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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세계대전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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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세계대전의 '얼굴'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57> 2008년 '지구촌 폭력' 사라지려나

2007년은 역사의 무대 뒤로 밀려나고, 무자(戊子)년 새해를 맞는다. 2008년의 지구촌은 평화로울까. 아니면 각종 유혈사태로 어수선한 해가 될까. 안타깝게도 그 대답은 평화보다는 유혈 쪽이다. 지구촌 어디에선가 테러나 유혈충돌로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뉴스를 듣는 데 우리는 어느덧 익숙해졌다.

날마다 유혈투쟁의 참혹상을 전해 들으면서 <프레시안> 독자들은 과연 무슨 까닭에 우리 인간들은 유혈투쟁을 벌이는가, 굳이 피를 흘려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가 하는 물음과 더불어, 전쟁으로 이득을 보려는 인간이나 세력들 때문에 전쟁이 그치지 않는 게 아니냐는 분노를 품게 마련이다. 석유를 노린 '더러운 전쟁'을 벌인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하나의 보기다.

2007년 지구촌 현실을 돌아보면, 이라크 유혈사태를 비롯해 평화와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를 반증하는 하나의 통계자료가 있다. 2007년 10월 현재 8만2천명의 평화유지군(군인, 경찰)이 레바논을 비롯해 전세계 17개 분쟁지역에서 활동 중이다(www.un.org/Depts/dpko/dpko/bnote.htm 참조). 2005년만 해도 푸른 헬멧을 쓰고 지구촌 분쟁지역에 투입된 병력이 7만명을 밑돌았다. 유엔평화유지군의 파병 숫자로 보면, 1948년 유엔이 평화유지활동을 시작한 지 거의 60년이 흐르는 동안 지금이 가장 많다.

제3차 세계대전의 '얼굴'

돌이켜 보면, 20세기는 유혈폭력과 살상의 시대였다. 전쟁연구자마다 추정치가 다르지만, 20세기의 전쟁 희생자 규모는 1억 명에서 1억7천만 명 사이다. 무려 1천5백만명의 사망자를 냈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그 전쟁을 그냥 '큰 전쟁'(Great War)으로 불렀다. 그러나 바로 20년 뒤 '더 큰 전쟁'(제2차 세계대전, 사망자 5천만명)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영국 출신 작가로 1983년 『파리대왕』으로 노벨문학상을 탔던 윌리엄 골딩(1911-1993)이 20세기를 가리켜 '인류사에서 가장 폭력적인 세기'라고 규정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2003년 석유를 노린 미국의 이라크 침공 뒤 4년 넘게 이어지는 유혈사태는 어린이들마저 폭력적인 놀이에 익숙하도록 만들었다.ⓒ김재명

안타까운 것은 전쟁의 폭력성이 전투원인 군인들뿐 아니라, 비전투원들인 민간인들에게 더욱 강하게 휘둘러진다는 점이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은 비전투원(민간인) 숫자는 전투원인 군인 사망자보다 훨씬 더 많다. 정치학자 루스 시바드는 1900년부터 1995년 사이에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은 1억970만명이며, 이들 희생자 가운데 비전투원(민간인)이 6천2백만명으로 전투원보다 많이 죽었다고 추정했다. 1990년대 전반기의 전쟁 희생자 550만명 가운데 75% 가량이 비전투원으로 알려진다.

미국의 신학자 제임스 터너 존슨(랏거스대학 교수, 종교학)는 민간인들에 대한 폭력이 판치는 국제분쟁이나 내전이 전세계 곳곳에서 늘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 사실상 '제3차 세계대전의 얼굴(face)'이라고 규정했다.

문명국의 폭력적인 전쟁

전쟁은 그 폭력적인 성격상 온건하게 벌어지길 바라기 어렵다. '온건한 전쟁'이란 어법상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19세기 프러시아의 군사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도 그의 『전쟁론』에서 "온건주의를 전쟁에 결코 끌어들이는 것 자체가 논리적인 모순을 저지르는 일이다"고 못 박았다.

클라우제비츠는 미개민족끼리 벌이는 전쟁이 문명민족끼리 벌이는 전쟁보다 훨씬 잔혹하고 파괴적이라 했지만, 가장 문명화된 민족끼리의의 전쟁도 폭력적임을 인정했다. 20세기 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벌인 교전당사국의 국민들은 그들 스스로가 '문명국민'이라 여겼다. 이라크 혼란을 불러일으킨 미국인들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전쟁희생자 2억명 넘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월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이란의 지도자는 이스라엘을 파괴하려 한다. 제3차 세계대전을 피하고 싶다면, 이란이 핵무기를 만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란의 긴장 때문에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고 보고 싶지는 않지만, 어떤 이유로든 큰 전쟁이 일어나는 일만큼은 피해야 한다. 20세기에 이미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은 우리 인류가 과연 21세기에 제3차 세계대전을 맞이하게 될까.

이 글 앞에서 20세기의 전쟁 희생자 규모는 1억 명에서 1억7천만 명 사이라 했다. 석유를 노린 미국의 침공에서 비롯된 이라크 혼란과 피바람에서 보듯이 우리가 사는 21세기의 전쟁희생자 합계가 2억 명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제3차 세계대전과 같은 또 다른 '큰 전쟁'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미국과 같은 패권국가가 힘에 의한 일방주의 대외정책을 21세기 내내 밀이붙이거나,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전쟁희생자 2억'이란 숫자의 벽은 쉽게 넘어설 것이다.

1946년 창설된 유네스코 헌장의 전문에는 "전쟁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 속이다"라고 쓰여 있다. 2008년 새해, 지구촌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평화의 비둘기가 날아들길 기원해본다.

* 시사주간지 <한겨레 21> 최근호에 실은 글을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필자 이메일: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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