인가 디지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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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로에 선 햇볕정책, 아날로그인가 디지털인가?

미래연의 '지구촌 분석과 전망' <73> 때론 아날로그가 해법

문제제기
  
  2008년의 새로운 해가 떠올랐다. 지난 10년간의 소위 진보정권이 막을 내리고 이제 곧 절치부심 보수정권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보수야당의 가장 큰 비판의 표적이었던 햇볕정책 역시 변화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기존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새롭게 들어 설 정권은 햇볕정책을 폐기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대폭 수정하는 수순으로 나가는 것이 논리적 귀결일 듯하다. 햇볕정책은 폐기될 것인가? 아니면 살아남을 것인가?
  
  필자가 판단컨대 노무현 정부에 대한 가장 심각한 오해 중의 하나는 좌파 또는 진보정권이라는 이념의 꼬리표를 다는 일이다. 물론 정권의 태생만큼은 진보라고 할 수 있으며, 재임기간동안 보수와 진보의 이념갈등이 심화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실제정책들은 일관된 이념을 가지고 추진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좌우의 이념노선을 넘나들며 사례별(case by case) 대응을 주로 했다. 국내정치도 그렇지만 대북 및 대미정책은 이런 경향이 더욱 지배적이었다. 2002년 대통령선거유세의 짧은 기간 동안만 두드러졌던 반미적 이미지와 진보적 정치수사(political rhetorics)들을 제외하면 친미도 반미도, 친북도 반북도 아니었다. 그랬기에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서 반미를 택했지만, 취임 직후엔 친미로의 급격한 변신도 가능했다.
  
  또 한편에서는 한미동맹의 균열을 무릅쓰면서 부시의 대북강경책에 대응하여 햇볕정책노선을 굽히지 않았던 반면에, 다른 한편에선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발을 빼는 상황에서도 아프간이나 이라크에 파병요청과 연장을 충성스럽게 들어주었고, 한미 FTA 타결에 온 힘을 쏟았으며, 철저히 미국의 입장에서 추진한 전략적 유연성을 포함한 주한미군개편 요구를 가감 없이 수용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최악의 한미관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요구하는 대부분을 받아들였다는 것만 봐도 노무현 정권이 결코 반미적이거나 이념적으로 진보적인 대미정책을 추구한 적이 거의 없었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노무현 정권이 포기하지 않고 일관되게 지킨 것이 있다면 그것은 햇볕정책일 것이다. 이 햇볕정책이 물론 진보진영의 핵심 대북정책이지만, 이념적 정체성의 결과라기보다는 노무현 정권이 택한 현실적 대응의 결과이다. 즉, 탈냉전과 북한의 대남 위협감소 추세와는 반대로 9.11 이후 미국이 대북강경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나름대로의 실용주의적 선택인 동시에 제로섬의 대결구조 속에서 나름의 운신을 위한 아날로그적 선택이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의 아날로그, 미국의 디지털, 그리고 북한의 해법?
  
  그러나 이러한 노무현 정권의 아날로그적 접근방식은 주변 국제정치지형은 물론이고 국내정치지형과도 전혀 맞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동북아 전체의 판도를 지배하는 독립변수인 부시행정부가 출발부터 매우 이념적인 정권이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특히 9.11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은 당시 부시의 선언처럼 세계의 모든 국가는 미국편에 설 것인가, 반대편에 설 것인가 결정해야만 하는 중립지대가 없는 디지털적 세계였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비핵화라는 정책의 동일한 종착점을 가졌음에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그은 냉전부활의 단층선에서 한국의 아날로그적 접근은 결국 북한 편에 선 것으로 취급당했다.
  
  부시 독트린이 루스벨트 이후 가장 큰 전략변화라고 평가도 있지만, 사실은 방어적 억지에서 선제공격을 포함한 적극적 억지로 변화했다는 부분만 빼면 그 근간은 냉전을 관통했던 봉쇄정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북한과의 핵게임은 이러한 미국의 냉전재생 드라이브를 촉매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한국의 입지는 더욱 어려웠다. 한국정부의 균형자역할 시도나 햇볕정책의 지속적 추진은 우리 입장에서는 실용적이고 탈냉전적인 접근이었지만, 부시행정부의 관점에서는 한미동맹을 파기하는 행동으로 해석되었다. 부시행정부의 원칙론에는 흑백만 있을 뿐 중간지대의 타협은 없었던 데 비해, 한국은 북한을 우선 중간지대로 끌어내 달래야 하고, 또 달랠 수 있다고 보았다. 조금씩이라도 햇볕의 맛을 보여주어야만 더 큰 햇볕을 향해 닫힌 문을 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북한을 협상의 대상자로 인식하고 미국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한국정부를 미국의 디지털식 사고방식으로 이해하자면 오히려 동맹국을 배제하고 적을 돕는 '악의 변호사(devil's advocate)'일 뿐이었다.
  
  한편, 북한은 2002년 제2차 북핵위기 이후 최근까지 미국과 마찬가지로 디지털식 접근법을 택해왔는데, 이는 미국과의 양자게임의 구조에서 북한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그러나 2007년 초의 북미 양자협상을 기점으로 북한은 디지털식 접근에서 한발 물러나 유연하고 "행동 대 행동(action for action)"을 통한 순차적인 방식으로 전환했다. 북한이 2.13부터 영변의 1차 핵불능화 과정까지를 빠르게 진행함으로써 그동안 악화되었던 국제여론을 우호적으로 돌아서게 만든 것 역시 이러한 아날로그적인 접근으로의 전환을 엿보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북한은 미국의 '적당한 보상' 정도로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즉, 생존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선결조건인 완전한 비핵화는 생각할 수 없는 디지털 방식이 여전히 중심을 잡고 있다. 이 부분이 미국과 북한의 가장 큰 대척점인데, 이 때문에 1차 불능화 이후의 추가적 핵폐기 과정에서 다시 어려움이 불거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2.13 합의에도 1차 불능화 단계이후의 타임테이블이나 비핵화의 정도, 그리고 검증방법 등 어느 것도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 없었다. 결국 해결방법은 미국과 북한의 동시적인 대타결이겠지만, 이는 북한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의 근본 생각이 바뀌기 전에는, 그리고 핵무기를 개발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훨씬 초과하는 보상이 아니라면 결코 포기하지 않을 북한을 감안하면 실현되기 쉽지 않다.
  
  남한, 북한, 미국 3자간의 이러한 입장차이가 가장 잘 드러난 최근의 또 다른 예는 종전선언에 관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줄곧 미국에게 3자 또는 4자가 공식적인 평화조약을 체결하기 전에 준비 또는 과도적 단계로서 종전선언을 할 것을 종용했는데, 이는 한국정부의 아날로그적 접근방식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기 전에 그것이 아무리 명목적 선언에 그친다 하더라도 전쟁이 끝났다고 세계를 향해 말할 수는 없었기에 사실상 거부했다. 이 와중에 북한의 입장은 한국과 미국의 중간을 오가는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 즉, 미국과의 협상에서는 종전선언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실질적인 수교를 통해 안전보장을 확인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던 반면에, 정상회담 이후 남한과의 후속회담들에서는 오히려 중간단계로서의 종전선언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던 것이다.
  
  지속되어야 할 햇볕정책
  
  지금까지의 과정이 말해주듯이 한국정부의 아날로그적 접근방식의 가장 큰 약점은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미국과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고 대결국면으로 갈 경우 그 효용성이 급격하게 감소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디지털방식을 고집하는 부시행정부가 만든 구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북핵문제가 지금까지 동북아에 긴장을 초래하던 두통거리에서 이제는 오히려 장기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아직 녹록하지는 않지만 아날로그적 접근방식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 여건은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새로 선출된 보수정권은 대북 및 대미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표명했다. 이명박 정권이 대북정책에 있어 부시행정부식의 디지털식 접근법을 수용하는 것은 결코 옳은 선택이 아니다. 특히 부시행정부는 임기 막바지에 있으며, 그들이 견지해 온 지난 7년간의 냉전적 노선은 이미 실패로 판명 났음에도, 대미관계 개선의 명분 아래 아날로그 방식의 햇볕정책을 접고 미국의 디지털 방식을 조급하게 추종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잘못하면 이는 침몰하는 배에 올라타는 것이며, 꺼지는 불씨를 막 타오르기 시작하는 불씨로 오판하는 실수가 될 수 있다. 마치 부시가 7년 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클린턴을 제외한 모든 것(anything but Clinton)'을 추구한답시고 북핵 해결의 제네바시계를 거꾸로 돌렸던 것처럼,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을 폐기하거나 근본적 수정을 가하며 말 그대로 냉전수구적 정책으로 돌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의 대북압박정책은 이미 실패한 정책이며, 북한의 핵실험까지 가게 된 가장 주된 원인이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부시행정부가 초기의 강경론에서 한발 물러나 협상기조로 전환한 것이 오늘의 호전된 국면을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이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어렵게 돌아선 북미와 남북관계의 선순환구조는 결코 비가역적이지 않다. 더욱이 현재 부시행정부의 강경책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일보 후퇴했을 뿐 부시정권의 외교정책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딕 체니 부통령을 중심으로 여전히 건재하다. 북한에 대한 이들의 뿌리 깊은 불신은 여전하며, 여차하면 다시 강경책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상존한다. 한국의 대선 직후 미국에서는 보수적인 싱크탱크들과 언론들이 앞 다투어 한국의 정권교체가 한미동맹을 재건하고, 또 더 나아가 한미일 삼각동맹을 부활시켜, 북한에 대해 보다 효과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대감을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한국정부가 휩쓸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당선자의 대북정책의 핵심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작년 2월 외신기자클럽에서 발표한 소위 MB 독트린이다. 핵심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북한의 비핵화와 개방을 조건으로 400억불을 투자하여 10년 내에 북한주민의 1인당 GDP를 3천불로 끌어올려 주겠다는 것이다. 일견 햇볕정책을 승계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북한에 대한 지원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으며, 실제로 이 때문에 한미양국의 대북강경론자들의 비판과 의구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독트린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기정사실화하고 그 이후에 어떤 보상을 해줄 것인가에 대한 내용만 있을 뿐, 핵을 누가 어떻게 폐기할 것인가, 그리고 어느 수준까지를 완전한 핵폐기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내용은 없다. 핵폐기를 전제로 한 보상은 햇볕정책의 지속여부를 결정할 결정적 변수가 되지 못한다. 노무현정부와 부시행정부의 차이와 갈등은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비핵화라는 종착점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를 이끌어 낼 중간과정에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MB독트린이 말하는 획기적 보상안이 완전한 비핵화를 엄격한 선결조건으로 추진된다면 그것은 부시행정부의 디지털식 접근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 미국도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한다면 원하는 보상을 해주겠다는 입장이었다. 문제는 비핵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정책을 택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디지털방식인가 아니면 아날로그방식인가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특히 현재와 같이 완전한 비핵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북한이 6자회담이나 북미, 남북회담에서 이탈하여 강경일로를 걷지도 않은 상황에서 해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강경정책으로 북한을 압박할 것인가, 아니면 대화의 틀에 묶어두기 위한 햇볕을 일부라도 꾸준히 비춰줄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선거 직후 자신이 이끌 정부를 실용주의 정부라고 명명했는데, 햇볕정책을 대폭수정하거나 폐기하는 것은 결코 실용주의가 아니며, 현재 국제정치지형에서는 오히려 햇볕정책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실용주의 선택이다. 북한에 대해 아무리 큰 보상을 내세운다고 해도, 그것을 엄격한 전제조건으로 내세울 경우 결과는 결국 냉전적 대결구조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핵문제이다. 이명박 대통령당선자가 상호성을 강조하는 정도의 틀 내에서 추진하는 부분적 수정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햇볕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면 지금까지 지적했듯이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냉각된 한미관계를 너무 조급하게 회복하고자 햇볕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 한미공조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것은 북한과 미국의 소수 강경론자들의 입지 외에는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영국의 팀 빌(Tim Beal) 교수는 "북한과 미국 양자는 모두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망칠 수 있는 국가들이다. 그러나 양자 중에 성공을 이끌 수 있는 국가는 미국뿐이다. (중략) 북한은 'no'라고 할 수는 있어도 북한의 'yes'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라는 말은 매우 정확한 지적이다. 여기에 남한이라는 변수를 추가한다면, 남한의 선택만으로 북한핵문제와 평화프로세스를 성공할 수는 없지만, 미국의 'no'에 편승(bandwagon)함으로써 급속도로 망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새롭게 출범할 정부는 유의해야 할 것이다. 선택이 어렵다면 차라리 미국의 차기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당분간은 시간을 끌면서 현상유지 또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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