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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샤라프, 후세인의 길로 들어서는가?

팍스 시니카(Pax Sinica) 시대의 도래 <1> 부토 암살은 미·중 패권 다툼의 부산물

"하늘 아래 새 것이 없다"고 했던가? 지난 2006년 말과 2007년 초를 사담 후세인의 처형과 그와 관련해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방송·언론 보도와 함께 보냈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2007년 말과 2008년 초 역시 베나지르 부토(Benazir Bhutto)의 사망과 그와 관련된 배후 세력 이야기로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부토의 사인을 놓고, 파키스탄 정부와 부토 진영이 대립하더니, 그 배후 세력을 놓고도 정부와 부토 진영, 알카에다마저 대립하는 상황까지 연출되면서 부토의 암살 배후는 케네디 암살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미제로 남을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텍스트 인 콘텍스트(text in context)'라는 말처럼, 부토 암살을 전후로 주변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천천히 살펴보면, 그 배후에 대한 실마리를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친중국계로 알려진 탁신 총리의 축출

지난 2006년 9월 20일 새벽,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 하나가 지구촌을 강타했다. 태국 군부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손티 육군 참모총장이 무혈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소식이었다. 당시 탁신 총리는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전세계가 15년만에 발생한 태국 쿠데타에 대해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국민들로부터 절대적 신뢰를 받고 있는 푸미폰 아군야뎃 국왕이 이례적으로 다음날 군부 쿠데타를 공식 승인함으로써 사태를 신속히 마무리했다는 점이었다. 실로 '전광석화(電光石火)'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되고 조율된 무혈 쿠데타였다.

그와 더불어 친중국계로 알려진 탁신 총리는 하루 아침에 총리직을 박탈당한 채, 국외를 떠돌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시티 구단주로 등극했다.

친중국 성향인 미얀마 군정에 대한 민주화 시위

그로부터 1년 뒤인 9월 24일, 이번에는 태국과 동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버마의 최대 도시 양곤에서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군사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버마의 수도였던 양곤시의 랜드 마크인 쉐다곤 파고다 주변에 모인 승려와 시민 수백여 명이 기도 집회를 가진 뒤, 민주화를 요구하는 가두 시위 행진을 벌인 것이다.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야 할 스님들을 시위 현장으로 불러들인 것은 하룻밤 사이에 디젤 가격이 2배, 천연가스는 4배로 인상되는 등, 군사 정권이 그동안 저질러 온 경제 파탄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경찰의 해산 명령에도 불구하고 스님을 중심으로 쉐다곤 파고다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는 어느새 수백에서 수천, 다시 수만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버마 시민들은 민주화를 외치는 승려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 띠를 만들어 양곤 시내 중심가로 행진하였다.

상황이 이쯤되자, 자칫 사태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태국의 탁신처럼 축출될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에 사로잡힌 미얀마 군정은 26일 경찰에게 시위대에 대한 발포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불타오르기 시작한 민주화 시위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 유혈 진압이 발생한 26일부터 미얀마 민주화 사태는 전세계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무력을 앞세운 군정 앞에 민주화 항쟁은 좌절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군부의 유혈 진압으로 최소 31명이 사망하고, 74명이 실종되었으며, 650명이 투옥되었다. 상황이 이쯤되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버마 문제를 논의키로 결정했으며, G8 정상도 버마 군사 정권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세계로부터 강력한 압박에 직면한 버마 군사 정권은 비록 형식상이나마 아웅산 수치 여사와 지속적으로 접촉할 연락관을 임명하고, 야당과 대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유화 제스쳐를 보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과정에서 국제 사회가 버마 군사 정권과 정치·경제적으로 유대가 깊은 중국 정부의 역할론을 강조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실제로 버마 군사 정권은 태국의 탁신 총리와 마찬가지로 친중국계다. 이같은 사실은 대우인터내셔널(60%)과 한국가스공사(10%)가 총지분의 70%를 확보한 채 탐사·개발에 성공한 버마 해상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천연 가스가 한국으로의 직도입이 무산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향후 7~8년간 국내 소비량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던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가 개발 주체인 한국이 아닌 중국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난해 2월 중국의 외교담당 국무위원인 탕자쉬안이 버마를 방문한 뒤, 이 문제의 결정권을 쥐고 있던 친중국 성향의 군사 정권이 대우인터내셔널 소유의 천연가스를 중국에 판매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버마-중국간 송유·가스관을 중국이 무료로 제공하기로 합의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특별행정구 마카오에서의 반정부 시위

한동안 전세계의 이슈로 떠오르던 버마 민주화 시위가 아무런 가시적 성과 없이 잠잠해질 무렵, 이번엔 중국의 특별행정구인 마카오(Macao)에서 노동자 수 천 명이 모여 중국 정부에 대한 반정부 집회를 벌였다.

지난 442년간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중국으로 반환된 지 8주년 되는 기념일인 지난 12월 20일 오후, 노동자 6000여 명이 도심에서 마카오 특구 정부 청사를 향해 "민주주의 도입을 확대하고, 부패를 척결하라!"며 가두 행진을 벌인 것이다. 이 사건을 보도한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마카오는 도박 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허용되면서 경제가 호황을 누려왔지만, 성장에 따른 빈부 격차 등의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지난 2006년 9월 이후 태국과 버마, 마카오에서 일어난 각각의 사건은 모두 친중국 성향의 정권에 대한 축출이나 압박, 민주화 요구라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인도의 오랜 라이벌이던 중국과 연관된 국가들이자 인도 우측 방면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스님을 중심으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탄압한 버마 군사 정권은 국제 사회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지만, 쿠데타를 통해 탁신 총리를 축출한 태국 군부는 국제 사회로부터 아무런 비난도 받지 않았다.

또한 마카오에서 일어난 민주화 요구는 비록 소규모였지만,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로 천안문 사태를 기억하는 홍콩과 중국 내부에서 거센 반향을 불러 일으킬지 모를 민주화 요구의 기폭제가 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잠재적 폭발력을 갖고 있었다.

한순간 전세를 역전시킨 태국 총선 결과

그런데 그로부터 3일 뒤 발표된 태국 총선 결과와, 그로부터 4일 뒤 인도 좌측 방면에 위치한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의 암살 사건은 이와는 정반대 방향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실제로 지난 12월 23일 태국에서 실시된 총선에서 탁신 총리 계열의 '국민의 힘'(PPP)은 총 480석 가운데 233석을 차지하며 태국 제1당으로 떠올랐다. 게다가 PPP 당은 군소 3개 정당과 연립 정부 구성에 합의해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고 밝힘으로써, 탁신 총리의 재집권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현재 중국의 특별행정구인 홍콩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탁신 전 총리는 오는 2월에 귀국 예정이며, 정치를 재개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화 민족주의 움직임과 연방제를 통한 민주화 수용

여기에 바로 며칠 전인 2007년 12월 29일,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제31차 상무위원회를 개최해 2012년 홍콩 행정장관과 입법 의원 선출 관련 규정을 개정해 2017년부터 행정장관을 직선제로 선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에 따라 입법 의원도 이르면 2020년부터 전원을 직선제로 선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현 홍콩 행정장관인 도널드 창(曾蔭權)이 지난해 12월 12일 후임 행정장관과 입법의원 선출 방법을 2012년에 개정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요청을 중국 정부가 적극 검토함으로써 이루어진 일이다.

물론 이는 그동안 2012년 직선제를 실시를 주장해 온 홍콩 대다수 시민들의 요구에는 못 미치는 것이지만, 적어도 직선제 도입을 위한 로드맵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홍콩 민주화의 새로운 이정표로 평가된다.
▲ ⓒ연합뉴스

뿐만 아니라 중국은 개혁·개방 30주년을 기념하는 2008년을 맞아 개최될 베이징 올림픽과 2010 상하이 엑스포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21세기 중반까지 명실상부한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다는 전략을 하나씩 실행에 옮기고 있다.

실제로 후진타오 주석은 제17차 전대에서 2020년까지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2000년의 4배로 늘리고, 경제의 무게 중심을 그동안의 양적 측면에서 질적 측면으로 전환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그래서일까? 영국의 세계적인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 경제의 성장 축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했다. 2007년 GDP 규모에서 이미 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로 부상한 중국이 2020년에는 어쩌면 미국마저 제치고 세계 1위로 등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부토의 죽음은 미·중 패권 다툼의 결과물

지난해 12월 27일 발생한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의 죽음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과거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카스피해의 원유 공급과 '테러와의 전쟁'의 원할한 수행을 위해 인도보다는 파키스탄과 오랜 친분 관계를 유지하던 미국의 대외 정책이 급속히 인도 쪽으로 편향되는 과정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파키스탄에서 인도로 고무신을 바꿔 신은 까닭은 단순하다.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의 권력 지형도가 급속히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구 소비에트 연방 붕괴로 1990년대 중반부터 일극 체제를 유지하던 팍스 아메리카나의 위상이 21세기 들어와 브릭스(BRICs)의 눈부신 경제 성장에 따른 다극 체제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라시아 지역에서 중국·러시아의 급속한 경제 성장과 최근 인도의 급성장 가능성은 미국이 세계 패권 구도에서 가장 끔찍스럽게 생각하는 러시아-중국-이란-인도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동맹의 탄생 시나리오를 이미 현실화시키고 있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의지의 동맹'으로 불리우는 미국-영국-일본-호주로 이어지는 해양 세력의 연대를 통해 어떻게든 인도와 중국·러시아의 동맹을 차단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도의 합동 군사훈련에 이어 얼마전 있었던 중국·인도의 합동 군사 훈련은 인도를 둘러싼 이같은 미·중의 힘겨루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인도 우측 방면에 위치한 태국과 버마가 친중국 정권이라는 사실은 미국으로서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특히 지정학적으로 인도의 벵갈만으로 직접 통할 수 있는 버마의 경우는 더더욱.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끊임없는 러브콜에 시달리는 인도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서는 결정적으로 파키스탄에 대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중국이 대만에 대해서, 한국이 북한에 대해서 그러는 것처럼, 인도에게 있어 가장 우선 순위에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 인도가 파키스탄에 대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북한의 비핵화처럼, 말할 것도 없이 파키스탄의 비핵화다. 그럼 그것을 당하는 반대편의 심정은 어떠할까? 그렇다. 그것이 바로 지금 파키스탄의 지도자 페르베즈 무샤라프의 심정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으로서는 이미 사용 기간이 지난 무샤라프를 폐기 처분하고 부토를 앞세워 인도와의 관계 개선을 꾀하고자 한 것이다.

반면, 무샤라프는 과거 탈레반이 카스피해 유전의 파이프라인 구축안을 놓고 유노칼과 흥정을 벌였던 것처럼(미국의 아프간 침공은 탈레반과 유노칼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시작되었다), 중국과 새로운 관계 개선을 모색 중인지 모른다. 실제로 중국의 <차이나 데일리>는 2007년 세계 10대 인물 중 한사람으로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을 포함시켰다. 정치가로서는 후쿠다와 사르코지, 푸틴, 케빈 러드 호주 총리에 이은 다섯번째다. 이는 미국이나 서구 유럽과 달리 아직까지 당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중국 언론의 특성상, 중국 공산당 내부 의견의 반영이라 보아도 별 무리가 없다.

게다가 자살폭탄 테러가 있던 당일, 파키스탄 정보부(ISI)가 미국이 제공한 대테러 지원금을 전용해 총선 과정에 불법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문서를 부토가 미국 측에 전달하려 했다는 <더 타임스>의 보도는 이같은 심증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만일 부토에 대한 테러의 배후 인물이 무샤라프일 경우, 어쩌면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담 후세인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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