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신경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문학기행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신경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문학기행

[프레시안TV]"시는 나무 같기도 하고 별 같기도 하죠"

지난 24일, 시인 신경림과 독자 100여 명 등이 충북 충주 일원으로 문학기행을 떠났다. 충북 충주는 신경림 시인의 고향이고 작품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시인이란 역시 아름다운 시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죠. 그런 아름다운 시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장애와 싸우는 것, 이것도 중요한 거지." ]
  신경림 시인은 70년대 대표적 사회 참여 시인으로 손꼽힌다. 그에게 있어서 시란 무엇일까? 문학기행에 동행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24일 교보문고의 주최로 신경림 시인과 독자 100여명은 시인의 고향이며 작품의 배경지인 충북 충주를 돌아보는 충주문학기행을 떠났습니다.
  
  버스에 올라 출발한 지 두 시간여째. 시인의 고향은 충주에 다다랐습니다.
  
  군사정권시절, 신경림 시인은 정권에 의해 국외로 여행할 수 없어 우리나라 곳곳을 돌아다녔고 이것이 시를 쓰는 바탕이 되었다고 합니다.
  
  신경림: 방랑벽이 있어서 제가 여행을 엄청 좋아하는데 제가 불운하게도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정권에서 출국정지를 당했어요. 무엇때문에 출국정지를 당했는지는 지금도 이유는 모르겠는데요, 여권도 안 내주고 외국까지 못나가게 해서 김영삼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한 번도 못 나갔어요. 그래서 열심히 국내를 돌아다녀서 그때 민요기행도 내고 국내여행을 제가 거의 군 단위로 안 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다녔습니다. 제가 우리나라를 다시 한 번 공부할 계기가 된 거죠.
  
  신경림 시인은 자신의 고향을 멀리 떠나고 싶어 하는 방랑벽 때문에 목계장터라는 시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신경림: 저는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향을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꿈이 고향에서 얼른 떨어져 나와 사는 것이 꿈이었어요. 어떻게 해서든지 고향을 좀 떠나서 가족도 지긋지긋하고 부모형제도 보기 싫고 또 집안사람도 안 좋아하고 동네 사람들도 시끄러워 가지고 집에서 멀리 떨어져서 살자는 것이 꿈이었는데 처음 제가 생각한 것이 목계장터라는 곳이죠.
  
  신경림: 목계장터를 쓰게 된 것도 제일 어릴 때 먼저 생각했던 것, 여하간 고향을 떠나서 살자는 마음속에서 생각했던 가장 멀리 떠나는 곳이 목계 장터여서 목계 장터라는 시를 쓰게 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구요.
  
  신경림 시인은 목계 나루를 방문하여 시비에 대한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신경림: 여기에 작은 시비는 저 옆에 계시는 저 아주머니가 저 시비가 서기 5,6년 전에 이미 시가 좋아서 여기에 세웠답니다. 그런데 5,6년 뒤에 시에서 옆에다 시비를 세운 것이죠. 어떤 면에서는 이게 더 중요한 시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조시비. 원조에요, 원조
  
  박숙자: 한 20년 됐는데 어떤 청년들이 둘이 왔더라구요. 그러면서 이 시를 보이면서 이걸 아냐구. 그래서 그때는 몰랐죠. 그래서 시집을 하나 샀어요. 신경림씨 시집을 샀는데 너무 좋은 거야. 그래서 하나 새겨서 놔야겠다 해 가지고는 1996년인가 그 때 제가 새겼어요. 어 이게 시가 참 좋은데 누구에요 모르는 사람도. 이거 신경림씨 시잖아요 그러면 아 그래요? 시가 너무 좋다 막 그러고 가요.
  
  신경림 시인에게 따라다니는 1970년대의 대표적 참여시인이란 호칭을 시인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신경림: 글쎄요, 그때는 내가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걸. 또 시인은 지식인이니까 사명도 있으니까 일정한 시대적 역할을 해야 되겠지. 그러나 그것만이 시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진 않죠. 시인이란 역시 아름다운 시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런 가운데서 아름다운 시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장애와 싸우는 것, 이것도 중요한 거지. 그때는 말하자면 아름다운 시를 만들어 내지 못하게 하는 장애와 싸운 시대가 70년대, 80년대였다고 생각을 해요.
  
  민중들과 더불어 살면서 그들의 삶의 애환을 전해주는 시인 신경림. 그에게 시란 무엇일까?
  
  신경림: 글쎄, 시가 뭐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시라는 게 나무 같다면 나무 같고 별 같다면 별 같고, 꿈 같다면 꿈 같고.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자기가 나는 시가 뭐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시인데 난 시는 자라는 나무 같기도 하고 하늘에 떠 있는 별 같기도 하고 그렇죠.
  
  기획: 박사야
  영상취재: 강민균
  편집: 강민균
  제작: 인디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