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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아들을 죽이는 사람들아 무너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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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아들을 죽이는 사람들아 무너져라"

[버마이야기] ⑦ 다시 시작된 민주화의 행진

버마 군부는 9월 시위가 대대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위 이전에 많은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8월 21일 민꼬나잉(Min Ko Naing)을 포함한 88세대 지도자 13명을 체포했던 일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군부는 9월 시위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체포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감옥 밖에 있는 88세대 지도자들은 몇밖에 남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의 활동은 사무실을 만들거나 여기저기서 회의를 하는, 그런 자유로운 활동이 아니다. 국영방송과 신문에서 그들은 자주 범죄자로 등장하며 경찰들의 수배를 받고 있다. 그들은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비밀리에 활동을 하고 있다.

그중에 아직도 숨어서 활동하고 있는 88년 세대 학생 툰민아웅(Tun Myint Aung)이 있다. 그는 "외신에서는 수감된 사람들이 석방되고 있다고 보도 하고 있지만 군부가 시민들을 심하게 감시하고 있고 체포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보도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9월 시위 때문에 숨어 살게 된 사람들은 여전히 숨어 살고 있는 상황"이라며 9월 시위 때 체포됐다가 풀려난 사람들이 다시 체포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메긴 절의 모습 ⓒ버마 인터넷신문 <이라와디(Irrawaddy)>

9월 시위 때 지도적인 역할을 했던 스님들이 풀려났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스님들이 계속 잡혀가고 있고 몇몇 절들은 폐쇄를 당했다. 그중에 유명한 메김 절(寺)도 포함되어 있다.

수도 양곤 띵간전동에 위치한 메김 절은 9월 시위 때 시위의 진지가 됐던 곳 중의 하나다. 군부는 지난 9월 26일 밤 12시 깡패 200여 명을 절로 난입시켜 주지 스님을 포함한 승려들과 절에 있던 4명의 민간인을 잡아갔다. 9월 한 달 동안 이같은 강제 조사와 체포는 4회 있었다. 그 절에 있는 스님들 중에 90년 스님들의 총파업 때 지도적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된 이도 있다.

메김 절은 그동안 HIV/AIDS 감염인을 보호하는 활동을 해왔고 감염인들은 절 안에서 생활을 해왔다. 주지를 포함한 스님들이 석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 11월 29일 군부는 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떠날 것을 경고하면서 절을 폐쇄시켰다. 갈데없는 감염인들과 스님들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서 군부에 의해 강제로 추방되었다.

버마의 88세대 출신 민주화활동가들 중 어떤 이들은 대학교를 졸업한 후 8888 민중항쟁에 참여했고, 또 어떤 이들은 대학교나 고등학교 재학 중에 참여했다. 그들은 지금 마흔을 넘어선 아저씨들이지만 아직도 자신이 '학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학생이라면 권력에 욕심이 없으며, 마음이 누구보다도 깨끗하고, 무엇을 하겠다고 결심하면 끝까지 관철하고, 사리사욕을 차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을 택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런 학생들의 정신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버마의 민주화와 평화를 위해 시민과 군부, 정치인들 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버마 내에서 NLD의 아웅산 수치와 군부 간의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요구하고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시민들에게 민주화를 교육하고 그들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활동가들도 있다.

민주화 교육이라면 그 말의 어원이 무엇인지 등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버마 현실에서 민주화 활동가들을 칭찬하고 공무원들을 비판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인데, 칭찬과 비판을 할 수 있는 용기를 키우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활동가들은 시민들에게 민주화 및 반정부 운동과 관련된 내용이 적힌 전단을 나눠주는 활동도 아고 있다. 그리고 '스프레이 운동'이라고 하는 활동도 하는데, 벽이나 전철과 같이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다 군부를 규탄하는 글을 적는 것이다. 기도시위도 조금씩 다시 시작하고 있다. 9월 시위 일반 시민들까지 외신 방송과 인터뷰를 하고, 민주화 운동가에 대한 칭찬과 군부에 대한 비판도 조금씩 하고 있다.

그들이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은 전화와 외신방송을 통해서다. 한 때 정치범이었던 툰민아웅(Tun Myint Aung)의 말에 의하면, 그 방법들은 너무나 위험하지만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또 언제 감옥에 갈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항상 마음이 준비 되어 있다고 말한다.

툰민아웅의 이야기에 의하면 굉장히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버마 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국제사회의 관심이다.

88세대 학생인 툰민아웅(Tun Myint Aung), 닐라띤(Nilar Thein), 소툰(Soe Htun)은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ASEAN) 회의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 서한의 내용은 샤프란 혁명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버마 군부를 규탄한 ASEAN 멤버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과 감바리 특사의 제안을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또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이웃 국가인 중국과 일본, 한국 등 ASEAN 국가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요구하고 있다.

- NLD 및 민족화해 그룹의 참여 없이 만들어진 버마 군부의 국가 헌법 거부 선언

-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과 감바리 특사 제안의 즉각 실행 : 모든 정치범 석방, 정해진 시간 내에 아웅산 수치 여사 및 민족 대표들과 상호 인정 가능한 해결을 위한 대화, 국민적 합의에 의한 헌법 수립 및 빈곤 개선 위원회 설립

- 이같은 국제 사회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ASEAN 내 버마 군부의 회원자격 박탈

- ASEAN 국가들의 정부가 버마 군부에게 평화 시위대 진압에 사용될 무기 판매 및 그 기술제공을 금지


국제사회와 유엔의 요구로 버마 군부의 최고지도자 탄쉐이와 수지 여사가 대화하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지금은 군부쪽에서 대화하려고 하는 노력이 보이지 않고 있다.

툰민아웅은 여기에 대해 "국제사회와 유엔의 관심이 떨어지면 군부에서는 예전과 같은 행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며 "버마 내에 있는 학생들도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투쟁하고 있다. 국제사회 역시 9월 시위에서 보여준 관심을 계속해서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필자 마웅저(Maung Zaw) 씨는 버마 8888 항쟁 당시 고등학생으로 시위에 참가한 후 버마 민주화 운동에 투신해왔다. 1994년 군부의 탄압을 피해 버마를 탈출, 한국에 왔고 2000년 이후 현재까지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중이다.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결성에 참여했고, 현재는 한국 시민운동에 관심을 갖고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인턴으로 활동 중이다. 블로그 <마웅저와 함께(http://withzaw.net)를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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