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컴퓨터를 켠다. 첫 번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에서 운영하는 이스트플랫폼을 거쳐 <프레시안>으로.
<프레시안>은 하루 웹 생활을 시작하는 두 번째 방문지입니다. 그렇게 살기 시작한 지 2년이 조금 넘는군요. 그리고 하루 뉴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점심, 오후 늦게, 이렇게 적어도 세 번은 꼬박꼬박 방문하고 뉴스들을 살핍니다. 그러다보니, <프레시안>은 솔직히 속도 면에서는 조금 딸린다는 나름의 생각도 갖게 되었지요.
하지만 프레시안은 묘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은 제가 접하는 언론들 중 유일하게 기자의 이름을 보게 만듭니다. 기사의 깊이가 남다르고 기사에 담긴 기자의 마음과 정신이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한미FTA를 파헤치던 날들에 노주희 기자의 이름을 본의아니게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했습니다. '한미FTA 공부는 프레시안 노주희 기자 글 찾아봐~' 강양구 기자의 기사에 담긴 해박한 지식과 사고의 다각성은 '세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라는 책으로까지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참 오랜만에 기사를 읽으면서 눈물을 훔쳐봤습니다. 성현석 기자가 쓴 '허세욱 님'에 대한 기사는 가슴을 울리고 또 울렸습니다. 그렇게 헤짚어진 가슴은 저 뿐만이 아니더군요. 김영길 특파원의 남미이야기는 새사연에서 파고들기 전부터 '베네수엘라 혁명'을 만나게 해준 통로이자 길잡이였고, 집중이슈란의 글들은 시대를 학습케 하는 충실한 교재로 지금도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미국경제의 허실을 파헤쳤던 '빚꾸러기 미국...' 시리즈 기사는 아직도 저장메모리 한켠에 편집되어 항시 출발태세입니다. 때론 몹시 불편한 광고들이 불만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지금껏 저를 잡아 둔 것은 변질되지 않는 기자 분들의 순수와 치열함이 광고가 남긴 몇몇 편린들을 씻어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혹여 여기 제가 다 밝히지 못한 기자분들 섭섭해 마시길…그저 제 기억력의 한계일 뿐입니다.)
이렇게 즐기기만 하던 사이, 어느 날 문득 낯선 광고가 눈에 띄더군요. 강양구 기자의 블로그에도 가보고, 그 취지를 알게 됐습니다. 한편 눈물겨웠고, 한편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면서 떠올렸던 것이 제가 활동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모델이었습니다. 이 모델은 뜻을 모은 생활인들이 십일조(번 돈의 1/10)를 매달 내서 자본의 토대를 마련하는 대안적 시도입니다. 이 모델이 우리 <프레시안>에도 시도된다면 새로운 독립언론의 모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자연스레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프레시안>은 고민에 틈새도 주지않고 '당신은 프레시앙!'이라며 새로운 이름을 던져주었습니다. 또 이 일은 제 상상에 달린 작은 날개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독립 언론으로서의 대안, 새로운 시도로서는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분명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한걸음 성큼 딛는 것이라 믿습니다. 더불어 제가 꿈꾸는 새로운 사회로의 한 걸음에 <프레시안>이 든든한 주춧돌 되어 주리라 믿기에 주저할 조금의 이유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르던 혹, 아직도 누군가 언론의 갈 길을 묻거든 '프레시안을 보라!'고 말 할 수 있는 날들. 자욱 하나하나가 우리 사회 새로운 언론사(史)인 날들, 끊임없기를 바라며 더 많은 분들에게 그 이름도 멋진 '프레시앙'을 권합니다.
☞ '프레시앙'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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