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반대하는 세계'(World against War Conference)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 회의는 미국이 벌이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 상황, 동유럽부터 남미까지 확산되고 있는 미국의 개입 등에 대한 평화운동가들의 견해를 나누고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세계 각지에서 온 1200명의 반전·평화운동가들이 만난 이 회의에는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모임인 '파병반대국민행동'이 파견한 3명의 한국인도 참가했다.
참가자 중 한 사람인 김광일 씨가 반전운동을 벌이고 있는 여러 참가자들의 말을 모아 보내왔다. <편집자>
지난 1일 런던 웨스터민스터 중앙홀에서 열린 '전쟁에 반대하는 세계' 협의회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번 회의는 2005년 12월에 이어 두 번째로 런던에서 열린 국제 반전회의였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점령, 이란 공격 계획 등 미국의 패권 전략에 대해 토론하고 국제 반전 운동의 공동 행동을 계획하기 위한 취지로 열린 국제회의였다.
국제회의는 세계 곳곳의 주요 반전 대표단을 런던으로 불러 모았다.
미국 평화정의연합, 이라크 바스라 석유노조 위원장 하산 주마, 이란 '전쟁반대 어머니회' 마르지 랜그라우디, 레바논 헤즈볼라 신문 편집장 이브라힘 모우사위, 레바논 공산당 총서기 칼레드 하다다, 이집트 국회의원 하마딘 사바히, 팔레스타인 대표단, 영국 하원의원 조지 갤러웨이 및 제레미 코빈, 영국 '전쟁저지연합' 사무총장 린지 저먼과 영국 급진정당 리스펙트의 사무총장 존 리즈 등이 컨퍼런스에 참가해 연설했다.
이 밖에도 케냐, 소말리아, 캐나다, 파키스탄,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터키,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체코,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대표단이 참가해 약 1200명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한국에서는 파병반대국민행동을 대표해 김환영 평화재향군인회 사무처장과 '다함께'의 김광일 운영위원과 천경록 씨가 참가했다.
"이라크 수니-시아 갈등은 미국의 작품"
개막식에서 영국 노동당의 토니 벤 전 의원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불가능할 것 같았던 영국 제국의 쇠퇴를 나는 경험했다. 지금 미국도 패배하고 있다. 이 기회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하고 말했다.
이라크 바스라 석유노조의 하산 주마 위원장은 "미국이 이라크를 파괴하고 종파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에 반목과 갈등은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종족 지도자들을 매수하고 종파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 부시는 이라크 석유법을 통과시키려 한다. 예전에 이라크는 450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미국이 간섭하지 않는다면 이전의 생산량을 회복할 수 있다. 석유는 이라크와 이라크인들의 자산이다. 이라크의 부를 강탈하려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 외국 석유회사들이 이라크 석유를 쥐락펴락하는 것을 반대한다.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도 후퇴했다. 1980년대 내내 이라크 노동자들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고, 연금 혜택도 받지 못했다. 미국 임시행정청장이었던 폴 브레머가 여러 법률을 수정했지만 (후세인 시절의) 노동법은 수정하지 않았다."
유엔 이라크 담당 인도주의 조정관을 지냈던 한스 폰 스포넥은 이라크의 참상을 알리며 점령의 종식을 호소했다.
"수십 년간의 독재, 10년간의 경제제재, 두 차례의 전쟁, 5년간의 점령. 얼마나 더 인내가 필요한가? 오직 제정신이 아니고 냉혹한 사람들만이 이라크가 성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 군대는 이라크에서 철군해야 한다. 이라크를 3등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통일된 이라크이지 세 개의 분할된 이라크가 아니다."
영국 전쟁저지연합 사무총장 린지 저먼은 반전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의) 이란 공격 가능성은 현실적이다. 부시가 약화됐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지만 전쟁광들은 지난 5년에서 교훈을 얻지 않았다. 오늘부터 이란 공격에 반대하는 끈질긴 운동을 벌이겠다고 결의해야 한다. 내년 이라크 개전일 규탄 국제시위가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내년 시위에서는 이란 공격 반대를 더 중요하게 제기돼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아프간은 탈레반의 포로수용소가 아니다"
개막식 이후에는 분과별 토론회가 이어졌다. 많은 참가자들이 '이란과 중동' 토론회에 참가해 이란 공격 문제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여줬다.
'이란 경제제재와 군사행동반대 캠페인'의 대표는 "미국이 4월 1일까지 벙커버스터(지하 벙커 파괴용 폭탄)의 탑재를 마치기로 했다"며 "앞으로 남은 120일 동안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이란의 미래가 결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 정해놓은 공격 목표 1만 개에 대한 공격이 벌어진다면 이란 민간인 25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며 이란 공격의 끔찍한 결과를 경고했다.
이란의 '전쟁반대 어머니회' 마르지 랜그라우디의 연설도 큰 박수를 받았다.
"나는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두 아이를 낳아 길렀다. 나는 공습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아이들 위로 내 몸을 날려 품었다. 이유는 한가지였다. 죽는다면 함께 죽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공습이 내 옆집을 덮쳐 친척들이 사망하기도 했다. 전쟁과 혁명을 경험한 이란의 어머니들은 반전어머니회를 결성해서 인류와 평화로운 세계를 공유하려 한다. 핵무기는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이란과 같은 아름다운 나라가 조지 부시의 '민주주의 폭탄'에 맞아 파괴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함께 나서야 할 때다."
아프가니스탄을 주제로 한 토론회도 흥미로웠다.
영국 전쟁저지연합의 크리스 나인햄은 "지금 국제운동은 아프가니스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이 갈수록 포악해지는 '테러와의 전쟁'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근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을 마약 국가나 탈레반의 포로수용소쯤으로 왜곡하는 거짓 선전에 맞서 싸워야 한다. 외국 군대 주둔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필자는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당시 노무현 정부의 위선과 철군 약속을 어기며 지역재건팀(PRT) 파견을 통해 파병을 연장하려는 노무현 정부의 계획을 폭로했다. 아울러 아프가니스탄이 미국의 이란 공격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하다고 지적해 참가자들의 큰 호응를 얻었다.
한편 전체회의에서는 한국의 파병반대국민행동을 대표해 김환영 평화재향군인회 사무처장이 연설했다. 그는 한국의 반전운동을 소개하고 노무현 정부의 파병 정책을 비판하면서 국제 연대의 강화를 호소했고, 참가자들은 그의 연설에 뜨거운 반응을 보이며 지지했다.
내년 3월 이라크 전쟁 발발 5주년 세계 동시다발 열려
마지막 정리 회의에서 연사들은 내년 3월 이라크 전쟁 5년을 규탄하는 국제 시위를 벌이자고 호소하며 반전 운동의 전진을 강조했다.
이집트 의원이며 민주주의 운동 활동가인 하마딘 사바히는 "우리가 카이로 반전회의에 모였던 것도,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것도, 이라크인들의 저항을 지지하는 것도 미 제국주의를 패퇴시키는 공동의 목적을 위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사바히는 이어 "미국의 제국주의 프로젝트에 맞서 싸우는 세력을 강화해서 이라크에서 미국의 패배를 촉진하고, 미국의 세계적 패배를 앞당겨야 한다"며 "이를 위해 이집트에서도 내년 3월 반전 시위를 적극 조직하겠다"고 말했다.
국제 반전운동은 런던 국제회의 성공을 디딤돌 삼아 전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일부인 한국의 반전운동도 마찬가지다.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과 아프가니스탄 지역재건팀 파견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는 것과 동시에, 현실화하고 있는 이란 공격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내년 3월의 개전 5년 규탄 시위는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열리는 사실상 첫 번째 대중시위가 될 것이므로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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