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통령은 10일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지도부와 회동을 갖고 "나는 그와 17년 이상 가깝게 지내왔다. 나는 완전히 이 제안을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이타르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일찌감치 푸틴 후계자로 지목
통합러시아당은 오는 17일 전당대회를 열어 당 대선 후보를 지명한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지지 발언으로 메드베데프 제1부총리는 이변이 없는 한 대선 후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후 메드베데프는 내년 3월 2일 대선에 나가 다른 당 후보와 경쟁해야 하지만, 지난 3일 총선에서 확인된 푸틴과 통합러시아당에 대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볼 때 대통령직은 떼 논 당상이나 다름없다.
변호사인 메드베데프는 푸틴과 같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으로 역시 푸틴이 나온 레닌그라드 국립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푸틴이 페테르부르크시 대외관계위원장이던 1991~1996년 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94년부터는 제1부시장이던 푸틴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그는 2000년 대선에서 푸틴의 선거 참모로 일한 뒤 크렘린 행정실 부실장, 2003년 행정실장을 역임했고, 2005년 11월 제1부총리로 곧장 승진하면서 페테르파(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관료 집단)의 선두주자이자 푸틴의 후계자로 꼽혀왔다.
친서방·친시장, 그러나…
메드베데프 제1부총리는 그간 크렘린 주인 자리를 놓고 국방장관 출신의 매파 정치인 세르게이 이바노프 제1부총리와 경쟁했다. 또한 지난 9월 빅토르 주브코프 재정감시국장이 신임 총리로 전격 발탁되면서 메드베데프가 경쟁에서 밀린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었다.
그러나 푸틴은 자신의 최측근인 메드베데프를 선택하면서 그런 관측을 일소했다. 푸틴이 이바노프 제1부총리보다 연성 정치인이며 친(親) 서방주의자인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으로 내세운 것은 서방과의 불편한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메드베데프의 시장 친화적인 사고방식 또한 서방 투자가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가 러시아의 이익을 위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던 푸틴 정권의 핵심 권부였고, 가스기업인 가즈프롬을 이끌면서 가스 가격 재협상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점은 서방 투자가들에게 근심스러운 대목이다.
신흥시장 경제 전문가인 팀 애쉬는 "최소한 푸틴이 장막 뒤에서 실권을 휘두를 것이라는 걸 보여주기 때문에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경제 정책의 불확실성은 없다는 것이다.
푸틴이 그리는 향후 시나리오는
러시아 헌법은 대통령 3선 연임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푸틴이 그 규정을 피하기 위해 임기를 얼마 남겨 두고 대통령직을 사임한 후 3월 대선에 다시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을 해왔다.
그러나 푸틴은 이날 메드베데프를 대선 후보로 지명함으로써 그같은 관측이 억측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푸틴이 차기 대통령에게 실권까지 모두 물려줄 것이라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차기 대통령을 소위 '바지사장'으로 앉히고 자신은 총리나 하원의장, 국가안보위원회 의장 등 적당한 직책을 가지고 배후에서 전권을 휘두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푸틴의 지지 발언 직후 메드베데프가 "푸틴의 유산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나가겠다"고 말한 것은 그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푸틴 자신도 이날 "지난 8년간 이뤄놓은 결과를 가져온 정책과 똑같은 정책을 추진할 정부를 구성할 기회를 잡았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도 푸틴의 이날 지지 발언에 대해 푸틴이 배후에서 권력을 행사할 것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분석가들의 말을 전했다.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예브게니 볼크는 "메드베데프를 선택한 것은 자신에게 가장 고분고분한 인물을 대통령에 앉히려는 푸틴의 의지를 보여준다"며 "푸틴은 메드베데프를 충성도 높은 부하로 여긴다"고 말했다.
푸틴의 지지자들은 그를 대통령보다 더 높은 국부(國父)나 주석(主席)의 반열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역시도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일부에서는 푸틴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번 쉬고 다음 선거에 나와 3선을 달성할 것이라는 관측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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